*스포일러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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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하녀 병식(윤여정)의 가상 독백.

내 저럴 줄 알았어. 그 불쌍한 년 은이가 "복수할거야, 찍소리라도 내야 할 거 아녜요"라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어. 아니, 안주인 해라, 그 싹수머리 없는 젊은 년이 왜 지 남편 아이를 가졌냐고 은이 뺨다구를 갈길 때부터 알아봤지. 거기서 한다는 말이 고작 "미안해요, 사모님"이라고? 어이 상실도 유분수지. 그래 놓고 기껏 복수한다는 게 찍소리 내는 거고, 그게 결국 사장 식구들 보는 데서 목 메다는 거야? 그게 찍소리야?

미친 년. 죽는 게 무슨 복수라고 말야. 지 몸에 불 붙여서 얻은 게 뭐야? 집이라도 홀랑 태울 줄 알았나 봐. 망할 놈의 저택에 자동 소방 시설이 있다는 것도 모르는 멍청한 것. 패가망신을 시켜도 분이 안풀릴 그 작자들이 그렇다고 눈 하나 깜빡할 줄 알아? 어림 반푼어치도 없지. 그 인간들이 어떤 인간들인데. 돈이면 다 되는 줄 아는 그 아더메치(아니꼽고 더럽고 메스껍고 치사한)들이 뉘우치고 대성통곡이라도 할 줄 알았어? 아이고, 우리가 너무 했다, 티끌만큼이나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낄 줄 알았나 보지?

그러니까 당해도 싼 거야. 처음부터 당해도 쌌어. 사장 놈이 베토벤 치고 와인 잔을 흔드니까 멋있어 보였겠지. 그게 다 돈으로 포장된 역겨운 위선일 줄 몰랐겠지. 왜 안그러겠어. 돈이면 사랑도 살 수 있다고 믿는 게 그 치들인데, 어떻게 하면 멋있어 보이는지 세상의 온갖 매력 요소들은 다 사서 치장하는데, 원룸텔에 찌그러져 자던 년이 와인잔 들이대는 사장놈 앞에 그만 홀라당 넘어간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 그 호화스러움이 주는 착시가 지 눈으로 보는 진짜인 줄 알았겠지.

그래, 그게 딱할 정도로 한심해 보여서 내가 사장 장모한테 불었어. 어쩔 수 없었어. 그렇게 조용히 그 아이를 정리해야 나도 편하니까. 내가 골라 소개한 애가 분란을 일으키면 내 얼굴이 뭐가 되겠어. 박쥐라고? 기회주의자라고? 뭐 어떻게 불러도 좋아. 우린 그렇게 살아 왔으니까. 그 멍청하고 순박한 것들 딱하고 측은하지만 먹고 살려면 무슨 짓을 못해. 사장 식구들 눈꼴 셔서 못봐주겠지만, 걔들한테 붙어야 나도 살거든. 내 또래 엄마들 중에 정직하고 양심적으로 살아온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나는 그래도 아들 검사 만든 사람이야! 이래봬도.  

사실 은이 그 애가, 도대체 멍청한 건지 순박한 건지 덜컥 사장 아이를 임신했을 때만 해도 저래가지고 사모 자리라도 꿰찰 속셈이라고 생각했지. 근데 끝끝내 순박한 그 년이 돈 1억을 준다 해도 아이만은 갖겠다니 누가 말려? 결국 지 명을 지가 재촉한거지. 지명을 지가 재촉한거야. 누가 알아준다고. 그래서 기껏 지 몸뚱아리를 죽여서 찍소리 내니 속이 시원할까? 멍청한 년. 들이댈라면 확실히 하든가, 아니면 말든가. 그게 뭐야, 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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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져 있다시피, 영화 <하녀>는 고 김기영 감독의 1960년작(아래 사진)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원작에선 하녀의 집요한 복수가 스릴러적 긴장을 자아내는 데 반해 임상수의 <하녀>가 선보이는 복수는, 복수랄 것도 없이 허망하다. 자기 파괴. 그것이 무엇을 상징하는 것인지, 임상수는 왜 은이의 복수를 그토록 무력하게 묘사했는지, 극장문을 나서면서 한참 생각했다.

어쩌면, 원작의 남자 주인공이 로맨틱한 중산층 남자로 설정된 것과 달리, 임상수의 <하녀>에선 우아함이 체화된 최상류층으로 설정된 것에서 단초를 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원작이 만들어졌던 1960년대에 비해 그만큼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간의 골이 한없이 깊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1960년의 <하녀>는 중산층의 안정 희구 욕망과 무산자의 상승 욕구가 충돌하는 상황을 담아냈다면, 임상수의 <하녀>에서 읽히는 정서는 훨씬 더 비극적이고 냉소적이다. 하녀를 팜므파탈적 위협의 대상으로 그렸던 원작과 달리 은이의 시점을 옹호하는 임상수의 <하녀>는, 성과 사랑조차 일회용 노예처럼 유린하는 데 익숙해 있는 자본가 집단을 이미 고도로 조직화된 위협의 시스템으로 묘사한다.

자주 부감을 사용하는 임상수는 그들의 위선과 이중성에 날카로운 비웃음을 던짐과 동시에, 그 비웃음을 꿈틀대기만 할 뿐 아무것도 해소하거나 획득할 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해진 인물들에게도 거리를 두며 똑같이 던지는 것 같다. 그런데 그 정서는 사뭇 다르다. 한마디로 연민과 자조 가득한 비웃음.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늙은 하녀 병식(윤여정)의 존재다. 원작에는 없던 이 캐릭터는, 어쩌면 원작과 리메이크작 사이의 50년을 잇는 가교적 장치(윤여정은 고 김기영 감독이 <하녀>의 성공 이후 연출한 <화녀>와 <충녀>의 주인공이었다.) 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나는, 상황에 대한 냉랭한 관찰자임과 동시에 사장 식구들에 대한 억하심정을 표출하지 못하는 병식이, 어쩌면 임상수 감독이 설정한 그와 우리 자신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왜 그런지 몰라도, 내겐 병식이 '병신 자식'의 준말처럼 들린다.)

그렇게 무력하게 돈의 마력에 유린당하고, 분해도 찍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기껏 자기를 파괴함으로써 복수를 감행한 이들에게 (영화의 첫 장면처럼) 혀나 끌끌 차다 금세 잊어버리는, 그리하여 자본의 논리에 단단히 포획당하고 만 우리 자신들 말이다. 그러니 이 영화를 보고 나온 감상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참담한 부끄러움'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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