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언제나 동어반복을 하고, 참 때깔 없는 영화를 찍어도, 전국의 영화 감독 지망생들에게 겉멋만 잔뜩 든 홍상수 병을 앓게 만들었어도, 그래도 끝내 홍상수를 미워하지 못하는 이유는 딱 하나, 아니 두 개다. 그는 흔한 남자들의 취기 서린 치기, 그러니까 시답지 않은, 대단치 않은, 그 치기를 영화에 옮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감독 가운데 한 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인간이 그의 영화처럼, 평소에도 술 기운에 의지하지 않으면 사고가 불가능한 인간형임에 분명하다면, 미워하기보다 귀여워해주고, 경멸하기보다 측은해하는 게 사리에도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더 결정적인 이유는, 그의 그 귀여워해주고 싶고 측은히 여겨주고 싶은 치기 안 어디쯤에 깜짝 놀랄 만큼 부끄러운 내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다는 거다. 들킨 민망함을 추스를 필요도 없이, 나나 당신이나 사는 게 뭐 그리 다르냐고 눙치는 이 양반의 영화 앞에서 나는 자주 무장해제되고 만다. 영화, 그게 뭐 별거야, 맞아 맞아, 다들 있는 척 대단한 척 하는 거지. 비겁하지 않으려 하면서 끝내 비겁한 나 자신을 또 끝내 변호하고 싶어하는 게 우리지. 내가 스스로를 조롱하면 넌 웃겠지. 하지만 똑같은 너의 면모를 지적하면 넌 화를 낼거야. 우리들은 모두 비웃음의 대상이 남이 됐을 때야 편하게 웃으니까. 너는 너 빼고 세상 사람 모두가 덜 떨어졌다고 답답해하지만, 그건 사실 네 시답지 않은 우위를 확인하고 싶어 안달이 난 퍼포먼스지. 그렇게 충돌하다가 또 너무 멀어지면 어떡하나 겁이 나고, 그래서 외로워지면 어떡하나 두렵고, 그래서 대충 말랑말랑하고 만만한 상대에게 작업걸고, 아니면 말고 쿨한 척하면서 새로운 상대에게 눈길을 주는 게 너와 나 아니겠어? 하하하. 마시지 않았음에도 따라 마신 듯 달큰하게 취한 기분으로 <하하하>도 하하하 웃으며 봤다. 이렇게 유쾌하지 않은 웃음을 유발하는 것도 그의 재주다. 필름 끊기기 직전에 웃는 웃음의 뉘앙스를, 그는 참 잘 알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