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애' 어설픈 치정극

영화 이야기 2010. 3. 15. 21:10 Posted by cinemAg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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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늘 기막히거나 희귀한 종류의 사랑을 찾는다. 당사자들을 지독한 불행의 나락 속에 빠뜨리는 그런 사랑을 말하기 좋아한다. 불륜은, 그 기막히거나 희귀하고 또한 불행한 사랑의 단골 메뉴가 돼 온 지 오래다. 이젠 그냥 불륜도 뭔가 밋밋해서, 최근의 한국영화들은 이를테면 불륜을 취미 생활의 경지에 올려 놓은 유부녀들의 이야기 <바람 피기 좋은 날>이나 노골적인 스와핑 멜로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혹은 당당히 1처 2부제를 선언하고 나선 <아내가 결혼했다>처럼 더욱 자극적인 불륜을 찾는 데 게으르지 않은 것 같다.

이번에는 형의 아내, 즉 형수와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야 일찍이 이병헌과 이미연이 주연했던 <중독>에서도 다뤄진 바 있지만 이번에는 형제가 '쌍둥이'라는 게 중요한 차별점이다. 너무 닮아서 마누라조차 누가 형이고 누가 동생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의 쌍둥이가 엇갈린 운명으로 인해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대립하게 된다는 얘기다.  형이 식물인간이 된 사이에 쌍둥이 동생이 찾아왔고, 외로움에 말라 비틀어지기 일보 직전의 형수가 그 쌍둥이 동생과 위험한 사랑에 빠져든다는 게 기둥줄거리다.

흥미로운 설정인가? 잘 모르겠지만 일단 흥미롭다는 전제에 동의한다면 사랑이라는 감정의 정체에 대해 곱씹을만한 구석이 없지 않을 것이라는 데에도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여자를 동시에 사랑하게 된 쌍둥이 형제의 갈등이 아니라 쌍둥이 형제를 동시에(정확하게는 차례대로) 사랑하게 된 여자 주인공의 시점으로 무게 중심을 옮겨 본다면 더욱 그럴지도.

좀더 구체적으로, 이 영화 속의 여주인공처럼 산행길에 위기에 처한 자신을 구한 두 형제 중 한 명이 그녀를 들쳐 업고 내려갔으며 그 와중에 그에게서 비누 냄새가 풍겼다는 기억, 그러니까 그 감각적 기억은 사랑을 이루는 아주 중요한 요소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무언가에 의해 그 기억이 조작되거나 왜곡됐을 때, 여주인공은 눈앞의 대상 앞에서 같은 외모를 가졌다는 이유로 너무나 쉽게 무너지고 만다. 그녀는 과거의 감각과 현존하는 감각 사이에서 길을 잃은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이 영화는 '사랑은 결국 감각'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찰나의 감각적 짜릿함이 스파크를 만들어내기 마련이고, 적어도 에로스적 사랑의 범주에선 직접 만져질 수 있는 감각만이 진실이라는 것? 그리고 그 감각은 영화 속의 주인공들처럼 쉽게 길을 잃게 만든다는 것?

일리도 있고 제법 흥미도 넘치는 얘기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영화가 이야기의 강력한 힘으로 관객들을 끌고 가지 못한다면, 그 일리 있고 흥미로운 얘기도 관객들의 가슴 속으로 파고들기 어렵다. 유감스럽게도 <비밀애>가 그렇다. 오로지 여주인공의 감각의 향방에 집중하느라 그랬는지 정사의 순간들은 나른하고 감정의 향방은 오리무중이다. 세 사람 간의 감각의 게임은 이윽고 뜬금없는 권선징악적 진실 게임으로 치달으며 스스로 어설픈 치정극임을 고백한다. 유지태의 스테레오타입화된 연기나 윤진서의 혀짧은 발성 못지 않게 장면과 미스매칭된 음악도 거슬린다.

3월 25일 개봉.
 
덧붙임) 혹 궁금해하실 분이 계실 것 같아 말하자면, 성적 표현 수위는 <쌍화점>이나 <미인도>의 70% 정도 수준이다. 개인적으로 유지태와 윤진서, 두 배우의 에로틱 조합은 그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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