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러블리 본즈>를 보고 난 뒤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이거다. 아직 쉰도 안 된 피터 잭슨이 왜 이러시나? <킹콩> 이후 너무 오랫동안 메가폰을 놓고 살아서인지, 아니면 벌만큼 벌어 놓아서 그런 건지 몰라도, 꽤 기대를 갖고 봤던 그의 신작에서 일말의 느슨함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한마디로 지루해 죽는 줄 알았다.
14살 소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판타지 멜로이자 미스터리적 가족 휴먼드라마, <러블리 본즈>는 죽음과 운명, 상처 등 꽤 진중한 주제를 펼쳐 보이고는 있지만, 딱 주인공 나이대의 눈높이, 그러니까 하이틴적 감수성의 토대 위에서 이야기를 펼쳐 낸다. 그래서 한편으로 닭살이 돋고, 또 한편으로는 총천연색 칼라풀 저승의 모습이 아름답다 못해 하품이 난다. 예쁜 것도 너무 오래 보면 지루한 법인데 참 길게도 보여주니 나중에는 두통까지 얻었다.
원작을 읽지 않아 이것이 원작의 한계인지 피터 잭슨의 한계인지 구분할 수는 없다. 원작이 1천 400만 부나 판매된 베스트셀러라니 각색 과정의 문제가 아닐까 유추할 뿐이지만, 그마저도 섣부른 판단이다. 어쨌거나 <러블리 본즈>의 서사는 한마디로 '키스 못하고 죽어 한 맺힌 소녀 귀신의 한풀이 이야기' 혹은 '피터 잭슨 판 동양 사상 입문'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미스터리와 가족 휴먼 드라마를 줏대 없이 오가는, 그리하여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치고 만 영화는, 긴장감의 끈을 팽팽하게 잡아 당기는 듯 하다가 허무하게 맥을 놓아 버린다. '모든 것은 운명에 맡겨라'라는 말을 이토록 장황하게 할 수 있다니!
'좋은 생각' 스러운 이야기, 달력 사진 같은 풍경 그림에 쉽게 감동받는 이들을 뺀 나머지 관객들에게 이 영화가 그나마 줄 수 있는 실용적 교훈이 있다면, 이를테면 이거다. 소녀들이여, 낯선 아저씨를 함부로 따라가지 말라! 그리고 키스는 할 수 있을 때 빨리 하라! 2월 25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