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프맨'을 읽는 몇 가지 키워드

영화 이야기 2010. 2. 12. 22:12 Posted by cinemAgora
*스포일러 다량 함유. 영화를 보신 분들만 읽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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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 인간이라는 캐릭터는 서구 영화에서 뱀파이어만큼이나 자주 인간 본성의 악마성을 상징하는 공포의 아이콘으로 활용돼 왔다. 하지만 뱀파이어가 그렇듯, 그 함의는 시대마다 조금씩 변주돼 왔는데, 조 존스톤이 연출한 <울프맨>은 전통의 캐릭터 늑대 인간을 19세기 런던으로 데려가 또 한번 참혹한 살육의 향연을 펼쳐 보인다. 베네치오 델 토로와 안소니 홉킨스의 아우라가 조 존스톤의 모험영화적 연출 호흡과 맞물리면서 음산하면서도 즐길만한 오락영화로 재탄생했다. 단순한 팝콘 무비로 치부하고 넘어가기엔 꽤 흥미로운 해석의 결이 얹어져 있었다. 몇가지 키워드로 영화 <울프맨>을 재구성해 본다. 물론 <울프맨>이 별로였던 분들에겐 꿈보다 해몽으로 들릴 터이니 시간 낭비 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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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름달


추석이나 대보름이 되면, 많은 이들이 보름달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고, 더 풍성한 수확을 기원한다. 동양문화권에서 보름달이 풍요의 상징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달의 변화에 따른 절기에 맞춰 농사를 짓던 농경 사회의 풍습 때문이다.

그런데 왜 하필 늑대 인간은 보름달이 뜰 때만 나타나는 것일까. 서양 문화권에서는 보름달이 동양과는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일까. 여기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두 가지 정도가 꽤 설득력 있게 들린다. 첫째, 농경 사회에서 늑대는 가축을 공격하는 골칫거리였다는 점, 둘째, 보름달이 뜰 때 인간의 성적 욕망이 가장 강해진다고 믿었다는 점. '미치광이'라는 뜻의 Lunatic의 어원이 달을 뜻하는 Luna라는 점은 보름달을 불길한 것으로 바라보는 서구 문화권의 단면을 짐작하게 만든다.

어쨌든, 그리하여 늑대 인간이 보름달만 뜨면 나타나는 이유는, 농경 사회적 공포와 기독교적 경건성에 반하는 성적 일탈 욕망을 억누르려는 윤리적 필요가 교묘하게 합쳐진 중세적 상상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전근대 사회의 기피 요소 두 가지를 합쳐 놓은 아이콘이 늑대 인간인 셈이다. 그러니 가장 공포스러운 것이고. 그럭저럭 일리 있는 설이다.

영화 <울프맨>에서도 여지 없이 늑대 인간은 보름달만 뜨면 미치광이(lunatic)가 돼 날뛴다. 평소에는 멀쩡한 신사였던 주인공 로렌스 탤봇(베네치오 델토로)은 마치 저주처럼 떠오르는 보름달의 세례에 순식간에 늑대 인간으로 변한다. 그리고 사람들을 무참하게 살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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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알려져 있다시피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뒤 어머니를 아내로 삼는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드는 이를 어머니를 독점하고 싶어하는 유아기적 욕망의 일환으로 풀이했는데, 여기서 아버지는 그런 욕망의 걸림돌이자 배척의 대상이 된다.

영화 <울프맨>의 서사는 거의 정확하게 오이디푸스의 비운을 재연한다. 먼저 늑대인간이 된 아버지 존 탤봇(안소니 홉킨스)에게 물려 저주를 대물림하게 된 로렌스는, 죽은 동생의 약혼녀 그웬(에밀리 블런트)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를 제거하는 데 나선다. 존은 그웬이 자신이 죽인 아내와 닮았다고 말하는데, 그로 인해 <울프맨>의 주요 서사는 어머니를 사이에 둔 아들과 아버지의 투쟁임을 고백하는 셈이다.

그러나, 영화의 이런 오이디푸스적인 서사를 반드시 정신분석학적 틀로 해석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서구 문화권에서 '부친 살해' 모티브는 이미 전통으로 불릴 정도로 광범위한 것이고, 영화 속에서도 로렌스의 부친 살해는 부조리한 가부장을 제거함으로써 저주의 대물림을 끊어 버리는, 일종의 혁명과도 같은 행위로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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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 vs. 미신

<울프맨>이 배경으로 삼은 19세기 말의 런던은 이성과 합리성을 중요시하는 이른바 근대성이 종교적 믿음과 신비주의로 대표되는 봉건적 가치를 압도하기 시작했지만 두 가지 요소가 교차하거나 공존하는 시공간이기도 하다. 늑대 인간 로렌스가 전근대성의 상징이라면, 그를 뒤쫓는 형사 프란시스(휴고 위빙)나 로렌스를 망상증 환자로 몰아붙이며 고문에 가까운 자극 치료를 시도하는 의사는 과학의 위용을 믿는 근대성의 상징인 셈이다.

영화는 늑대 인간과 형사 프란시스의 추격전을 통해 이 두 가치가 충돌하는 시대상을 드라마틱하게 재연하는데, 흥미롭게도 봉건적 가치의 적이었던 늑대 인간을 통해 과학이 빠질 수 있는 또 다른 도그마를 보여준다. 불가사의한 현상을 모두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 맹신적 과학이 미신이나 신비주의보다 더 위험한 결과를 낳거나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하는 무위로 끝나고 마는 것이다. 결국, 증오와 분노, 사랑과 같은 불가해한 감정이야말로 근대와 전근대를 나누는 잣대로는 재단할 수 없는 것이라는 얘기가 아닐까. 아무도 해석하고 규정할 수 없는 초월성이야말로 가장 보편적인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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