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릿' 김새는 반전 드라마

영화 이야기 2009. 12. 6. 15:02 Posted by cinemAg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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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스포일러 투성의 글입니다. 영화를 관람하신 분들만 읽기를 권합니다.

요즘엔 반전이 스릴러 영화의 필수 요소인 양 돼 버려서 반전이 빠지면 왠지 단팥 빠진 붕어빵을 먹는 기분이 드는 게 사실이다. 기이하게도, 관객들의 뒷통수를 세게 때리며 '속았지 메롱'하는 영화에 된통 당하고 나면 왠지 흡족감이 몰려 온다. 이러다보니 너도 나도 반전을 배치하는데, 그러다 보면, 가끔 반전을 위한 반전, 그러니까 일종의 강박의 소산처럼 느껴지는 반전도 심심찮게 목격하게 된다.

내가 보기에 <시크릿>도 그런 영화 가운데 한 편이다. 웰메이드 스릴러의 지평을 넓힌 <세븐데이즈>의 각본을 맡았던 윤재구 감독이 작접 메가폰을 잡은 영화라 나름 기대를 품고 봤는데, 꽤 흥미진진한 설정으로 관객들의 긴장감을 낚아채고 있는 작품임에는 분명하지만, 아쉬움을 접을 수가 없었다. 그 이유는, 말했듯 이 영화의 반전이 강박의 소산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반전은, 그 반전으로 인해 앞에서 제시된 정황이 퍼즐처럼 딱딱 아귀가 맞아 떨어지도록 하는, 빠졌다가 나중에 채워 넣는 톱니바퀴 같은 것이다. 그런데 <시크릿>의 반전은 오히려 앞의 상황을 모순에 빠뜨리는, 그러니까 잘 돌아가는 톱니바퀴에 불쑥 끼어든 대못 같은 느낌을 준다.

스릴러로서 이 영화가 선보이는 설정과 이야기 구도는 분명 흥미로운 구석이 많다. 살인 사건 현장에 주인공이자 형사 성열(차승원)의 아내 지연(송윤아)의 것으로 보이는 증거물들이 발견되고, 성렬은 자신의 아내가 용의선상에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수사를 고의로 방해한다. 이런 가운데 피해자의 형이자 악명 높은 조폭 보스 재칼(류승룡)이 사건에 개입하게 되고, 성열은 사건의 전모를 알고 있는 누군가의 협박 전화에까지 시달리며 사면초가의 상황에 놓인다.

<시크릿>이 관객들로 하여금 극에 집중하게 만들기 위해 배치한 의문점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과연 그의 아내 지연이 실제로 살인을 저질렀느냐는 것. 또 하나는 재칼과,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어오는 의문의 남자는 도대체 어떤 이유로 성렬을 압박하느냐이다. 첫 번째 의문이 비교적 순탄하게 풀릴 무렵, 영화는 그렇다면 진범은 누구이며, 재칼과 남자의 음모는 무엇인지에 대한 두 번째 의문에 대한 해답을 향해 질주한다.

그리고 마침내 사건의 전모가 드러난다. 지연이 사건 현장에 있었던 이유는, 그에게 맡겼던 청부 살인을 철회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며, 재칼이 사건에 개입한 이유는 동생에게 맡겨두었던 마약이 감쪽같이 사라졌기 때문. 이 모든 열쇠는 피해자에 대한 채무 때문에 첫 번째 용의자로 몰렸던 변석준(김인권)과, 성렬을 협박하는 정체 모를 남자가 제시한 정보에 의해 밝혀진다.

이 대목에서 영화는 추리를 잠시 접고, 성렬과 지연 부부와 재칼 일단의 일당 백 싸움의 액션 활극으로 관객들을 안내한다. 마약을 찾아내 아내를 인질로 삼은 재칼에게 건네주는 대목까지는 그렇다 하더라도, 이 대목에서 재칼이 왜 얻을 것을 다 얻은 뒤에도 성렬을 죽이려 드는지 충분히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냥 걔는 원래 그렇게 뼛속부터 악당이어서?

영화가 준비한 회심의 반전은, 진범은 사실 약쟁이 목격자 행세를 한 경호와 첫번째 용의자 변석준이었으며 이들이 이날 피해자를 만나러 온 여자가 형사의 아내라는 걸 알고 일부러 죄를 뒤집어 씌웠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정체 모를 남자 행세를 한 경호가, 변석준이 따로 챙긴 마약의 행방을 알아내기 위해 전화를 걸어 형사를 배후 조정했다는 것이다. 영화 막판에 뭐라뭐라 하는 대사로 순식간에 밝혀지는 사건의 전모는 그렇게 완전히 베일을 벗은 것일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남는다. 우선, 이들이 하필 형사의 아내를 타깃으로 삼은 것과 약의 행방을 찾기 위해 형사를 배후 조정하는 것과의 상관 관계다. 형사의 아내를 범인으로 만드는 것이 재칼의 추격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이라는 계산 때문이었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후 경호는 석준이 감춘 약의 행방을 왜 굳이 성렬을 이용해 찾아야 했던 것일까. 경호는 모든 것을 다 기획하고 상황을 배후조정한 듯 보이지만, 역으로 추론해 보면, 실은 우연적 사건의 결과(이를테면 재칼이 죽어서 마약이 경호의 손에 들어가는 것 등)가 그의 앞선 행동을 정당화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이건 앞뒤가 안맞는 거 아니냔 말이다.

또 하나, 형사들보다 오히려 더 영민한 추리력을 과시하는 재칼은, 다른 이도 아닌 형사의 아내가 마약에 손을 댔을 것이라는 비약적 추론에는 왜 그토록 아무 의심 없이 다다랐던 것일까? 이것을 성렬과 재칼과의 대결 구도를 만들기 위함이라고 이해하고 넘어가기엔 왠지 스릴러 특유의 치밀함이 아쉬워지는 대목이다. 그리고 지연으로부터 청부 살인 부탁을 받았다가, 병상에 누워 그 전모를 성렬에게 말해주는 남자는 어떤 경위로 교통사고를 당해 나중에 성렬에게 진실의 문 역할을 하게 된 것일까. 이것 역시 우연? 아니면 생략된 어떤 부분 안에 예지력 충만한 천재 범죄자 경호가 그를 반쯤만 죽게 해놓고 성렬과 만나게 만든 것일까. 그렇다면 이 영화의 주인공은 애시당초 경호가 됐어야 마땅하다.

어쨌든 지연을 둘러싼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 그러니까 그녀가 하필 살인 현장에 있었던 것은, 자신의 남편을 청부살인하려고 한 것과 관련된다는 대목은, 그럴 듯하다. 성렬이 자신의 친구와 바람을 피우는 것도 모자라 술을 마신 채 딸아이를 태우고 가다가 교통사고를 일으켰고, 그 바람에 딸 아이가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남편을 죽여버리겠다고 결심할 정도의 뼛속 깊은 원망과 복수심이, 성렬과 재칼의 한판 대결 이후 눈 녹듯 녹아 내릴 수 있는 것일까? 결말부의 지연은 이제까지와는 달리, 너무나 활기차고 다정해 보인다.

마지막으로 영화에 덧붙여진 사족과 같은 반전은, 그야말로 강박에 의해 만들어진 억지 반전의 전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연이 남편의 정부를 죽였다? 한데도 다른 이도 아닌 형사 성렬은 내내 자신의 정부가 살해당한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오히려 이 대목에서는 지연의 남편 살해 음모가 여전히 현재 진행형임을 슬쩍 암시했다면 어땠을까.

영화 <시크릿>은 흥미로운 반전 드라마를 만들겠다는 의욕이 과해서인지, 군데군데 채 메꾸지 못했거나 얼버무린 흔적이 엿보인다. 게다가 캐릭터 구축에도 썩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리하여 소름 끼칠 정도로 아귀가 딱딱 들어 맞는, 정교한 반전의 쾌감을 달성하기 직전에 멈춰 선다. 붕어빵에 단팥을 우겨 넣느라 구멍이 생겨 김 새 버린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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