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워> <화려한 휴가>, 두 영화의 동반 흥행으로 잔뜩 달아오른 여름 극장가가 막을 내리고, 이제 바야흐로 추석 시즌으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추석 하면 한국영화, 그동안 홈 그라운드의 이점 십분 살려온 한국영화가 이 절호의 대목을 놓칠 리 없겠죠. 올해도 각자의 필살기로 관객 몰이 채비에 한창인 영화들이 앞 다퉈 흥행전에 뛰어들고 있는데요. 일단 세 편의 영화가 먼저 언론 앞에 본색을 드러내고 기선 제압 작전에 돌입했습니다.


봉태규 정려원 커플의 앙증맞은 로맨틱 코미디 <두 얼굴의 여친>, 중년 아저씨들의 꿈 찾아 낭만 찾아 <즐거운 인생>, 그리고 코미디 제왕 김상진 감독과 나문희 여사가 만난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까지.


9월 13일 동시에 격돌하는 세 영화의 흥행 3파전이 올 추석 극장가의 명암을 가를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세 편의 영화 모두 검증된, 안전빵 흥행 코드로 편안하게 흥행하겠다는, 뭐 좀 새로운 걸 원하는 관객 입장에선 '짜친' 속내를 굳이 감추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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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두 얼굴의 여친>, 시도 때도 없이 전혀 다른 성격으로 변한다는, 다중 인격 소유자의 여친을 갖게 된 한 순정남의 좌충우돌 연예 행각이, 기둥 줄거리 되겠습니다. 뭐 굳이 따질 필요 없이 지난 2001년 흥행에 성공했던 <엽기적인 그녀>가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영홥니다.


그 파릇파릇했던 차태현과 전지현 커플, 세월이 흘러 흘러 한 사람은 라디오 디줴이 되고, 다른 한 사람 CF 활동 일로 매진, 틈틈이 할리우드 진출 어쩌구 하며 폼 잡고 계실 때, 바통을 이어받은 이는 다름 아닌 봉태규, 정려원입니다. 그리 잘생긴 외모는 아니지만 순정 하나 가지고 여자 친구 엽기 행각 다 받아주니 그대로 <엽기적인 그녀>의 차태현 짝퉁이고, 정려원 역시 다중인격 핑계로 툭하면 폭력을 일삼고, 저 지현 언니한테서 물려 받은 오바이트 전략까지 답습합니다.


웃기다 말까요? 아니죠. 울려야지요. 뒤로 갈수록 예상대로 정려원의 슬픈 사연 드러나면서 눈물 콧물 쥐어 짜더니 순정의 멜로 라인 강하게 어필해주십니다. 슬프냐구요? 네, 슬픕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눈물이 잘 안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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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번에는 <즐거운 인생>입니다. 앞서 보신 <두 얼굴의 여친>은 저 멀리 남의 영화 답습했지만, 자기 영화 자기가 카피하는 건 어쩌면 이준익 감독의 장기인가 봅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바로 한 해 전에 나온 <라디오 스타>에서 스스로 급영감 받으신 이 감독님, 끈떨어진 루저들과 음악의 하모니면 대충 비벼서 관객들 신나게 만들 수 있다는, 별로 머리 많이 안 굴려도 아는 이치를 실천에 옮깁니다.


<라디오 스타>의 박중훈과 매니저 안성기는 영화 내내 신명을 자아내던 노브레인의 '놀자 스피릿'과 크로스 합체! 바로 3명의 덜떨어진 중년 남자들이 재결합한 그 이름도 찬란한 '활화산'으로 거듭났습니다. 두 명은 실업자, 한 명은 기러기 아빠, 너덜너덜해진 신세 이겨보려 기타 잡고 드럼 치니 아, '지대로' 감동입니다. 중간 중간 악마 같은 와이프가 주연인 구질구질한 일상 인서트 컷으로 집어 넣는 것 잊지 않으시니, 역시 이 감독님! 그래야 감동이 배가 되겠죠?


여기까지라면 계산이 2% 부족합니다. 바로 젊은 꽃미남 장근석의 등장! 네. '밑줄 좌악 돼지 꼬리 꽁야'할만한 포인트죠. 젊은 세대 관객들의 감정이입과 더불어 뭇 여성들의 므흣한 시선까지 놓치지 않겠다는 포석. 역시 이준익 감독의 흥행술사적 계산법은 대단합니다. 한가지 흠이라면 속이 다 보인다는 것이겠죠. 기가 막히게 전형적이고, 눈 딱 감고 자기복제적인 영화 <즐거운 인생>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올 추석에서 (어쩌면 가장 많이) 흥행할 것 같다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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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상진 감독의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입니다. <거침 없이 하이킥>으로 야동 순재와 더불어 반짝 뜨신 나문희 선생을 앞세운데다, <신라의 달밤>이나 <귀신이 산다>로 연타석 홈런을 친 김상진 감독의 만남이라, 잔뜩 기대를 부풀리고 있는 이 영화, 과연 소문대로 소문만 무성한 영화였습니다.


추석용 코미디 영화로선 아주 아주 치명적인 약점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별로 웃기지 않다는 것.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문희 여사의 슬랩스틱은 야동 순재가 빠져서 그런지 김이 새고, 유해진의 원맨쇼만으로 버텨 나가기에 폭발력 있게 배꼽을 들어내주지 않는 영화가 끝끝내 야속해지고 맙니다.

김상진 감독도 나이가 드는 것일까요? 그 옛날의 재기 발랄함은 사라지고 일본 소설 원작에 대충 묻어서 어떻게 잘 되겠지 하는 자포자기의 심정만 느껴지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노릇인지 모르겠습니다. 김상진 감독의 절친한 영화계 선배이자 그에 앞서 먼저 <한반도>로 스타일 제대로 구긴 뒤 <강철중>으로 재기를 노리는 강우석 감독이 이 영화의 시사회를 보고는 착잡한 표정으로 담배만 피우고 돌아 갔다니, 안타까운 마음은 비단 저만의 것은 아니었나 봅니다.


추석 흥행 3파전을 벌이게 될 세 편의 영화를 이렇게 까칠하게 소개해드렸지만, 분명 이 세 영화 모두 어느 정도 흥행할 것 같아 보입니다. 몇 년전 추석 때 이명세 감독의 <형사 듀얼리스트>가 쪽박을 찬 뒤, 적어도 명절 영화에 한해서만큼 충무로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몸과 영혼에 아로새긴 것이 분명합니다.


흥행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절대, 네버, 결코! 새로움에 도전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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