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문' 달에 간 비정규직 노동자

영화 이야기 2009. 11. 30. 09:05 Posted by cinemAg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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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컨대, 영화 <더 문>은 걸작이다. 시종일관 SF 스릴러 특유의 팽팽한 장르적 쾌감을 이어가면서도, 생각 있는 SF의 미덕 역시 놓치지 않고 있다. 온갖 휘황찬란한 CG 스펙터클의 과시 없이도, 이처럼 설득력있고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자체에 존경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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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문>은 제목처럼 달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통신용 모니터에 나오는 인물들과 로봇을 뺀다면, 등장 인물은 사실상 오로지 한 명이다. 지구 에너지원을 채취하기 위해 달에 파견된 샘(샘 록웰)이다. 그는 3년 동안 홀로 생활하면서 거대한 기계가 채취한 달표면의 헬륨 3를 지구로 쏘아 보내는 일을 하고 있다. 기지 내의 인공지능 로봇 '거티'(케빈 스페이시)가 유일한 말벗인 그에게 이제 지구 귀환까지 딱 2주일이 남아 있다. 조금만 더 버티면 그리운 아내와 딸 아이가 있는 곳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잇따라 이상한 여자의 모습이 환영처럼 보이기 시작하고, 급기야 불의의 사고를 당한 뒤 상황은 급변한다. 그가 미처 몰랐던 거대한 비밀이 베일을 벗는다
.

영화 <더 문>은 달 기지에서 생활하는 인물을 둘러싼 미스터리한 사건들을 통해 고립된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양면성, 혹은 인간성과 기억의 함수 관계 등 흥미로운 해석의 곁가지를 풍성하게 펼쳐 놓는다. 장르의 프리즘으로 현실을 바라보는 감독의 통찰은, 인간 심리의 복잡성을 탁월하게 표현한 샘 록웰(리들리 스콧의 <매치스틱 맨>에서 니콜라스 케이지와 함께 사기꾼 일당으로 나왔던 그 배우다.)의 연기력이 더해지면서 더욱 묵직한 빛을 발한다.

더 자세하게 말하면 스포일러가 되겠으나, 나는 특히 이 영화에서 얻을 수 있는 여러 미덕 가운데, 기업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관계에 대한 직설적 메타포에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누가 감히, 달 기지에서 일하는 우주인을 3년짜리 계약직 노동자의 신세로 상상할 수 있겠는가. 감독 던칸 존스의 상상력은 현실의 부조리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 상태에서 계약 기간이 끝나면 폐기처분될 처지에 놓인 비정규직의 고립감과 상실감을 '복제'의 모티프를 가져온 장르의 표피 위에 촘촘히 박아 놓고 있다
.

영화에 등장하는 달 기지 이름은 LOVE도 아닌, 한국어 그대로 '사랑'이다. 영화 말미에도 한국어가 잠깐 등장하는데, 듣기론 감독의 여자친구가 한국인이라는 게 작용을 했다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달 기지가 한국 기업의 것이라는 설정이라면, 오히려 더 현실성이 넘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 가차 없는 해고의 칼날을 등 뒤에 숨긴, '사랑'이 넘치는 가족 경영, 왠지 낯익은 표현 아닌가. 과연 영화 속의 기업 관계자들은 샘을 향해 끊임 없이 "그대가 가장 소중하며, 진정한 영웅"이라는 입바른 수사를 잊지 않는다.

11
26일 개봉했으나, <더 문> 역시 한국 극장가의 '좋은' 영화들이 대개 그런 것처럼 상응하는 좋은 대접을 받지는 못하고 있는 분위기다. 간판 내려오기 전에 얼른 챙겨 보시길 권한다. <뉴 문>을 기다리는 분들은 혼동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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