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자 어쌔신>은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는 영화다. 가장 편리하게는 적지 않은 국내 언론들의 방식, 그러니까 "이 영화의 주연을 통해 정지훈(비 또는 Rain)이 월드스타로서의 입지를 다졌다"는 시각에서 접근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시사회를 통해 미리 영화를 본 바로는, 그런 평가가 괜한 호들갑으로 들리진 않는다. 적어도 정지훈이 동양계 배우로서 할리우드 액션 영화의 주연을 꿰찬 몇 안되는 배우에 합류했다는 점만으로도 의미를 둘만한 작품이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더구나 이런 유의 액션 영화에 기대되는 미덕을 그가 꽤 훌륭하게 소화하고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잘 다듬어진 몸매에 각종 무기들을 다루는 솜씨를 보아하니, "죽자 사자 찍었겠다" 싶을 정도였다.
어쨌든, 그거야 정지훈의 영광이다. 과연 국내 관객들이 오로지 정지훈의 영광에 찬사를 보내기 위해 <닌자 어쌔신>을 보러 갈 것인가,를 자문한다면, 즉각 두 번째 접근으로 넘어가야 한다. 이미 국내 배우의 해외 진출이라는 수식어가, 다른 모든 결점을 상쇄할만큼의 강력한 흡입 기제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를테면 박중훈이 출연했지만 국내 흥행에선 냉대를 받은 <찰리의 진실>(2002)이라든가, 최근 이병헌이 조쉬 하트넷과 함께 출연한 <나는 비와 함께 간다> 같은 영화가 충분히 입증한 바 있다. 정지훈의 첫 할리우드 출연작 <스피드 레이서>도 그런 점에선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니, <닌자 어쌔신>이라는 영화가 과연 볼만한 작품인가, 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게 더 타당하겠다.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해서 나는 유보적이다. 왜 그런고 하니, <닌자 어쌔신>은 관객들의 영화적 취향에 따라 그 호불호가 극명하게 엇갈릴 게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소문을 들어 아시겠지만, 이 영화는 첫 장면부터 사실상 고어 영화에 가까울 정도의 피칠갑 액션을 선보인다. 머리가 싹둑 잘리고, 눈알이 튀어 나오고, 팔 다리가 잘린 자리에 피 분수가 튄다. (영화를 소개할 때 이런 정보는 반드시 줘야 한다. 혹 모르고 봤다가 극도의 위화감과 혐오감을 가지고 영화 자체를 쓰레기로 폄훼하는 사례가 실제로 빈번하기 때문이다.)
이런 영화를 흥미롭게 관람할 수 있는 취향의 소유자라면, <닌자 어쌔신>의 도륙적 액션 시퀀스를 나름대로 즐기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반대라면 혐오스러운 장면을 참아내느라 관람 시간 자체가 고문이 될 터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슬래셔나 하드고어도 하나의 장르적 장치라는 전제에서 바라본다 해도, 나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컴퓨터그래픽에 의해 만들어진 저 무참한 신체훼손의 이미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앞서 말했듯, 이것은 한 명의 관객으로서 나의 개인적 취향과 무관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지만, 인물들이 칼을 휘두를 때마다 도륙되는 사람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의 이미지가 지나치게 비현실적이어서, 차라리 게임의 이미지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이를테면 최양일 감독의 <수>나 박기형 감독의 <폭력 써클>같은 영화들이 폭력의 잔혹성을 그야말로 잔혹하고도 사실적인 느낌으로 전시하려는 의도와는 정반대의 지점에서, 폭력 그 자체를 유희화하고 있는 셈인데, 이것이 흔히 보는 난도질 영화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고민해 보니, 그 정체는 컴퓨터 그래픽의 가상 현실적 이미지가 주는 특성이라는 결론에 다다랗다. 이것을 워쇼스키들이 제작한 영화이자 정지훈의 첫 할리우드 출연작인 저 찬란한 실패작 <스피드 레이서>에서도 극단적으로 추구됐던 바의 연장선에 놓인 비주얼적 전략이라고 부른다면 적절한 설명이 될까. 나로선 불행 중 다행으로, 그 비현실성에 적응된 순간, 슬래셔적 잔혹함이 하나의 시각적 오락의 차원으로 고양됐다. 제작진이 노렸던 바도 바로 이 지점일 터이나, 또 반대로 그 적응의 순간, 이야기의 상투성이 눈엣 가시처럼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며 오락성의 총합을 상쇄해 버리는 것이다.
가상 현실적 비주얼이 새로운 시대의 장르 언어가 될 수 있다고 밀어 붙이며, 자신들에게 호의적인 이들로부터 비주얼 혁명의 개척자로 불리우는 워쇼스키들의 야심은 알겠다. 알겠는데, 내가 보수적인 관객이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새로운 비주얼에 대한 심미안이 덜 훈련된 건지 몰라도, 매우 단선적인 플롯을 강렬하고도 극단적이며 자극적인 CG로 감싸고 있는 이 영화는 내게 그냥 B급 액션 영화의 테크니컬 업그레이드 버전 이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B급이라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그 느낌은 이를 테면, 똑같이 B급 감수성으로 똘똘 뭉쳐 있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데쓰 푸르프>를 볼 때와는 천양지차였다는 얘기다. 왜냐하면, 결정적으로 이들의 새로운 실험은 비주얼적 혁명에 지나치게 자아도취된 나머지, 스토리텔링의 쾌감과 대사의 감칠맛을 홀대하기 때문이다. 정지훈의 전작 <스피드 레이서>도 그런 점에서 지지하지 못했는데, 불행히도 <닌자 어쌔신>도 예외는 아니었다. 11월 26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