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영화제 기획한 씨너스 주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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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씨너스 이수

지난 5일 씨너스 이수에선 핑크영화제 개막식이 열리고 있었다. 개막작으로 선정된 <OL 러브 쥬스>의 타지리 유지 감독을 비롯해 일본 핑크영화의 감독과 배우들이 무대에 나와 인사말을 건넸다. 마지막으로 마이크를 잡은 배우 이토 다케시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이윽고 길게 한숨을 내 쉰 뒤에야 그는 입을 뗐다. "20년 동안 핑크 영화 작업을 해왔습니다만, 오늘처럼 감격적인 은 없었습니다!"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날 그의 눈앞에선 일본 핑크영화 상영관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객석의 태반이 여성 관객들로 채워져 있었던 것. 그의 눈에는 이 현장이 핑크영화가 어두침침한 음지에서 밝은 양지로 나오는 순간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것도 이웃나라 한국에서 영화제라는 형식으로 자신의 영화가 틀어진다는 사실에 감개무량함을 감추지 못했을 일이다.

사실 개막식이라 남성 관객들이 참여했지만, 핑크영화제는 여성들만의 입장을 허용하는 ONLY FOR WOMAN
의 원칙을 고수해 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여성이 주체가 되어 자신의 성적 쾌락에 대한 질문과 진화하는 여성상에 대한 탐색의 장을 마련하겠다는 것.

이 독특한 영화제를 1회 때부터 기획하고 프로그래밍한 주인공은 멀티플렉스 체인 씨너스의 기획이사로 일하고 있는 주희 . 그녀가 일본의 핑크 영화를 영화제 형식으로 소개하게 된 데는 그녀의 학문적 관심사와 관련이 깊다. 일본에서 박사 과정을 공부하면서 상류층의 문화나 정신적인 것 외에 언더그라운드 쪽 문화에도 관심이 생겼어요. 일본 문화 안의 성이나 폭력이 서민의 정서와 연결돼 있다는 것에 주목을 하기 시작했죠. 그래서 토 문화 센터 내의 성욕 문화사 연구팀에서 1년 정도 공부를 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핑크 영화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한 건 지난 2004년에 한국에서 열린 일본영화제에서였죠. 그 때 핑크영화가 인간의 근원적 욕망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다룬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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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박성호

알려져 있다시피, 핑크영화는 50년 동안이나 제작비 3백만 엔 원칙을 고수하는 가운데 만들어지는 일본의 독특한 성애 영화물이다. 그러나 촬영 기간과 섹스신의 횟수 등 몇 가지 전제 조건을 준수하면 연출자의 창작의 자유가 거의 무한대로 보장됐기 때문에, 재능 있는 감독들을 위한 등용문의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수오 마사유키, 구로사와 기요시, 히로키 류이치, 제제 다카히사 등 핑크영화 출신의 명감독들이 수두룩하다.

<굿바이>로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다키타 요지로 감독도 그 가운데 한 명이다. 자신의 핑크영화 <치한전차: 속옷검사>를 출품한 그는 영화제쪽에 보내온 다음과 같은 편지 인사말을 통해 자신들의 영화적 전통을 찬미했다. 그 세계의 여러가지 경험이 저의 근본이 되었습니다. 핑크라는 장르는 지금 일본영화 안에서도 사라져 가는 가장 소중한 창작의 자유가 확실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가지 제약은 있지만, 그 제약 안에서의 영화 제작이야말로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

이런 맥락에서 핑크 영화는
시대를 가장 잘 반영하는 영화라는 게 주희 이사의 생각이다. 영화사적인 측면에서 일본 영화를 소개하겠다는 것도 핑크영화제의 한 취지
라는 설명이다.

물론 이런 생각을 실천에 옮기는 과정이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건 아니다. 일본 핑크 영화의 대모로 추앙받고 있는 아사쿠라 다이스케 프로듀서(칠순이 넘었지만 대쪽같은 포스를 과시하는 그녀는 올해 영화제 개막식에도 참석했다.)를 접촉해 계획을 전했을 때만 해도 처음엔 좀 의구심을 갖는 분위기였어요. 왜 하려 하는가, 정말 열정이 있는가, 상업적 목적은 없는가, 이런 것들 말이죠. 그러나 한번 지원을 하기 시작한 뒤로는 정말 전폭적으로 도와주고 있어요. 특히 일본의 유명 핑크영화 제작사인 국영영화사가 매년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2007년 첫 회 영화제를 개최했을 때는 82%의 객석 점유율을 자랑할 만큼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자칫 일회성 행사로 끝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떨쳐 내고 영화제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었던 계기였다. 그러나 2회 행사는 저조했다는 게 주희 이사의 자평이다. 작품 선정이 너무 무거운 쪽으로 간 탓도 있겠지만, 씨너스 4개 지점으로 확대 상영하면서 본의 아니게 영화제가 너무 크게 보였던 것 같아요. 그렇게 되니까 도리어 외부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죠.

어쩌면 당연한 노릇이다. 섹스신이 지치지 않고 등장하는 영화를 여성 관객들끼리 모여서 본다는 것은, 여전히 전통적 가치관의 위력이 적지 않은 한국사회에선 편견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실제로 정서적으로 거부감을 드러내면서 중간에 나가는 분 도 계신 게 사실이에요. 반대로 너무 약한 게 아니냐고 불평하시는 분들도 계시죠. 하지만 전반적으로 여성들끼리 에로틱한 영화를 보는 것을 굉장히 재미있어들 하세요. 남성 관객들과 동반 입장이 허용될 때하고는 풍경이 사뭇 다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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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 이사는 여성 관객들의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지나치게 여성을 성적 도구로 묘사하는 영화들은 가급적 배제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고 말하면서도 하지만 사실 그런 영화도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왜 그런가 하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니까요 라고 덧붙인다. 성이 밝고 자연스럽고 도가 지나치지 않는 어른들의 놀이 문화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면 핑크영화제를 하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는 에로 영화나 성에 대한 한국사회의 이중성을 꼬집는 것을 잊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에로 영화 수면 밑에서만 활용하고 작품으로 대접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죠." 그래서인지 영화제 기간 동안 '한국의 에로영화는 왜 갑자기 사라졌는가'라는 주제의 특별 전시회도 마련됐다.

올해로 3회 째 행사로 치러지고 있는 핑크 영화제는 구로사와 기요시의 35mm 데뷔작 <간다천음란전쟁>,  <바이브레이터>로 잘 알려진 히로키 류이치의 퀴어 핑크 <우리들의 계절>, 핑크계의 전설적인 여배우 하야사 유미카의 인생을 돌아보는 다큐멘터리 <안녕 유미카> 등 모두 10편의 영화를 11일까지 상영한다.

핑크영화제에 고무 받았는지,
<워낭소리>의 제작자 고영재 프로듀서는 개막 파티 사회를 맡은 자리에서 저도 곧 한국 최초의 핑크 영화를 제작해볼까 생각 중입니다 라고 말했다. 그 말고도 한국의 적지 않은 독립영화인들이 이 행사에 참석했으니 어쩌면 내년 영화제에서 한국 감독이 만든 핑크 영화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새로운 측면에서 문화적 자극이 되고 있다면, 핑크영화제는 문화 교류의 진정한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셈이다.



덧붙임) 80년대 인기 학원드라마 '호랑이 선생님'을 기억하는 분들이라면 주희 이사가 낯익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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