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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지 않는다고 후진 영화는 아니다


"폭발적으로 웃겨 주는 부분이 별로 많지 않은 것 같아서....그게 좀 걱정이 돼요." 27일 서울극장에서 열린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 언론 시사에 앞서 이 영화의 제작 관계자는 기자에게 바짝 타는 속내를 슬쩍 드러냈다. 명색이 추석용 코미디로 포장이 됐으니 관객들이 포복절도할 웃음을 기대할 게 뻔한 노릇이다. 배꼽의 소유권을 주장할 이유 없으니 제발 빼가슈~ 하며 자진 무장해제하고 나설 관객들의 웃음보를 산산조각낼,  그런 영화로 탄생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는 비교적 자명한 것이다.

게다가 감독 김상진이 누군가. <주유소 습격 사건><신라의 달밤><귀신이 산다> 등을 통해 코미디 영화로만 '전타석 홈런'을  날린 몇 안되는 충무로 감독이 아니던가. 이 영화의 투자배급사 시네마서비스는, <밀양>을 제외하고는 <아들>과 <황진이> <므이>, 최근 개봉한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까지 이렇다할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는 터이니, 시네마서비스의 해결사 김상진의 어깨는 무거울 수밖에 없다. 이례적으로 언론시사에 강우석 감독이 직접 참석한 것만 보더라도, 이번에도 그가 특유의 '한방'으로 구원투수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 안팎의 기대를 짐작할 수 있다.

이야기는 절묘하다. 따라서 그 자체로 웃긴다. 세 명의 루저가 절박한 심정으로 잘나가는 국밥집 할머니를 납치했는데, 네 명의 자식들 나몰라라 하는 데 분개한 나머지 할머니가 알아서 납치극을 사주하는, 기가 막힌, 그래서 매우 영화적인 상황이 벌어진다. 이야기의 기본 얼개는 원작이라 할 수 있는 덴도 신의 일본 소설 <대유괴>에서 따온 것이니, 김상진이 이 기가 막힌 이야기의 사이사이에 얼마나 센 웃음 폭탄을 장착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납치된 이가 납치범들에게 훈수를 두고 있는 상황 자체가 이미 코미디로써 절반은 먹고 들어갔으니 여기에 김상진의 유머 감각이 얹히면 극장이 떠나가라 할 것임은 안봐도 뻔할 것라는 얘기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참으로 이상하게도 앞서 제작 관계자의 우려대로 나로선 속 시원히 웃을만한 장면이 많지 않으니 슬슬 안타깝기 시작한다. 물론 아주 안웃긴 건 아니지만, 이 영화의 광고 카피대로 '전신작렬 배꼽폭발' 현상은 일어나지 않고, 배꼽이 빠지려다가 곧잘 다시 들어가니 괜시리 서운했던 것이다. 왜 그럴까? 권순분 여사와 납치범들 간의 파열과 역할 전도로 이어지는 과정의 웃음이 예상 영역 안에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원톱 주연으로 나선 나문희 여사에 대한 과중한 존경심 때문이었을까? 납치범 세 명 가운데 유해진 빼고는 강성진과 유건, 그리고 경찰 역의 박상면은 슬슬 수위 조절하는 분위기다. 설정 자체로 잔뜩 기대가 부풀었는데, 인물들 사이에서 코미디 캐미컬을 창조해내야 할 김상진은 잽만 던진다. 여간해서 <귀신이 산다>의 차승원이 울며 불며 언덕길을 도망쳐 내려올 때와 같은, 회심의 어퍼컷이 터지지 않는 것이다.

그래도 히든 카드가 없지 않다. 포스터에 나와 있지 않은 인물, 보도자료에도 안나오는 배우, 박준면이 이 영화의 코미디적 히든카드라 할 수 있겠다. <삼거리 극장>에서도 호연을 펼친 바 있는 그녀는, 이번에 약간의 특수 효과에 의해 거구의 여인으로 변신, 권순분 여사와 세 납치범으론 살짝 역부족인 한방 웃음을 보충해 준다. 그래도 외모를 가지고 웃음을 자아내는 방식이 그리 세련돼 보이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다.  

코미디 영화가 크게 웃기지 않다고 말하면 바로 혹평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기대만큼 웃기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 영화가 별로였다고 말하기엔,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의 만듦새는 썩 나쁘지 않다. 오히려 중반 이후 포복절도 상황 코미디에 대한 강박을 살짝 걷어내고 나니, 조금 큰 틀에서 전복의 쾌감을 얻을 수 있었다. 특히 막판 몸값 쟁탈전이 펼쳐지는 열차 신은 꽤 합이 잘 짜여져 있어서 한편의 잘만든 액션 스릴러를 보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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