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로커가 있다. 소속 밴드가 서울에서 열리는 록 페스티벌에 초청 받았다. 그런데 이 친구, 비행기 공포증이 있다. 멤버들은 떠나 버리고, 서울로 갈 길이 막힌 젊은 로커는 다짜고짜 택시를 세운다. "서울 갑시다!" 당연히, "빠가야로" 소리를 듣는다. 그런데 어느 직업 정신 충만한 택시 기사가 그를 태운다. 이제부터 도쿄에서 서울까지의 택시 여행이 시작된다.
영화 <도쿄 택시>의 설정은 기가 막히다. 택시를 타고 도쿄에서 서울까지 간다는, 얼토당토않지만 그럴듯한 상황을 만들어 놓고 독특하고도 의미심장한 로드 무비를 선사한다. 그러니까 택시라는 일상적 물체를 비일상적인 공간에 배치해 놓고, 거기서 풍성한 이야기들을 끄집어 내는 것이다.
아이디어는 3년 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인상적인 데뷔작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2006)를 선보인 바 있는 김태식 감독의 것. 그는 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일본과의 합작으로 만들어냈다. 오랜 일본 생활에서 얻은 경험과 의사 소통 능력 덕분인지, 큰 제작비 들이지 않고도 한일 합작 영화의 모범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당연히 일본 배우들이 주연으로 등장하지만, 엄밀히 말해 이 영화는 일본인의 눈에 비친 한국에 대한 이야기이며, 문화적 소통과 융화의 미덕을 강조하는 휴먼 드라마이기도 하다. 이들이 길에서 만나는 풍경은, 그러니까 일본인의 시선에 비치는 한국의 풍경은 자못 풍자적인 블랙 코미디로서의 매력을 발산한다.
택시를 배에 태워 부산에 도착한 두 사람, 시내를 질주하는 낯선 택시의 등장에 이 지역 택시 운전사들의 텃세 작전이 시작된다. 감독은 이 엉뚱 기괴하지만 현실성 있는 설정을 통해 우리로선 낯설지 않은 밥그릇 싸움을 풍자의 도마 위에 올리는가 하면, 상대방의 국적이 어디든 오로지 영어로만 이야기해야 말이 통한다고 믿는 한국인의 국제화 수준을 꼬집는다.
이런 풍자의 칼날이 한국으로만 향해 있는 건 아니다. 민방위 훈련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에 진짜 전쟁이 난 줄 알고 혼비백산하는 두 사람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통해서는, 북핵 관련 뉴스의 홍수 속에서 한반도를 핵전쟁의 위험이 상존하는 곳으로 믿는 일본인들의 무의식을 건드린다.
택시의 서울행 여정이라는 중심 플롯 안에 세대가 다른 두 사람과, 이들이 만나는 한국인들이 인간애와 교감을 나누게 되는 서브 플롯이 엮이는 과정은, 소통을 통해 오해와 불신의 벽을 넘자는, 영화의 메시지를 응축적으로 보여준다. 두 사람의 여정을 비추는 몽타주 화면에서 이야기의 순차성을 뛰어 넘어 자주 한국과 일본의 풍경을 교차해 보여주는 것도 이런 맥락으로 읽힌다.
서울과 도쿄, 그 어떤 정치적, 문화적 경계를 뛰어 넘으면 모두 사람 사는 곳이며, 사랑에 대한 설렘이 꿈틀대는 곳이긴 마찬가지다. 영화는 이질적 문화의 충돌 과정을 재치있는 우화로 풀어내면서 결코 이질적이지 않은 보편성을 힘있게 건져 올린다.
최근 잇따른 한일 합작 영화들 가운데서도 <도쿄 택시>는 발군의 완성도를 갖춘 작품이다. 일본과 한국, 어디에서도 설득력있게 다가설 수 있는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귀여운 연출, 무엇보다 진정한 '세계인적' 감수성이 돋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