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프로그램에는 그야말로 '쿨'한 남자는 한 명도 안나온다는 게 매력이다. 혹자는 이승기 정도는 쿨하다고 봐야 하는 게 아니냐 항변하시겠지만, 남자들의 공동체란 게 대체로 그렇듯이 같은 환경 안에서 뒤섞이고 부대끼다 보면, 추레하고 궁상맞아지는 건 매일반이라는 걸, 이 프로그램은 보여준다.
<1박 2일>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제작진의 존재를 두드러지게 함으로써, 그러니까 다큐멘터리 기법 가운데 하나인, 이른바 '작업 과정의 전경화를' 통해 입체감을 확보한다. 스탭들과의 잠자리 복불복 게임을 통해 무려 70여 명의 스탭들이 비오는 날 노숙을 하게 만드는 설정 등이 그렇다. 시청자들이 이 과정에 자연스레 끼어들며, 때론 연기자들의, 때론 제작진들의 편에 서서 스스로 일종의 게임을 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다.
어쨌든 <1박 2일>의 재미를 상찬하자는 게 이 글의 목적은 아니니 이쯤 해주고, 최근 공중파 채널에서 시도하고 있는 이른바 리얼 버라이어티쇼 프로그램들을 보고 있자니, 어떤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새삼스러운 건 아니다. 죄다 '남자들의 도전'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들 프로그램이 여성 출연자들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 프로그램에 양념처럼 끼어든 여성 출연자들은 사실상 '눈요기' 이상도 이하도 아닌 취급을 받는다. <오빠 밴드>에는 뭇 오빠들의 므흣한 시선을 가로챌 서인영이 끼어 있고, <천하무적 야구단>은 최근 서포터즈라는 명목으로, 어여쁜 걸들을 4명이나 영입했다. 아무래도 백지영만으로는 역부족이라고 여겼나 보다.
나는 그 이유가 이 사회가 은연중에 주입하는 남녀간의 성역할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무슨 말인고 하니, 남자들의 경우, 어떤 미션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함부로 주접을 떨어도 관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연기자들도 흔쾌히 망가져 주는(그렇다, 그것은 망가져 주는 것이다!)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것은 망가지는 게 천직인 개그맨만의 몫은 아니다. 한국 록의 대부인 김태원조차 망가짐의 경제학을 몸소 실천에 옮기고 있는 중 아닌가. 그래도 우리는, 아니 시청자들은 그들의 전복적 퍼포먼스를 통해 일종의 쾌감을 느끼게 된다.
이같은 악순환 구조는 방송 제작진들에게도 남녀 성비의 불균형에 대한 정당화 여지를 남긴다. 하려고 해도, 남자 연기자들만큼 과감하게 망가져 주는, 그런 여성 출연자가 별로 없는 것도 이유라고 말할 게 뻔하다. 사실이다. 사회적 시선의 압력은, 그걸 직업으로 한 개그우먼을 빼놓고는 애시당초 그런 여성 캐릭터가 개발될 여지를 주지 않는다. 솔직하고 싶어도 솔직할 수 없는 어떤 무언의 압력이랄까. 그래서 우리의 TV에는 온갖 섹시한 자태로 애교를 부리는, '노브레인 뷰티'들만이 활개를 치는 것이다.
방송에서의 성역할은 결국 사회의 성역할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요즘은 방송국마다 여기자와 여피디가 많이 늘었지만, 안타깝게도 알맹이는 여전히 사회의 관성을 힘차게 거스르는 데까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시청률과의 타협이 그들의 목을 죄고 있기 때문일 터이다. 그래도 누군가 자꾸 시도하지 않는다면, 조용필의 노랫말은 끝내 거짓말로 남는 셈이다. 피디들도 좀 '도전'을 해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