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비틀즈(The Beatles)는 불가능한 것인가

순탁's 뮤직라이프 2009. 9. 14. 23:59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지난주에 구비 완료했지만, 이제야 비틀즈(The Beatles)의 리마스터링 음반들을 하나씩 듣고 있습니다. 바쁜 일이 겹쳐서 꼼꼼히 듣지 못하다가 차분한 마음으로 비틀즈의 명곡을 탐사하고 있으니, 흡사 아방궁에 온 기분이네요. 빛나는 명곡들의 파노라마에 지쳐있던 심신이 온기를 회복하는 느낌입니다. 

여기서 잠깐. 고백을 하나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오디오 마니아형 평론가와는 거리가 먼 스타일입니다. 집에 있는 기기도 미니 컴포넌트를 쓰고 있고, 조금 비싼 헤드폰을 연결해서 음악을 듣는 정도죠. 하지만 큰 불편함은 없습니다. 진정으로 좋은 음악은 언제나 사운드 퀄리티를 뛰어넘는 법이니까요.(라고 변명을 해봤지만 큰 위안은 되질 않네요.)

사실 비틀즈의 음악들이 리마스터링되어 얼마나 음질이 좋아졌는지, 정확하게 분석할 능력이 저에게는 없습니다. 물론, 사운드가 좀 더 생생해진 것만은 확실히 알겠더군요. 막귀를 자처하는 저도 이럴 정도니, 섬세한 청각을 갖고 계신 분들이라면 그 차이가 더 확연하겠지요. 그런데 문득, 9시 뉴스에서까지 보도하고 있는 비틀즈 광풍을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신곡도 하나 없고, 보너스 컨텐츠가 많은 것도 아닌데, 왜들 이렇게 열띤 반응을 보이고 있을까.

팝 시장이 예전에 죽었다고 평가되는 한국에서마저 이 리마스터링 세트 5만조가 단번에 완판되었다고 합니다. 올드 팬들이 이 5만이라는 숫자의 대부분이었다면 이 현상이 일견 이해가 갔을 겁니다. 그들에게 비틀즈는 잊을 수 없는 청춘의 일부분이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10대와 20대 초반의 어린 세대들마저 비틀즈에 대해 한마디씩 거들고, 돈이 없어 구입을 못했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하고 있는 게 흥미롭습니다. 이 친구들에게 비틀즈는 영화 [로큰롤 인생]에 나오는 ‘노인 밴드’나 다름없을 거라고 지레짐작했던 제가 틀렸던 걸까요. 비틀즈의 음악이 클래식에 비견될 정도로 그 우수성을 공증받기는 했지만,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비틀즈와 같은 불멸의 존재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요. 오늘 집으로 천천히 걸어오면서 저는 팬들과 매체 간의 상호작용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비틀즈의 진가를 먼저 알아본 건 순수한 음악 팬들이었습니다. 1960년대 초반, 비틀즈가 세계적인 브랜드가 되기 이전부터 그들이 클럽에서 연주하는 날에는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고 하니까요.

그러나 이러한 국지적 팬덤을 글로벌화하기 위해서는 팬들의 서포팅 이상이 필요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매체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중요해지는 거죠.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언제나 안테나를 세우고 있는 매체들이 많아야 시장이 활성화되고, 전체적인 레벨도 업그레이드될 수 있다는 건 누구나 꿰고 있는 이 바닥의 상식입니다. 해외에는 이런 매체들이 아주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죠. 미국의 롤링 스톤(Rolling Stone)이나 영국의 NME(New Musical Express) 등이 대표적입니다. 두 잡지 모두 오랜 역사를 통해 자국은 물론이고 전세계 음악 신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죠.

둘 중 NME 같은 경우에는 조금만 음악 잘한다 싶으면 무조건 ‘Next Big Thing’이라며 뻐꾸기 세례를 날립니다. 이른바 ‘차세대 거물’이라는 거죠. 물론 이 중에 진짜 거물로 성장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그 유명한 NME 특유의 호들갑 평론이죠. 하지만 이런 적극적인 자세가 영국 음악 신을 풍성하게 가꿔왔음을 부인할 순 없을 겁니다. 그래서 최근 등장한 좋은 록 밴드들 중에는 영국 출신들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심지어 킬러스(The Killers), 스트록스(The Strokes) 같은 미국 밴드들도 모국이 아닌 영국에서 먼저 그 장래성을 캐치하고 매체들마다 적극적으로 리뷰를 게재했죠. 그리고, 잘 알려져 있다시피 둘 모두 현재 최고 인기 그룹으로 떠오르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떤가요. 위에서 언급한 롤 모델과는 한참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최근의 표절 논란만 해도 그렇죠. 표절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는 공교육 탓일까요. 팬들은 표절 여부를 떠나 자신의 우상을 보호하기에 급급합니다. 우리 오빠 음악만 좋으면 됐지 뭔 상관이냐는 어투로, 지적하는 사람을 맥 빠지게 만드는 허무 신공은 이제 더 이상 놀랄 것도 없을 지경입니다.

매체는 어떤가요. 전체가 다 그렇지는 않지만, 어떤 매체는 ‘팬들의 사랑이 표절 논란마저 잠재워버렸다!’. 이런 황당한 기사를 자랑스럽게 실어내더군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 참고로 저는 지금 (여러분들이 짐작하고 있을 그 곡이) 표절이라고 주장하는 게 아닙니다. 표절은 친고죄에 해당하기 때문에 원작자의 고소가 있어야 효력이 발생되니까요. 다만, 가요계 일부의 돌아가는 상황이 여전히 수준 이하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은 겁니다. 

지금 말씀드린 예시가 한국 가요계 전체의 고질병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팬들과 매체들, 더불어 기획사들이 상식적인 도덕률을 회복하지 않는 이상, 몇 십 년이 지난 후에도 열병처럼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전설적인 아티스트는 기대하기 어렵지 않을까요. 이 뿐만이 아닙니다. 얼마 전 동방신기가 수난의 터널을 통과하고 있는 걸 보면서 특이한 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미친듯한 머니 게임 속에서 음악적인 논쟁은 단 한 톨도 없다는 거죠. 해외에서는 걸핏하면 음악적인 견해차로 헤어지는데, 그게 오히려 부러울 정도였습니다. 사족이지만 한류 열풍 어쩌고 할 때도 돈 소리는 지겹도록 들었는데, 음악에 관한 건 잡담조차도 들어본 적이 없던 것 같네요.  

앞으로 큰 병에 안 걸린다면 제 인생이 50년쯤 남았다 치고, 그 전에 비틀즈처럼 영생을 누릴 본좌급 뮤지션을 우리나라에서도 만나볼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는 예감이 사라지질 않습니다. 정치만 그런 게 아닙니다. 가요계에도 상식이 통하는 시대가 하루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 대단한 걸 요구하는 것도 아닌데, 이게 왜 이리 힘든 걸까요.

                                                                                             posted by 순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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