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기행 7. 에필로그

별별 이야기 2007. 8. 22. 12:01 Posted by cinemAg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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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쩨르부르그 여행을 마쳤다. 밤 10시 20분 출발 열차를 타기 위해 모스크바 역에 도착했다. 역 이름이 왜 모스크바냐면, 이 양반들은 도착지 이름을 역명으로 쓴단다. 빼쩨르부르그에 올때 열차 테러로 21시간을 기차에 갇혀 왔는데, 여기에서 또 한번 예기치 못한 돌발상황이 벌어졌다. 이틀이 지났는데도 테러 사건 여파로 모든 기차들이 5~6시간씩 늦게 출발하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노숙자처럼 역 대합실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다가 새벽 3시가 다 돼서야 열차에 오를 수 있었다. 그나마 열차는 1시간 뒤에야 출발했다.

어렵사리 모스크바에 돌아온 우리는 하룻밤을 더 보낸 뒤 귀국 비행기를 타러 공항으로 향했다. 돌발상황은 여기서도 벌어졌다. 대형 트레일러가 교통사고를 내 공항 가는 고속도로가 주차장이 되다시피 한 것. 평소엔 1시간이면 달릴 거리를 무려 4시간이 넘도록 기어가고 있자니 자칫 비행기를 놓칠 수 있는 상황이 됐다. 열차에 도로까지 우리를 도와주지 않는 상황에 우리는 한숨 섞인 농담을 주고 받았다. "이건 필시 레닌의 저주일거야."

그런데 그 살인적인 체증의 와중에 진풍경을 목격했다. 어이없게도 1킬로미터에 한두대씩 고장 나 서 있는 차량들이 안그래도 막히는 도로를 더욱 막히게 하고 있었던 것. 대부분 연식이 20-30년은 족히 됐음직한 차들이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 보니 구닥다리 차들이 맛탱이가 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선 BMW고 폭스바겐이고 비싼 외제차들도 별무소용이다. 없는 자가 가진 자의 발목을 잡는 아이러니다. 양극화의 상징적인 풍경이랄까?  

도로에 갇힌 이들이 우리뿐만이 아니었으니 다행히 비행기는 이륙 시간을 1시간여 연기해 놓고 있었다. 숨을 헐떡이며 겨우겨우 수속을 마치고 출국 심사를 받는데, 굼뱅이 전산망이 또 한번 애간장을 태운다. 결국 우리는 비행기 문이 닫히기 직전 구사일생(?)으로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아, 러시아! 이 신비롭고도 드라마틱하며 박진감 넘치고도 얼토당토 않은 나라여~. 별처럼 반짝거리는 그들 세상의 빛이 구름 아래로 가물가물해진다.

(연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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