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글을 쓰며 먹고 산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가장 쓰기 어려운 건, 로맨틱 코미디 관련 영화평이다. 왜 그러냐. 늘 거기서 거기, 뻔한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남녀가 있다.(대개 남자는 매력덩어리, 여자는 천방지축일 경우 많다). 둘 사이에 오해가 생기거나 티격태격한다. 위기, 그리고 화해, 그리고 키스. 그리고 박수! 이 범주에서 벗어난 로맨틱 코미디는 사실상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뭐, 물론 <러브 액츄얼리>처럼 떼거리로 몰려 나와 닭살 사랑 놀음을 펼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러니 도무지 뭘 어떻게 다르게 소개해야 할지 늘 고민인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럼에도 잔인하게도, 로맨틱 코미디는 시즌만 되면 약속이나 한듯 우후죽순처럼 나오고 또 나온다. 이 한없이 뻔한 이야기들의 변주는 왜 이다지도 지치지 않고 계속되는 것일까? 우문이다. 인류가 종족 보존의 본능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제도, 오늘도 계속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로맨틱 코미디가 멈추지 않는 것은, 러브 호텔이 줄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리고 모든 사랑의 시초는 유치하다. 로맨틱 코미디가 아무리 유치하다는 핀잔을 들어도, 정도 이상으로 세련되게 만들어지지 않는 이유다.
<프로포즈>도 마찬가지다. 산드라 블록이 불혹을 훨씬 넘긴 나이에 로맨틱 코미디 퀸으로서의 진가를 새삼 확인하고 싶어서인지 몰라도, 띠동갑 연하의 훈남 라이언 레이놀즈와 찍은 이 영화는, 뻔하디 뻔한 이야기를 뻔하지 않은 척 시침 뚝 뗀다. 뻔하지 않은 척 하는 건 설정이다. 그러니까 여상사의 압력에 못이겨 억지 위장 결혼을 해야 하는 부하 직원. 남자들의 몫이어야 할 프로포즈는 이제 여자의 것이 된다. 위장 결혼을 하지 않으면 추방될 위기에 놓인 캐나다인 여상사는 남자와 초고속 연애 상황을 연출해야 할 판이다. 둘은 급조된 결혼 발표를 위해 남자의 가족들이 있는 알래스카로 날아간다.
재밌는 상황이다. 한꺼풀 벗겨 보면, 이것이 애쉬튼 커처를 차지한 데미무어를 은근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러니까 전통적인 로맨틱 코미디를 애시당초 졸업한 세대까지 포섭하겠다는 전략이겠지만 말이다. <섹스 앤 시티>와 <위기의 주부들>이 발굴해 낸 바로 그 시장 말이다.
뻔하지 않은 듯한 설정을 제시했지만, 눈치 빠른 이들은 벌써 앞으로의 전개를 손바닥처럼 들여다볼 게 뻔하다. 그러니까 여상사와 부하직원은 티격태격할 것이다. 그러다가 눈이 맞을 것이다. 서로에게서 미처 보지 못했던 진심과 매력을 발견할 것이다. 위장 결혼은 진짜 결혼으로 진화할 것이다. 이 정도 얘기는 스포일러도 아니다.
<프로포즈>는 이 과정을 매개하는 변수로 가족을 등장시킨다. 그러니까 알래스카에 있는 남자주인공의 가족들. 알고 봤더니 이 녀석, 알래스카의 대부호 가문 출신이다. 그런 녀석이 뉴욕까지 와서 미란다 뺨치는 악마같은 여상사 밑에서 박박 기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집안 사람들은 하나같이 살갑고 정겹다. 어떻게 될까? 다 짐작할 얘기지만 말 안하겠다.
되풀이되는 얘기지만, <프로포즈>는 뻔하지만 또 시선이 갈 수밖에 없는 요소들을 적당히 버무려 놓고 손님들을 끄는 영화다. 왕자를 내 손으로 선택하고 싶지만 동시에 끝내 신데렐라이고 싶은, 그러니까 '골드미스'로 상징되는 욕망에 적당히 화답하는. 뭐, 물론 이런 얘기가 마음에 들지 여부는 전적으로 사랑이라는 녀석에 대한 당신의 심상이 결정하겠지만 말이다. 9월 3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