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로 여겨질 내용이 포함돼 있음. 관람하신 분들만 읽기를 권합니다.

메릴 스트립이 완고한 교장 수녀 알로이시스로 등장했던 영화 <다우트>는 제목 그대로 '의심'에 관한 영화다. 자신과는 달리 개방적이고도 자유주의적인 교육철학을 지닌 플린 신부(필립 세이모어 호프만)가 못마땅한 그녀는 어떤 계기로 그가 학생을 성추행했다는 의심을 품게 된다. 명확한 증거도 없는 와중에 의심은 확신이 되고, 불신이 되며 급기야 무조건적인 증오로 변한다.

물론 의심의 배후에는 자신과 다른 교육철학을 지닌데다 학생들로부터 신망을 얻고 있는 플린 신부에 대한 질투심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그냥 눈감고 지나쳐도 될 것들이 사사건건 눈에 밟히기 시작한다. 하다 못해 차에 설탕을 너무 많이 넣어 마시는 것조차 마뜩지 않다. 그의 행동 하나 하나가 정숙하고 근엄해야 할 교육자의 자질에서 벗어난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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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우리도 이런 일을 겪게 된다. 말하자면, 그냥 싫은 사람 말이다. 케미컬이 맞지 않는 사람과 한 공간에서 일을 해야 할 일이 벌어지면, 어느새 그가 하는 모든 행동이 눈에 거슬린다. 그리고 아무런 근거도 없이 누군가에게 '나쁜 사람'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게 된다. 제 3자를 만나면 나도 모르게 그의 험담을 늘어 놓고 있다. 뒤집어 보면, 이건 나쁜 사람이 아니라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한 일종의 알레르기 반응 같은 것이다.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심리적 연막 작전인 셈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누군가를 타자화하는 못된 습성을 버리지 못한다.

<다우트>가 마치 현미경처럼 의심의 발생 역학을 들여다 보는 심리 드라마라면, 밀라 요보비치가 주연한 <퍼펙트 겟어웨이>는 의심이 만들어내는 두려움과 불안을 스릴러 장르의 틀로 보여준다. 신혼 부부가 주인공이다. 이제 막 결혼식을 마친 부부는 행복에 겨워 자신들의 결혼식 비디오를 감상하며 신혼여행지인 하와이 일주를 시작한다. 여행길에 히치하이킹을 하는 커플을 만나지만, 막상 이들의 행색을 가까이에서 본 남자는 뭔가 불안하다. 슬쩍 다른 핑계를 대며 호의를 거두려 하지만 애원하는 여자 앞에서 선심을 쓰기로 한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저쪽에서 기분이 나빠졌다. 결국 이들을 버려두고 제 갈길을 가는 부부.

여행중에 인근 섬에서 신혼부부 살인사건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접한다. 그리고 이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또 다른 커플을 만난다. 이들과 하이킹에 함께 나선 부부는, 살인 사건의 여파 때문에 뭔가 불안하다. 그리고 왠지 남다른 구석이 있는 이들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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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회심의 반전을 배치한 중후반까지, 관객을 이들 부부가 품는 불안과 두려움으로 이끈다. 저 커플이 혹시 살인 사건의 범인들은 아닐까?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굴다가 사이코패스처럼 살인마로 돌변하겠지? 도대체 언제 저들은 마각을 드러낼 것인가. 관객으로 하여금 침을 꼴깍 삼키며 그 순간을 기다리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반전은, 그런 예상을 보기 좋게 배신한다.

반전 이후와 이전이 교묘하게 맞아 떨어지지 않고 어설픈 게 이 영화의 치명적인 약점이긴 하지만, 이런 구도는 나름 의미심장하다. 그러니까 반전은, 의심의 동반자였던 관객이 진실이 드러난 순간, 지금껏 감정이입해온 대상을 순식간에 갈아치워야 하는 상황을 맞게 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말하자면, 당신의 의심은 틀렸다는 것이다.

물론 스릴러의 핵심 미덕인 짜임새라는 요소가 빈약한 탓에 이런 설정이 객석에 전하는 공명 효과는 그다지 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취향과 세계관, 처지가 다르다는 이유로 남을 쉽게 의심하고 적대시하는 게 일상화된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퍼펙트 겟어웨이>는 나름 곱씹을만한 구석이 약간 있다. 언제나 내가 보는 것만이 정답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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