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아이조: 전쟁의 서막> 같은 영화는 보고 난 즉시 글을 올렸어야 했다. 시사를 본 뒤 일주일이 지나니 장면이나 스토리가 가물가물 생각이 잘 안나는 것이다. 내가 머리가 굳은건지, 아무 생각 없이 보는 오락영화의 한계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다만, 기억나는 것은 영화를 보는 시간이 아주 지루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파리 시가지에서 아이언맨 짝퉁스러운 특수 갑옷을 입은 요원들이 날아오는 자동차를 요리 저리 피해다니며 아크로바틱한 추격전을 펼치는 장면은 이런 유의 오락영화에 기대할만한 시각적 쾌감을 선사하고 있었다. 스톰쉐도우로 분한 이병헌의 악역 연기도 실망스럽지 않았다. 원작 캐릭터 자체가 악역이지만 꽤 매력적인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비중 면에서 사실상 주연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만, 그가 도쿄의 한 무술 수련장과 인연을 맞게 되는 어린 시절의 플래쉬백 장면에서 난데없이 한국어 대사가 튀어나오는 건, 이병헌과 한국 관객들에 대한 배려 차원인지는 몰라도, 참으로 뜬금 없어 실소가 삐져나왔다. 영화의 개연성을 무시한 배려는 오히려 모욕이다. '옛다 먹어라'도 아니고.
아무튼 <지아이조-전쟁의 서작>은 좋은 놈과 나쁜 놈을 나눠 놓고 때려 부수는 전형적인 액션 블록버스터다. 선과 악을 대립시키는 이야기 구조야 <아이언맨>이나 <트랜스포머>나 이 영화나 늘 거기서 거기이니 얼마나 휘황찬란하게 때려부수느냐가 할리우드 액션영화의 업그레이드 수준을 보여주는 척도가 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뭐 그럭저럭'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눈이 번쩍 뜨일 정도는 아니었나 보다. 파리 추격전 빼고는 생각 나는 장면이 거의 없는 걸로 봐선.
영화 제목에 쓰인 지아이(G.I.)는 Government Issued의 이니셜로 '정부 보급품'이라는 뜻이다. 미군 병사들이 스스로를 약간 자조적으로 일컫는 속어인데, 아예 미군의 대명사처럼 굳어졌다. 어쨌든 이 작품은 원작에서부터 현실의 무력인 '지아이'에 가상의 첨단 무기를 쥐어 놓고 정의의 사도로 여기고 싶은 미국인들의 자연스러운 로망이 묻어 있다. 당연하지 않겠는가. 애국심의 발로다. 다만, 이 세계 최강의 첨단 군대가 정의를 수호하는 과정은 참으로 글로벌하고도 번잡한 것이어서, 이번에는 파리 시내가 쑥대밭이 되는 것도 모자라 에펠탑이 무너진다. 프랑스가 대표적인 반할리우드 국가라는 점이 묘하게 중첩되는 대목이다. 뭐, 오락영화 한 편 보면서 이런 생각까지 하는 건 내 직업병이다. 참고하시든가 말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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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M 興 業 (흥 UP)
영화, 음악, 방송 등 대중 문화의 틀로 세상 보기, 무해한 편견과 유익한 욕망의 해방구 by cinemAgo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