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한국 공포영화의 행렬은 지지부진했다. 2년전 여름에 개봉한 <기담>처럼 간헐적으로 꽤 괜찮은 공포영화가 나오긴 했지만 대개 기존의 공포 관습을 게으르게 답습하는 수준에 그쳤던 게 사실이다. 공포영화 마니아들의 원성이 높았던 게 무리는 아니다.
지난 화요일 언론 시사를 통해 확인한 <불신지옥>은 이런 지지부진한 한국 호러영화 행렬에 모처럼 종지부를 찍을만한 썩 괜찮게 빠진 공포영화였다. 이 영화, 무섭다. 그리고 슬프다. 무엇보다 재미있다.
기둥 줄거리는 이렇다. 서울에서 힘겹게 대학생활을 꾸리고 있는 희진(남상미)에게 어머니(김보연)의 전화가 걸려 온다. 동생 소진(심은경)이 사라졌다는 것. 급히 지방 소도시의 집으로 내려간 희진은 ‘하나님께 기도하면 사라진 딸이 돌아온다’고 믿는 어머니의 광신도적인 모습이 지겹다. 그리곤 어머니 몰래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한다. 단순 가출로 몰아가려는 경찰에 실망하려는 찰라, 이웃집 여자가 목을 메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리고 그녀가 남긴 유서에는 "소진아 미안해"라는 말이 적혀 있다. 뭔가 석연치 않은 형사(류승룡)는 소진의 실종에 이웃집 사람들이 관련돼 있음을 직감한다. 희진은 실종 전 동생 소진이 신들림 현상을 보였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도 기이한 현상에 휘말리게 된다.
제목이 암시하듯 <불신지옥>은 종교적인 신앙을 모티프로 삼고 있다. 그러나 시내 지하철이나 거리에서 많이 보게 되는 선교용 문구와 직접적인 관련성은 없다. 오히려 이 영화는 불신해서 지옥이 아니라, 맹신해서 지옥인 상황을 공포의 매개로 끌어들인다. 그러니까 믿지 않아 지옥이 아니라 너무 믿어 지옥이다. 따라서 이 영화의 공포는 각자의 믿음에 경도된 나머지 그 믿음을 공유하지 못한 이들을 배타시하거나 믿고 싶은 대로 믿어 버림으로써 발생하는 공포다.
<살인의 추억>의 연출부 출신인 이용주 감독은 자신의 데뷔작인 이번 영화에서 과감하게도 주류 종교에 대한 신앙과 미신으로 치부되는 한국적 무속 신앙을 등치시킨다. 그 때문에 개봉도 전에 이 영화를 반기독교 영화로 오해하는 이들도 생기고 있지만, 어쨌든 <불신지옥>은 절대자에 매달려야만 안심하는 정신분열적 맹신 사회의 꽤 설득력 있는 초상화를 공포영화의 틀 안에 녹여내는 데 성공한다. 무엇보다 소진의 실종 사건을 추적해가는 미스터리 구조를 흥미진진하게 펼쳐내는 가운데, 호러적 장면들을 배치한 솜씨가 남달라 보인다. 그래서 관객을 깜짝 놀래키는 관습적 방식 뿐만이 아니라 진실이 밝혀질 때마다 모골이 송연해지는, 그런 섬뜩한 공포를 선사한다.
차세대 호러퀸에 도전한 남상미의 연기도 준수하지만 형사로 분한 류승용과 엄마 역의 김보연, 동생 소진 역의 심은경, 그리고 이웃집 사람들을 연기한 문희경, 장영남, 이창직, 오지은 등 연기파 조연들의 포스가 이 범상치 않은 공포영화에 둔중한 무게감을 실어준다. 지난 5월 세상을 떠난 고 정승혜 프로듀서의 유작이다. 8월 20일 개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