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한국 최초의 칙릿 드라마’이자 ‘패션 드라마’를 표방한 <스타일>이 전파를 탔다. 1, 2회 모두 17.6%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에지 있게’ 출발했다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는 걸 보니, 어떤 면에서건 채널을 고정시키는 힘이 있었던가 보다.

원작도 읽었건만, 과연 드라마 속에서 내가 하는 일이 어떻게 보여 질까 궁금한 마음에 <스타일> 시청률 상승에 일조하며 1, 2회를 열심히 챙겨보았다. 아울러 10년 넘게 이 짓을 하고 있는 딸네미가 과연 회사에 나가 뭔 일을 하는지 감 좀 잡으시라고, 부모님까지 채널 고정하시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원작보다 뻥튀기가 훨씬 더 심해진 드라마 <스타일>은, 아주 기본적인 사실들- ‘패션지 에디터들은 예쁜 가방을 보면 환장 한다’ ‘인터뷰이 섭외에 고전한다’ ‘기획회의 하고 인터뷰하고 촬영하고 기사를 쓴다’ ‘포토그래퍼와 작업한다’ ‘발행인 혹은 편집장 혹은 선배의 말엔 대체로 깨갱한다’ ‘협찬 의상 관리를 소홀히 하면 안 된다’ ‘클럽 혹은 파티장을 비롯해 브랜드들이 프리젠테이션을 하기 위해 꾸며놓은 고급스러운 장소에 자주 간다’ ‘화보 촬영을 하기 위해 제주도뿐 아니라 외국 출장도 종종 간다’ 등- 만을 얼개 삼고 이를 구체화하는 디테일은 철저히 과장된 허구로 가져갔다. 그야말로 5분에 한번씩은 “말도 안돼” “뻥뻥뻥” “웃기시네” 등의 멘트를 날리곤 했는데, 이 어이상실 감상과 더불어 이지아의 왕 오버 연기, 류시원의 심심한 연기를 참아내면서도 채널을 돌리지 않았던 이유는 단 하나, 김혜수의 ‘스타일’ 때문이었다.


사실 김혜수가 연기하는 패션지 편집차장 박기자 역시 현실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인물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실제 패션지 에디터들에게까지 ‘판타지’를 불어넣는다. 그녀처럼 스타일도 그리고 자기관리도 ‘에지 있는 에디터이고 싶은’ 욕망을 부채질하는 것이다. 물론 그녀가 첫 등장에 입고 나왔던 379만원 하는 발망의 블랙 레이스 톱을 떡하니 입고 다닐 수 있는 대한민국 편집 차장은, 현재 시점으로서는 없다. 상의 3백만 원대, 스커트 1백만 원대, 스틸레토 힐 2~3백만 원대, 가방 2~3백만 원대, 선글라스 2백만 원대… 몇 천 만원 하는 수입차 빼고, 몇 백 만원 할 란제리도 빼고, 당장 눈에 보이는 그녀 차림새를 돈으로 합산해 보면 대략 1천만 원이 너끈히 넘는다. 그렇다고 1년 365일 이 복장으로 다니느냐, 천만에, 한 회 동안만도 무려 10회 이상 ‘최신 컬렉션 무대에 오른 아이템’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치장했으니, 박기자 김혜수의 하루 패션을 돈으로 환산하면 가히 천문학적이라 하겠다.

물론 간혹, 온 몸에 걸친 아이템 합산이 1천만 원이 넘는 차림으로 출근하시는 패션 에디터들도 있긴 하다. 하지만 지지난 시즌 모 브랜드 샘플세일에서 25만원에 건진 판매가 2백만 원대 가방, 지난 시즌 프레스 세일 받아 45만원에 구입한 모 브랜드의 판매가 1백만 원대 스커트, 이번 시즌 간만에 ‘지름신’ 강림하여 6개월 할부로 구입한 판매가 1백만 원대 재킷 등이 그 조합이다(그러니 합산을 구입가가 아닌 판매가로 해야 1천만원 넘는 토탈 룩이 가능하다). 잠깐 딴 얘기지만, 패션지 에디터들에겐 늘 샘플세일 그리고 프레스 세일이라는 달콤한 악마가 매 시즌 어김없이 찾아오는데, 덕분에 지지난번에 긁은 할부가 끝나가기도 전에 또 다시 지갑을 여는 에디터들도 상당수다. 이 대목에 ‘된장녀 어쩌고’ ‘정신 나간 어쩌고’ 쇄도하는 비난의 글이 예상되나, 사실인 걸 어쩌나. 가장 먼저 그런 브랜드들에 노출되는 직업이고, 그런 아이템들의 미적 가치와 재산적 가치 등에 제일 먼저 쇄뇌당하는 직업인데다가, 무엇보다 이쪽에서 버티려면 제일 큰 자산이 ‘스타일’인 걸. 그리고 그 ‘스타일’이라는 것이 내면에 지니고 있는 ‘감각’과 ‘패션 센스’에 앞서 우선 겉으로 드러나는 ‘명품’들에 의해 재단되기도 하니 말이다. 그러니 패션지 에디터들은 자의 반 타의 반 '스타일'에 목숨 걸고 나아가 '명품'을 추종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그런 면에서 김혜수의 ‘스타일’은 충분히 선망의 대상이 된다. 무려 7개월이나 이를 악물고 머리를 기르고 있던 나만 해도, 김혜수를 본 뒤 다시 쇼커트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이 일기 시작했다. 이런 거로구나. 대체 이 허무맹랑하고 말도 안 되는 드라마를 사람들은 대체 왜 지켜보고 앉았던 거지, 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그 직업을 가지고 있는 나조차 김혜수를 보며 ‘나도 저런 스타일’ 하며 선망하게 되니, 패션 월드를 전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들이 이 드라마를 보며 가져갈 수 있는 ‘판타지’가 분명 있겠구나 싶어졌다.


어쨌든 드라마도 드라마지만, 제일 부러운 사람은 원작자 백영옥 씨다. 그녀가 <바자>의 피처 에디터이던 시절, 함께 베트남 출장을 갔던 적이 있었다. 당시 다른 에디터들이 ‘4차원일세’ ‘거 참 에디터스럽지 않네’라고 수군거렸던 기억이 나는데, 지나고 보니 그건 뒷담화가 아니라 일종의 칭찬인 셈이었다. ‘에디터’ 노는 물에서 놀 위인이 아니었거나, 지독히 운이 좋았거나. <스타일> 당선료로 1억 땡겨 주시고, 이번 드라마 판권으로 또 1억 땡겨 주셨다 하니! 정작 동경해야 할 대상은 ‘이번 시즌 신상품’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도배한 박기자가 아니라, 에디터 시절의 처참한(?) 추억을 잘 구워삶아 말랑한 소설 한 편 내놓고 명예와 재물을 동시에 거머쥔, 인생역전의 주인공 백영옥 씨가 아닐는지. 아이고, 사촌이 땅 산 것도 아닌데 왜 배가 아프지. ㅋㅋ

p.s. 글을 쓰고 몇 주 뒤 모 신문에 근무하시는 기자분께 이 글을 '기사로 인용해도 되는지'를 묻는 쪽지가 도착했습니다. 전 당연히 '<스타일>과 현실의 에디터 세계' 쪽에 초점을 맞춘 기사일 것이라 생각하고 '그리하시라'는 답장을 보낸 바 있습니다. 그런데 기자님이 발췌한 대목 중 상당 부분은 '백영옥 작가를 바라보는 제 시선'에 관한 것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당혹스러웠습니다. 위 글은, 그야말로 '블로그용'으로 쓴, 기자 타이틀을 걸고 제대로 작성한 원고가 아닌, 퇴고 한번 없이 마구 떠오르는 단상에 대해 그냥 일개 블로거로써 그야말로 낙서하듯 '구시렁거린' 글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백영옥씨가 배가 아플만큼 부럽지도 않고, 그녀의 커리어에 비해 제 커리어가 굉장히 뒤쳐져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과감한 커리어 점핑으로 많은 현직 에디터들에게 귀감이 되어 준 백영옥씨의 재능에 대해 그리고 빠른 판단에 대해 몹시 근사하다고 생각하던 참이었습니다. 그저 읽는 분들 '말랑하게' 읽으시라고, 재미로 보는 <스타일>이니 만큼, 그에 관한 글도 그저 '재미 측면을 부각시켜' 작성했을 뿐인데. 의도치 않게 백영옥 씨에 대한 잘못된 정보와 편견을 심어줄 수도 있는 글이 되어 버렸습니다.
혹여 이 글을 읽고 '글 쓴 의도'에 대해 너무 진지하게 접근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또한 모 신문 기사에 실린 '기자의 편집의도에 의해 부분적으로만 인용된' 글을 읽은 분이 계시다면,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특히 공개되는 글의 위력을 간과한 채 '공인'인 백영옥 씨에 대해 진지하지 못한 사견을 늘어놓은 점에 대해 반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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