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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모스크바 관광에 본격적으로 나설 차례다. 우선 러시아 권부의 상징 끄레믈(크렘린이라고도 하고 크레믈린이라고도 하는데, 둘다 영어식 표기라고 하니 여기선 러시아 발음을 그대로 따르기로 한다)이 당근 빠따 첫 코스다. 우선 이상한 것, 끄레믈 앞의 붉은 광장에 서니 하나도 붉지 않다. 그런데 왜 붉다고 할까? 눈을 들어 천천히 끄레믈을 살펴 보니 붉은 벽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렇다면 차라리 붉은 벽 광장이라고 부르지. 왜 '붉은'이라는 말이 붙었는지 의문이 앞선다. 선배의 설명, "러시아 고어에서는 '붉다'라는 말은 '아름답다'는 뜻으로 쓰였어. 그래서 붉은 광장이라 부르는거지." 고개가 끄떡여진다. 이래서 당최 모르는 곳에 갔을 때는 가이드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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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레물을 둘러싼 엄청나게 높은 붉은 성벽. 원래 지어질 당시에는 흰 회벽이었는데, 16세기 이반4세(이반뇌제라고도 부른다)가 붉은 벽돌의 바실리 성당을 건축할 무렵에 붉은 색 벽돌로 바꿨다. 이반 4세는 자신의 아들을 죽인 자로도 유명한데, 바실리 성당의 건축가 2명이 영국으로부터 초청을 받자, 두 사람의 눈을 빼버렸다니, 참 끔찍한 인간이다. 그런데 러시아 역사에서는 이러한 끔찍한 군주가 여럿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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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레믈에는 볼셰비키 혁명의 지도자 레닌의 시신을 볼 수 있다. 방부처리돼 대중에게 전시되는데, 아니러니하게도 그의 시신을 보겠다는 관광객들이 저렇게 아침부터 장사진을 이룬다. 그래서 일찍 줄을 서지 않으면 오후 1시에 전시가 끝나버려 놓치기 일쑤다. 나 역시 첫날 레닌을 보러 나섰다가 실패하고 이튿날 2차 시도 끝에 겨우 그의 시신을 볼 수 있었다. 뭐랄까, 누워 있는 밀랍 인형 같은 그의 모습을 보자,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그가 세운 사회주의 정권이 무너진 지금의 상황을 그는 저승에서 개탄하고 있을까.  박제가 될 운명의 현실사회주의의 참담함을 그는 사후의 시신으로 증거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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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 이후 공산당 권력을 상징해온만큼, 끄레물 주변에는 소련의 건설 과정에서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상징물들이 여기 저기에 산재해 있다.  2차 세계 대전에서 전사한 무명 용사들을 추모하는 이 불도 그 가운데 하나다. 이 불이 그들의 영혼이라 생각한걸까? 생긴 이래 한 번도 꺼지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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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레믈 입구의 한 켠에는 볼셰비키 혁명과 소련의 건설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혁명 지도자들의 이름이 비석 위에 적혀 있다. 소련 해체 이후 한창 자본주의화의 길을 달리고 있는 지금의 러시아 인들이 이 비석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건국의 아버지들이여, 당신들은 실패했소!" 이런걸까? 아니면 "건국의 아버지들이여, 당신들은 실패했지만, 우리는 당신들의 정신을 잊진 않겠소. 더 튼튼한 나라를 건설해 인민들이 평화롭게 잘 사는 그런 세상을 만들겠소." 이런 걸까. 순진하게도, 자칭타칭 좌파인 나는 자꾸 후자쪽으로 기운다. 섣부른 역사적 열패감이 아니라, 유토피아에 대한 염원을 끝내 포기하지 않는 것. 그건 신자유주의의 물결을 타고 급속도로 보수화하고 있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절실하다는 것. 저 결과론적 실패자들을 보며 떠오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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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레믈 안으로 들어오면 엄청나게 큰 대포와 대포알이 관광객을 반긴다. 대포도 그렇거니와 대포를 받치고 있는 수레의 문양이 예술적이다. 옛날 사람들에겐 전쟁도 예술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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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레믈에 화재가 났는데, 서둘러 끄다가 청동 종의 일부가 깨졌다고 한다. 깨진 부분과 그 조각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게 이채롭다. 앞의 대포도 그렇고 종까지, 확실히 나라가 커서 그런지 뭐든 큼직큼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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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레믈 내부에 위치한 우스팬스키(성모승천 성당). 16세기 이반 3세가 이탈리아 건축가 피오 라반디를 초청해 짓게 했다. 피오 라반디가 러시아 기존 건축물들을 연구한 끝에 이후 러시아의 독특한 건축양식인 버섯 모양 돔(꾸뽈)을 처음으로 도입한 것으로 유명하다. 앞서 바실리 성당 건축가들의 눈을 뺀 이야기를 했나? 이반 3세 역시 피오 라반디가 건축을 끝내자 아예 그를 죽여 버렸다고 한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데 주저하지 않는 게 이들의 전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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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팬스키 내부의 벽은 온통 성인들의 그림이 그려진, 이른바 '이콘'들로 도배돼 있다. 이콘은 러시아 교회 미술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어느 성당에 가도 벽을 가득 채우고 있다.

우스팬스키를 구경하고 나오는데, 갑자기 군중들이 광장에 가득 모여 있다. 뭔가 해서 봤더니, 끄레믈 근위병들의 사열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여름 한철에만 기획되는 이 행사는 예고 없이 치러진다고 하는데, 앞서 본 레닌의 축복이었을까? 좀처럼 만나기 힘든 광경을 보게 된 행운을 잡은 셈이니, 급히 카메라를 꺼내 군중들에게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며 찍었다. 요건 특별히 동영상으로 준비했으니, 즐감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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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레믈을 나서면 그 유명한 바실리 성당이 다음 코스로 관광객들을 맞는다. 러시아의 상징답게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멋지게 서 있다. 왠지 이 성당은 눈이 잔뜩 쌓였을 때 보는 게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름다운 성당을 지어 놓고 두 눈을 잃은 건축가들의 억울한 마음이 짠하게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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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광장을 나서면 동양의 십이간지를 연상케 하는 동물들을 그려 놓은 이상한 바닥 조형물을 만나게 된다. 모스크바의 중심점인 가운데 서서 소원을 빌며 동전을 던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나 뭐래나. 주변에 두 분의 할머니가 관광객들이 던지는 동전을 열심히 줍고 있었다. 할머니 왈, "이왕이면 큰 돈을 던지시우, 그래야 소원이 이루어진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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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레믈을 둘러 본 뒤, 인근의 노보제비치 수도원을 방문했다. 이 수도원은 1524년 모스크바 대공 바실리 3세가 폴란드 령이었던 스몰렌스크를 탈환하고 그 기념으로 세웠다. 전쟁 중에는 요새로 사용했다고. 귀족들의 자녀나 여성들의 수도원으로 쓰여, 노보제비치라는 이름 역시 'New Woman'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뾰뜨르 대제가 자신과 권력 투쟁을 벌였던 누나 소피아와 첫째 부인 에브도키야를 유폐시킨 곳으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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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보제비치 수도원 옆에는 유명 인사들의 거대한 무덤이 있다. 비석을 세우고, 그 비석 위에 고인의 흉상을 배치한 형식이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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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의 뒤를 이어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지냈던 후르쉬초프의 무덤도 여기에 있다. 권불십년이라고 했던가. 그의 비석 앞에 놓인 꽃들이 말하는 것 같다. '화무십일홍'이라고.

끄레믈과 노보제비치 수도원 이야기를 하면서 한가지 빼 놓은 게 있다. 끄레믈에 있는 무기고와 다이아몬드 박물관(사진 촬영이 허가되지 않아 눈에만 담아 왔다). 혁명 이전 제정 러시아 시대에 황실이 사용하던 각종 의상과 장식품, 식기와 무기, 보석류 들이 대규모로 전시돼 있는데, 상상을 초월하는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특히 엄청난 물량의 다이아몬드는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들 정도. 농노와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 사치의 끝장을 보았던 짜르 황실의 만행(?)은 나중에 제정 러시아의 수도였던 상빼쩨르부르그의 여름 궁전과 예카째리나 궁전을 소개할 때 더 자세하게 말하고자 한다. 어쨌든, 요거 하나만 기억하자. 볼셰비키 혁명이 괜히 일어났던 게 아니라는 거~!.

(다음에 계속)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jj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호~~
    모스크바하면 항상 눈내리고 두꺼운 모자 쓰고 보드카와 애증을 다하는 이미지였는데... 너무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촬영하신 동영상도 다 보았구요.^^ 아우라는 미국이 러시아 앞에서는 안되는듯...
    계속 기대할께요. 부럽습니다. ^^

    2007.08.20 16:13
  2. 날라리아  수정/삭제  댓글쓰기

    꺄~~털썩!(부러워서 기절중-.-;;)

    2007.08.20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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