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은 여러 영화에서 즐겨 다뤄온 소재 가운데 하나다. 영화에 따라 모성애를 다루는 방식도 여러 가지다. 우선 왠지 코끝 찡해지는 가족 휴먼 드라마부터 연상된다. 지금까지 모성애를 다룬 대부분의 한국영화들은 가족 멜로라고 해도 무방하다.
지난 2005년 흥행에서 큰 성공을 거뒀던 <말아톤>이라든가, 2007년 개봉했던 배종옥, 강혜정 주연의 <허브> 같은 영화가 대표적이다. 자식을 위해서 그야말로 헌신을 아끼지 않는 어머니상이 그려지면서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이런 흐름은 얼마전 개봉한 독립 영화 <바다 쪽으로 한뼘 더>(위 사진) 같은 작품으로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이 작품은 기면증을 앓고 있는 고교생 딸과 그와 함께 살아가는 싱글맘의 이야기를 잔잔한 호흡으로 담아내고 있다.
이들 세 영화 모두 자식들이 장애인이거나 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설정해서 모성애의 크기를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앞서 말한 작품들이 전통적인 모성애 영화에 속한다면 최근 모성애를 다룬 영화들의 경우엔 심상치 않은 변화의 징후가 발견되고 있다. 첫 번째 변화는 우선 가족 멜로 영화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유사 모성애, 즉 친모가 아님에도 모성애적 상황을 펼쳐 놓는 작품들이 들어나고 있다는 것을 꼽을 수 있다.
2006년 개봉했던 엄정화 주연의 <호로비츠를 위하여>는 피아노 학원 강사가 할머니와 홀로 사는 동네 가난한 꼬마에게서 음악적인 천재성을 발견하고, 이를 끈질기게 발굴해서 결국 세계적인 음악가로 대성시키는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2007년 개봉했던 김혜수 주연의 <열한번째 엄마> 역시 유사 모성애라는 접근에서는 일맥상통한 작품이다. 어느 날 아버지가 데려온 이상한 성격의 여자와 이 집의 어린 아들이 티격태격하다가 어느새 모자간의 정이 싹트는 과정을 휴먼 드라마적인 호흡으로 담아내고 있다.
두 작품 모두 사회적으로 소외되거나 방치된 어린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가족 이기주의가 팽배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이렇게 소외된 어린이들을 따뜻하게 품어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사회적인 관심과 사랑을 촉구하는 영화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편으로 모성애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 최근 또 하나의 뚜렷한 흐름을 엿볼 수 있다. 범죄 누아르라든가, 스릴러 영화를 통해 모성애를 다루는 방식이다.
원신연 감독이 연출해 지난 2007년 예상 밖의 빅 히트를 기록한 작품, <세븐 데이즈>는 한 여성 변호사의 어린 딸이 납치되면서 벌어지는 상황을 상당히 빠른 호흡의 영상으로 펼쳐 놓고 있다. 변호사로서 사건을 냉정하게 접근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딸의 목숨이 걸린 절박한 상황이 되면서 여주인공은 거의 이성을 상실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모성애와 모성애가 충돌하면서 빚어지는 비극적인 상황을 통해서 모성애의 이면까지 생각해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괴물>로 한국영화 최다 관객 동원 기록을 세웠던 봉준호 감독의 신작이라서 높은 관심이 쏟아지고 있는 <마더>에서는 형사가 아니라 살인 사건 피의자의 어머니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지적 장애인인 아들이 동네에서 일어난 여고생 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된다. 자신의 아들이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는 어머니는 아들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경찰과 변호사를 대신해 직접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 나가는 과정이 상당히 긴장감 넘치게 묘사되고 있다.
김혜자가 연기한 영화 속의 어머니는 예의 헌신적이다. 그러나 한 순간 그의 모성애는 헌신을 넘어 섬뜩할 정도의 집착과 광기로 이어진다. 봉준호 감독은 김혜자를 통해 자식에 대한 희생의 차원을 넘어선 모성애, 사회적 통념이나 윤리에 위배될 정도로, 다소 극단적인 모성애를 묘사하고 있지만 그 모습엔 왠지 설득력이 엿보인다.
사실 우리 시대의 모성애에서그런 측면이 없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내 자식만 살고 보자”는, 그래서 교육 정책의 잔인성을 성토하지만 막을 수는 없는 모성애, 그렇게 무기력하고 한없이 이기적이 돼 버린, 그래서 나와 내 자식 아닌 모든 이들에 대한 어떤 적의까지 느껴지는, 왜곡된 어머니성의 살풍경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