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스포일러로 여겨질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한국에는 장르에 정통한 감독이 몇 명 있다. <놈놈놈>의 김지운, <박쥐>의 박찬욱, 그리더 <마더>의 봉준호. 셋 다 지금 한국영화에서 가장 각광 받는 감독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장르를 다루는 방식은 제각각이다. 김지운은 장르 그 자체의 쾌감을 극대화한다면, 박찬욱은 장르를 비틀고 유린한다.
그렇다면 봉준호는? 그는 정직하게 장르를 좇는다. 다만, 그 속에 직설을 풀어 놓는다. 스릴러적 관습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한국사회가 가진 구조적 폭력성과 부조리가 에두르지 않고 파열된다. 그리하여 그의 영화들은 장르적 쾌감과 더불어 관객들의 무의식에 새겨진 동시대적인 공포, 또는 상처까지 파헤치는 기이한 체험을 선사한다. 그의 영화에는 늘 '이곳'의 살풍경이 선연하다. 봉준호는 어쩌면 세 명의 감독 가운데 가장 한국적이고 가장 구체적인 영화를 찍는 감독이 아닐까.
<살인의 추억>이 공권력이 개인을 보호하지 못했던 권위주의 시대의 초상을 소환했으며, <괴물>이 한강 괴수라는 상상력의 소산을 통해 소외된 자들을 벼랑 끝으로 밀어 붙이고 멸살하는 신자유주의를 통찰했다면, 이번 영화 <마더>는 과거의 소환도, 상상력의 대상도 아닌, 낯설지만 익숙한, 그러니까 지금의 한국 사회를 상징하는 단면으로써 하나의 구체적 시공간을 뚝 잘라 관객들에게 제시한다. 그 시공간은 '추억'의 대상도 아니고 '가상'의 괴물이 아니고, 바로 우리 눈앞에 있는 것이라 더욱 끔찍하다.
<마더>는 겉보기에 모성애에 대한 영화다. 가족 멜로의 단골 메뉴였던 모성애가 스릴러 장르에 포획되는 상황은 아니러니하다. 한편으론 지당하게도 보인다. 승자독식과 무한경쟁의 정글에 내몰린 자녀들의 약육강식을 대리 체험해야 하는 이 시대의 모성애란 그 자체로 '스릴'이 아니던가. 앞서 원신연 감독의 <세븐데이즈>가 숭고하고 위대한 것으로 추앙받는 모성애가 현실 속에서 잔인하게 충돌하는 풍경을 보여줬다면, <마더>는 모성애가 집착과 광기로 이어지는 과정을 냉정하면서도 처연한 시선으로 응시한다. 그러나 그것을 단지 모성애가 갖는 어떤 보편적 특질의 하나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숭고하고 위대한 모성애를 집착과 광기로 이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시대의 '괴물'은 과연 누구인가?
앞서 말한 이유로 나는 <마더>가 모성애를 하나의 장르적 맥거핀으로 삼되, 먹고 먹히는 이 사회의 잔인성을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말하자면, 덜 가진 자가 훨씬 덜 가진자를 핍박하고, 바보가 더 바보를 착취하게 만드는 세상, 그러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다. 생생하고도 구체적인 현실에 뿌리를 박은 <마더>는, 그 덕분에 봉준호의 전작들을 포함해 최근 만들어진 그 어떤 한국영화들보다 훨씬 더 살떨리는 의문을 객석에 던진다. 이런 세상의 연출자는 누구일까? 누가 우리의 어머니를, 그리고 당신과 나를 이토록 독하고 잔인하게 만드는 것일까?
<마더> 봉준호 감독 인터뷰
Q. <마더>는 어떤 영화인가.
제목 그대로 엄마의 이야기, 엄마와 아들의 이야기이다. 아들을 위해서 온 몸을 내던지는 엄마의 이야기이다. 아들을 위해서 엄마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특히 아들이 여기서는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리면서 궁지에 몰리게 되는데 그런 아들을 직접 구해 보려고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이다.
Q.
촬영 전에 내가
Q. 김혜자 씨에게서 새로운 걸 끌어내고 싶어서 시작한 영화라고도 했다. 어떻게 디렉션을 드리고 어떤 식으로 함께 작업했는가.
명확히 말하면 새로운 것이라기 보다 원래 사실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간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런 모습들을 보여줄 기회가 없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기회를 마음껏 펼칠 수 있게끔 시나리오를 썼고, 이 스토리를 만들 때부터 그런 목적이 있었다. 이미 그런 장이 펼쳐졌기 때문에 혜자 선생님께서도 오랜 시간 그걸 기다리시거나 원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마치 오랜 시간 어항 속에 있다가 갑자기 바다에 풀려난 물고기처럼 마음껏 몸부림을 치신 것이 아닌가 한다. 한국 국민들이 다 그렇듯 나도 오랫동안 브라운관에서
Q. 기존 영화와 <마더>는 어떻게 다르고 어떤 의미인가.
어떤 하나의 소재나 스토리를 가지고 의미나 느낌들을 확대시켜 나가는 영화들을 좋아했다. 연쇄살인을 보다 보면 군사독재와 한국사회가 보인다거나 한강의 괴물을 보다 보면 그 괴물에 맞서 싸우는 가족들이 나오고 그 가족들을 도와주기는커녕 방해하는 국가와 사회가 나오는 뭔가 확산시켜 나가는 것을 좋아했는데 이번에는 반대였던 것 같다. 살인사건이 있고, 마을이 있고, 여러 가지 일들이 있지만 결국 엄마, 엄마와 아들, 그 중심부를 향해 계속 돌진해 들어가는 그래서 태풍의 어떤 눈, 또는 태양의 핵, 가운데, 본질을 향해 가운데를 향해 계속 돌진해 나가는 느낌으로 찍었다.
Q. 다른 작품과 달리 힘든 측면도 많았을 것 같다.
스텝들이나 제작팀이 워낙 뛰어나서 내가 했던 영화들 중에 일정이나 예산이 가장 정확하게 예정대로 되었다. 조감독 인덕 탓인지 날씨도 잘 따라줘서 정말 스케줄대로 잘 찍은 편인 것 같다. 그 공은 모두 스탭들과 제작사의 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나 자신을 좀 시험하는 듯한 느낌이 있어서 스스로에게는 가혹하게 했다고 생각하는데 모르겠다. 끝까지 가보자 이 영화는. 스케일이나 화려함의 끝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와 아들은 뭘까, 엄마의 심장은 어떻게 생긴 걸까, 또는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하면 끝까지 가볼 수 있을까 하는 그런 고민들을 하다 보니 좀 많이 힘들었던 것 같다.
되게 자연스럽고 순진하고 지방스러운, 강원도 정선에서 자라서 그렇지만 그런 면이 있어서 참 매력적이었고 영화 속 도준이 역할과 참 잘 맞고 그런 상태에서 출발을 했는데 작업을 해보니 몰랐던 면을 알게 된 것이 엄청난 승부기질이 있더라. 겉으로는 별로 표시를 안 내고 순둥이 처럼 미소를 띄고 다니는데 사실은 승부근성이 대단한 친구여서 그것을 점점 깨닫게 되면서 놀랐다. 원빈씨의 연기는 <마더>의 되게 자랑할 만한 어떤 한 부분인 것 같다. 처음에 배우 분들을 만나면 직접 사진을 찍어보는 습관이 있는데 혜자 선생님 찍은 사진과 원빈군 찍은 사진을 보니 눈이 되게 비슷했다. 그래서 그것도 되게 매력적이었다. 딱히 엄마와 아들을 설명할 필요 없이, 두 사람의 정면 얼굴을 나란히 보면 딱 엄마와 아들 같았다. 눈빛이 되게 비슷하고. 그래서 원빈씨 직접 처음 만난 게 2008년 1월, 최종 시나리오를 쓰러 가기 전 날이었는데 그때 기억이 생생하게 난다. 그때 처음 실제로 얼굴을 봤는데 그 순진무구하고 정말 시골청년 같은 느낌도 있고, 더군다나 혜자 선생님 눈빛과 비슷하고, 그래서 되게 좋은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그렇게 만나고 내려가서 시나리오를 쓰면서 대사에도 그런 것들을 많이 넣었다. 엄마랑 눈이 어떻다는 둥,, 영화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랬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원빈군과 처음 촬영 현장에 나가 본 것이 테스트 촬영 때였는데, 제천 시골의 어떤 장소였다. 거기 논길을 같이 걸으면서 이야기 해보니 그런 장소 역시 되게 편안해 했다. 그 동네 분위기도 잘 알 고 있고, 또 시나리오 얘기할 때도 느낀 건데 시골 마을에서 할일 없이 빈둥빈둥 돌아다니는 청년들의 느낌에 대해서 나보다도 훨씬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원빈군이 시나리오를 읽고 이야기 해준 여러 가지 분위기나 얘기들이 영화를 연출하는데 있어서 많이 도움이 되었다. 원빈 군한테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Q. 이 영화 또한 새로 만나는 배우들이 많다. 캐스팅의 기본 원칙은 어떤 것이었나.
나는 그냥 연기 잘하는 배우를 좋아한다. 그래서 연기 잘하는 배우들을 어떻게 찾아낼 것이냐. 오디션을 물론 열심히 하긴 하지만 그것을 100% 믿을 수는 없다. 오디션은 형식적으로 갖추어진 틀 안에서 짧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 제일 좋은 것은 그 배우들이 나왔던 영화, 단편영화나 대학로 연극하는 분들 같은 경우는 직접 가서 공연을 많이 본다. 이번에도 형사 역할로 한 분 나오시는 송새벽씨 같은 경우는 연극 공연을 가서 보고 되게 인상적이어서 같이 일하게 되었다. 그리고 윤제문씨나
Q. <살인의 추억>보다 더 심하게 로케이션을 다니신 걸로 안다.
심하진 않다. 장소의 개수는 <살인의 추억>의 1/2 정도였는데 이동기간이 훨씬 멀었다. <살인의 추억>이 장소가 50군데 정도, <마더>가 30군데 정도였던 것 같은데 대신 <살인의 추억>은 전라도 지역에 다 몰려 있었지만 <마더>의 경우는 거의 북한을 제외한 한반도 전체를 커버하고 있기 때문에 7-8시간씩 이동을 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제대로 된 로케이션,
Q. 헌팅의 원칙은 무엇이었나.
프리프로덕션 시간이 딱 정해진 상태 내에서, 우리가 3월말, 4월초부터 9월 말까지 5-6개월을 프리프로덕션을 하는데 그 기간에 원하는 장소를 다 찾고 싶었다. 기간적으로 그렇게 충분하진 않았다. 보통의 한국영화 프리프로덕션 기간보다 좀 길긴 하지만…. <살인의 추억>은 10개월에서 일년 가까이 프리프로덕션을 했었다. 결과적으로 많은 장소를 찾아냈었다. 짧은 시간에 그걸 해내야 했기 때문에 제작팀에서 많았을 때는 7-8팀 가까이 될 정도로, 거의 전 방위적인 전 국토 스캐닝 개념이었다. 심지어 울릉도까지 갔었다. 울릉도에서 우리가 뭘 찍진 않았지만 울릉도를 갔다 오는 길에 좋은 장소를 발견해서 거기서 클라이맥스를 촬영했다. 전 국토를 스캐닝 하다시피 뛰어다닌 스탭들과 제작팀의 공이 크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은 토건국가다’ 라는 말도 있듯, 개발이나 토건이 하도 많고 변화가 많다. 유럽의 중세풍의 도시처럼 건물 하나가 몇 백 년 동안 있고 그런 게 전혀 아니고, 한달 두 달 사이에 엄청난 속도로 모든 것이 바뀌기 때문에 확정이 된 장소는 그걸 촬영 때까지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 하는 보존의 문제가 우리 제작팀을 힘들게 했다. 그리고 촬영을 허가했다가 나중에 변덕을 부리시는 분들도 있기 때문에 그 모든 것들을 차례로 돌파한 덕분에 안정감 있게 그 많은 로케이션을 소화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세트나 컴퓨터 그래픽에 의존하지 않고 비주얼의 99%가 로케이션에 의존하게 되어 있다.
Q. 인위적인 미술이나 의상 같은 걸 다 배제했다. 프로덕션 디자인 측면에서 어떤 것이 주요 포인트였나.
제목 그대로 엄마의 이야기인데 특히 엄마가 보통의 엄마처럼 출발하지만 극단적인 폭주를 하는 엄마이기도 하다. 그래서 결국 엄마와 아들, 특히 엄마의 캐릭터에 총집중할 수 있는 미술 컨셉, 그게 중심이 되는 부분이었다. 아름다운 배경이 있지만 그 배경으로부터 엄마는 묘하게 분리되는 느낌. 그리고 그 엄마가 입는 옷, 엄마가 차지하는 컬러들에 대해
Q. 음악의 주안점은 어디에 두었나.
혜자 선생님도 그렇고, 예전에 변희봉 선생님도 그렇고
Q. 콘티를 일일이 직접 그렸다.
원래 내가 그렇게 한다. 장면을 설계하는 것이 감독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스토리보드 작가에게 그리게 해도 되긴 하는데 설명하는 것이 힘들어서 손은 좀 아프지만 직접 그리는 것이 더 정확하게 그릴 수 있고 나은 것 같다. <괴물>은 드라마 파트는 내가, 괴물이 등장하는 파트는 다른 스토리 보드 작가가 그렸다. 하지만 <플란다스의 개>와 <살인의 추억>은 내가 다 그렸다.
Q. ‘아나모픽 렌즈’를 쓰기로 결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흔히들 스케일이 큰 영화들이 많이 선택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굳이 아나모픽을 쓴 이유는 무엇이고, 결과에 만족하는가.
<마더>는 2.35:1 로 반대로 <괴물>은 1.85:1 로 찍었다. 오히려 드넓은 한강과 스펙타클이 있으니까 반대로 생각하시는데 오히려 그 반대 느낌으로 생각을 했었다. <마더>에서 2.35:1을 쓴 이유는 사실 양적인 스펙타클 같은 것에 집착하는 영화는 아니고 인물 중심의 영화, 특히 혜자 선생님 중심의 영화인데 그것에 오히려 더 맞는다고 생각했다. 인물을 잡았을 때 생기는 여러 가지 빈 공간이라든가 어떤 불안이나 히스테리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좋은 화면사이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2.35:1로 배우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잡았을 때 1.85:1로 잡았을 때보다 분명히 다른 느낌이 있다. 거기서 오는 강렬함이 있고. 개인적으로 2.35:1 영화들 중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폴 토마스 앤더슨의 ‘펀치 드렁크 러브’ 같은 영화이다. 그 영화도 전혀 규모가 큰 영화가 아닌데 인물이 갖고 있는 이상한 공허한 불안감이나 외로움이 2.35:1의 비율로 잘 묘사가 되어 있다. 어쨌든 <마더> 에서는 어머니와 아들, 혹은 혼자 있는 어머니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훨씬 더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괴물>과는 반대로 <마더>를 아나모픽으로 찍게 된 것 같다.
Q. 엄마에 관한 이야기인데 왜 제목을 ‘엄마’ 가 아닌 ‘마더’로 정했나.
영어로 한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처음에 ‘엄마’로 제목을 생각했었는데 고두심 선생님 출연하신 동명의 영화가 있어서 너무 근래에 같은 제목이 겹치는 것 같아 ‘마더’로 하게 되었다.
Q. 영화의 관람 포인트를 제시한다면.
되게 뜨겁고, 화상을 입을 만큼 뜨거운 영화이긴 하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편안한 마음으로 열린 마음으로 보셨으면 좋겠다. 아무런 생각 없이. 모든 관객 분들이 엄마, 또는 엄마에 대한 기억이 있다. 자신의 엄마라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엄마이신 분들은 나라면 저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시고 보시면 더 뜨겁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인터뷰 제공- (주)바른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