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론에 무엇을 기대할까? 물론 사람마다 천양지차일 것이다. 누군가는 경제 상황과 관련한 더욱 풍성한 정보를 원할 것이고, 누군가는 연예인의 사생활에 대한 자극적이고도 흥미로운 기사를 원할지도 모른다. 미디어에 대한 독자, 또는 시청자들의 욕구가 사람수만큼이나 다양하지만 송신자냐 수용자냐를 떠나 이 시대의 모두가 공인하는 언론의 덕목이 있긴 하다. 언론은 진실을 추구해야 하며, 시민의 알 권리에 복무해야 한다는 것.

이 지당해 보이는 덕목은, 그러나 현실 세계에선 자주 위협을 받아 왔다. 진실이 외부 권력의 압력이나 상업적 계산에 의해 은폐 또는 축소되는 일(용산 참사와 강호순 사건에 대한 청와대 관계자의 보도지침이 대표적인 사례다) , 알 권리를 빙자해 선정성을 극단으로 밀어 붙이거나 취재 대상의 인권을 침해하는 일 따위(이를테면, 신정아 알몸 사진이나 강호순 얼굴 공개 등). 언론의 정체성과 생존 방식을 놓고 언론간, 정치세력간 사상 최대의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이 같은 화두는 강 건너 불 구경할 일이 아니다. 최근 극장가에 걸린 이 영화가 남달라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미국 영화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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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트 오브 플레이>는 신문 기자의 이야기다. 워싱턴 글로브지의 민완 기자 칼 매카프리(러셀 크로)는 도심 밤거리에서 두 젊은이가 총에 맞아 숨진 사건을 취재하다가 미심쩍은 사실을 발견한다. 이 사건이 자신의 절친한 친구이자 하원의원인 콜린스(밴 애플릭)의 보좌관이 지하철 승강장에서 사고로 숨진 사건과 연관성이 있음을 알아낸 칼은 신참 여기자 델라 프라이(레이챌 맥아담스)와 함께 특별 취재팀을 꾸린다.

요컨대,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는 언론이 숨겨진 진실을 좇을 때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정석을 보여준다. 주인공 칼 매카프리는 그런 점에서 진실 추구의 화신이다. 그는 그가 좇는 사건에 친구가 연루돼 있다는 사실 때문에 때론 갈등하지만, 칼날 같이 냉철한 판단과 집요한 추적, 진실 보도에 대한 열망을 놓치지 않는다.

한편으로
이런 칼 매카프리의 열망에 찬물을 끼얹는 현실 요소들이 대립항으로 등장한다. 이를테면 이들은 콜린스 하원의원의 문란해 보이는 사생활에 대한 보도를 타 언론사에 물 먹은뒤 회사의 경영 상태를 걱정하는 편집장(헬렌 미렌)으로부터 호된 질책을 듣는데, 칼은 그것이 조작됐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버틴다. 빙산의 일각이 아닌 거대한 빙산의 맨 몸뚱아리가 드러나기 직전, 회사는 이제 취재를 끝내고 기사를 내라고 재촉하지만, 칼은 마감 시간을 늦추면서까지 최후의 진실 확인을 위해 현장을 뛴다. 결국 그 끈질긴 최후의 확인이 헤드라인을 바꾼다. 역사를 바꾼다.

영화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는 물론 바다 건너 미국의 언론계와 정가를 배경으로 한 픽션 스릴러이긴 하지만, 한국의 언론 환경에 비출만한 시사점을 안겨준다. 주요 일간지들이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사실과 관점만을 취사 선택하는 게이트키핑의 극단적 정파성을 드러내고 있는 한편, 인터넷은 이른바 '찌라시' 언론들의 무한대 속보 경쟁과 자극적인 낚시 기사가 만연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영화가 제시하고 있는 끈질긴 추적 보도의 미덕은 개에게나 줘 버릴 일인지도 모른다.(영화 초반, 칼은 자신을 상대로 손쉽게 취재를 하려던 인터넷판 기자에게 이렇게 냉소한다. "블로그 몇 개 돌아다니면 기사 나오지 않아?")

언론이 진실 보도에 대한 추구를 게을리 할 경우, 그 최종 피해자는 여론의 사각지대에 내몰리는 시민이 될 수밖에 없다. 언론의 환경 감시 가능이 작동하지 않은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IMF 사태는 그 타산지석이 됐지만, 내 보기에 한국의 언론들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이 땅의 모든 기자들이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를 관람하기를, 그리고 잊고 있던 그 열망을 되찾기를 희망한다.(포털 뉴스 편집자들도 꼭 좀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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