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 적은 제목은,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만큼은 낚시질에 해당할지도 모른다. 아마도 이 사회에서 스스로 자유민주주의의 옹호자를 자처하는 분들이라면 신해철이 처벌 받는 게 당연하다는 논지로 이 글을 오해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허나 어쩐다? 나는 지금부터 북한의 로켓 발사를 축하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한 신해철을 옹호할 생각이다. (그러니 이것 역시 국가보안법상 고무 찬양죄에 해당하는 걸까?)

당신은 자유민주주의적 가치가 뭐라고 생각하시는가? 빨갱이들의 위협으로부터 수호해야 할 숭고한 무엇? 그렇다면 틀렸다. 자유민주주의는 모든 시민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자유롭게 발언하는, '사상의 자유 시장'을 전제로 한 가치이다. 다양한 생각과 사상이 시장에서 자유롭게 경쟁하며 우열을 다투도록 내버려 두고 그 안에서 더 큰 설득력을 가진 사상과 생각이 자연스럽게 이기도록 하자는 것이 자유민주주의다. 서구의 시민 혁명이 봉건주의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피 흘리며 확인한 그 가치는, (우리가 근대화 과정을 통해 받아들였다고 믿고 있는) 자유민주주의의 대전제이자 존재 근거이다.

알다시피,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나라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에서는 신해철이 자신의 발언 때문에 감옥에 갈 하등의 이유가 없어야 한다. (실정법인 국가보안법이 있긴 하다. 이 법이야말로 우리의 체제가 자유민주주의가 아님을 반증하는 대표적인 봉건적 악법이다. 내가 노무현 전 정권을 결코 인정하지 못하는 것도, 우파라면 당연히 수행했어야 할 봉건주의 탈출을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누가 그런 그를 좌파라고 몰아 붙이는가! 진짜 좌파들이 땅을 칠 일이다.)

이 대목에서 자주 듣는 반론이 있다. 한반도의 특수한 상황. 그렇다. 남북이 대치되고 "북괴"가 호시탐탐 남한의 공산화를 노리는 마당에 자유도 무한정 허용할 수 없다는 것. 그런 상황 논리가 정당하고 설득력 있다고 믿는 분들이라면 아예 자유나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입밖에 내선 안된다. 사실이 그렇다면, 우린 지금 전체주의적 통제 국가에 머물러 있지만 자유민주주의를 추구만 할 뿐이라고 속시원히 인정했어야 옳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저들에 비해 훨씬 우월하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배웠다. 우리는 거짓말을 배운건가? 희한하게도, 이 자칭 '우월한 체제'는 반대 진영의 사람들의 입을 곧잘 틀어 막고, 나와 다른 생각을 가졌다고 아무나 잡아 감옥에 가둔다. 도대체 이게 뭐가 우월하단 말인가.

나는 신해철의 발언에 완전히 동의하진 않지만, 그가 한 말을 존중한다. 왜냐면 그건 그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시민 각자가 표현의 자유가 있는 것처럼 그에게도 표현의 자유가 있는 것이며, 혹시라도 그의 발언이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생각은 시민을 연예인 한 사람의 발언에 좌우되는, 판단 능력이 없는 바보로 치부하는 소산이다. (당신이 그런만큼 다른 이들도 똑똑하다.) 그런 생각을 한 이들은 정확히 말해, 자유민주주의자가 아니라 시민의 자율성을 의심하는 봉건주의자다.

생각의 자유, 표현의 자유, 발언의 자유. 그것이 자유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다. 따라서 그는 생각을 달리 하는 시민들에 의해 맹비난의 화살을 받을 수는 있어도(공론권적 발언에 대한 공론권적 책임!) 그 이유로 법과 권력에 의해 신체의 자유를 강탈 당해선 안된다. 그가 아무리 위험한 발언을 했어도 그래선 안된다. 그건 파시즘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는 건 체제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체제를 배반하는 모순과 자가당착에 빠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작 수호해야 할 핵심 가치를 내팽겨친 채 도대체 뭘 어떻게 수호하겠다는 말인가.  

신해철 사건은 그러므로 우리가 온전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와도 같다. 그를 처벌한다면, 더 이상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것이다. 한심하긴 하지만, 21세기 한국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 아닌!) '봉건과 근대의 대립'을 눈여겨 지켜볼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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