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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영화 <숏버스>를 본 건 지난 2006년 말 언론 시사회에서였다. 그로부터 2년하고도 3개월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오는 3월 12일 드디어! 이 영화가 개봉한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 영화에 관심을 가졌던 분들이라면 잘 알고 계실 것이다. 과도한 성기 노출과 성행위 장면의 노골성을 문제 삼은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상영 불가 판정과 다름 없는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았고, 수입사는 행정법원과 고등법원을 거쳐 대법원 상고심까지 가며 영화를 틀 권리를 달라고 매달렸다. 그 사이 제한상영가 등급은 위헌판결로 사실상 무효화됐고, 수입사는 결국 성기 노출 장면을 가림 처리해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얻어냈다.

우선, 한 사람의 관객으로서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의 감흥을 당시 썼던 블로그 글의 일부를 인용함으로써 대신한다.

<숏버스>는 남녀 관계의 절대 변수로써의 섹스를 관찰하며 우리가 섹스에 대해 갖고 있는 강박과 고정 관념들을 풀어 헤쳐 보인다. 이를테면 섹스의 목적은 오르가즘인가? 섹스 상황에서는 꼭 두 사람만 참여해야 하는가? 섹스는 왜 관계의 틀 안에 갇혀 있어야 하는 것인가? 등등. 그렇다면 누군가 이렇게 질문할 것이다. 그럼 뭐냔 말인가. 프리 섹스를 하란 말인가? 글쎄. 그건 영화를 본 당신이 판단할 몫이다. 어쨌든 무엇보다 선명하게 남는 메시지는 이거다. 전쟁보다는 섹스가 천만배는 낫다는 것이다. 사랑이 전제되든, 그렇지 않든 되지도 않는 대의명분으로 파괴를 일삼을 거면 차라리 쾌락에 탐닉하라는 얘기다. 서로에게 즐거움을 주라는 얘기다.

<숏버스>는 인간의 보편적 욕망이자 관심사 가운데 하나인 섹스를 말하는 영화다. 영화는 절대 섹스를 담아선 안된다고 법으로 금지하지 않은 이상, 그리고 성애가 인간 사이의 육체적 결합으로 구성되는 일련의 행위를 의미하는 이상, 그 결합의 풍경을 최대한 진실에 가깝게 보여주고자 하는 영화의 욕망은 어쩌면 당연한 노릇이다.

그걸 다 가려놓고 성 행위에 따르는 관계와 상처만을 논한들, 위선적인 것을 넘어 얼마나 우스꽝스럽냔 말이다. 감독 존 카메론 미첼의 그런 생각이 거침 없이 직진한 이 영화 속의 성기 노출과 성행위를 바라보는 것은, 그러므로 영화를 온전히 감상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다.

그런데도 법과 권력은 이 영화를 대중에게 보여줄 수 없다고 2년이 넘게 버텼고 여전히 온전한 개봉을 허하지 않고 있다. 국민의 법감정을 표면적인 이유로 내세우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어르신들이 여전히 '성기 노출=포르노'라는 문화 지체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혹은 자신들은 다 누려도 서민들만큼은 안된다는 문화적 신분 질서를 고수하고 싶으시거나.

사우나에만 가도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그 성기, 하물며 다비드 상에도 버젓이 달려 있는 그 성기, 온갖 서양의 고전 미술에도 나오는 그 성기를 영화에서만큼은 보면 안된다니, 그 발상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인간이 오로지 자신의 몸으로 서로에게 쾌락을 선사하는 순간의 아름다움과 인터넷 야동의 도착성을 혼동하는 시각이 오히려 음란한 것이다. 사람의 건강한 육체를 바라볼 때의 소탈한 경외감과 여학교 앞 바바리맨의 노출증적 폭력을 헷갈리는 무감각이 허탈한 것이다. 도대체 성애와 관련한 우리 사회의 이 위선적 이중성은 언제나 끝날 것인가. 

<숏버스>의 첫 장면은 자신의 성기를 입에 물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한 게이의 괴이한 요가 동작으로 시작된다. 이 장면이 온전히 보여지지 않는다면, <숏버스>는 반쪽짜리 <숏버스>다. 어쨌든 2년 3개월이나 끌어 그렇게 개봉한단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대한민국의 문화 수준이 딱 이만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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