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요즘 미국영화들이 심상치 않다. <본 얼티메이텀> <아이언 맨> <다크 나이트> 등이 제시한 할리우드 진영의 미학적 약진과 더불어, 최근 몇년새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 시상식을 전후해 극장에 걸리는 미국영화들은 묵직하고도 창의적인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지난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데어 윌비 블러드>가 그런 에너지의 욱일승천을 확인시켰다면, 올해 아카데미 주요 부문 후보에 오른 작품들은 그 파장이 이들 안팎에서 전방위적으로 퍼져가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는 듯한 분위기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공개된 <체인질링>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다우트>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비롯, 개봉을 앞두고 있는 <프로스트 vs. 닉슨>까지 가히 현기증이 날만큼 걸작들의 향연이다. 이런 마당이니 아직까지 그 실체를 확인하지 못한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와 <밀크> <슬럼독 밀리어네어> <레슬러> 등에 대한 신뢰와 호기심이 덩달아 하늘을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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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 시사회를 통해 본 <프로스트 vs 닉슨>은 올들어 지속되고 있는 내 감탄의 연대기에 방점을 찍어준 영화였다. 론 하워드가 메가폰을 쥔 영화는 "올해 최고 영화 중 하나"라고 추켜 세운 피터 트래버스의 극찬이 허풍이 아님을 증명한다.

두 이름 사이에 놓인 'vs'가 암시하듯, 이 영화는 두 남자의 대결 이야기다. 둘다 실존 인물이다. 한 사람은 영국 출신의 토크쇼 진행자 프로스트, 한 사람은 정적들을 도청한 대가로 미국 역사상 최초로 임기중 사임한 닉슨 전 대통령. 한 몫 단단히 챙기려는 동상이몽을 품고 두 사람은 TV 인터뷰를 통해 격돌한다. 국민의 공분을 산 닉슨을 공개적으로 망신시키려는 진행자, 그리고 한물간 플레이보이 방송인을 제물 삼아 이 기회에 실추된 명예까지 회복하려는 닉슨의 입담 대결이, 마치 고수들이 일합을 겨루듯, 시종 일관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어내며 진행된다.

영화 <프로스트 vs. 닉슨>은 미디어와 정치 권력의 함수 관계에 대한 무시못할 시사점을 던진다. 어떻게 상업적 목적과 진실을 동시에 추구할 것인가. 무엇을 얼마만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를 놓고 TV 매체의 막전과 막후에서 벌어지는 진실 공방과 미디어 산업 내의 역학 관계는 방송법 개정안의 상정을 앞두고 또다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우리의 시점에서도 흥미로운 레퍼런스가 아닐 수 없다. 미국 역사에 오점을 남긴 정치적 부패의 상징자에게 보내는 조롱의 유머는 보너스다.  

론 하워드의 속도감 넘치면서도 정교한 연출은, 두 남자의 '말빨' 드라마를 한 편의 흥미진진한 무협영화처럼 느끼게 한다. 데이빗 프로스트와 닉슨 전 대통령의 인터뷰 영상을 기초로 2006년 초연된 원작 연극의 생동감 넘치는 각본을 만들어낸 피터 모건의 공이 크지만, 연극에서 영화로 그대로 옮겨온 두 배우, 즉 프로스트 역의 마이클 쉰과 닉슨 역의 프랭크 란젤라의 내공도 한치의 빈틈없이 완벽하다. 각각 영국과 미국 연극계의 대표 선수들이 스크린을 통해 또 다른 차원의 실력 대결을 펼친다. 3월 5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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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어울림  수정/삭제  댓글쓰기

    '벤자민..'보기 전에 광고로 나오던데 마지막 부분이 인상적이였습니다. 마침 우리나라 상황과 좀 비슷한 면도 있고 잘 맞춰 나온듯;; (정치영화치곤) 예상 외로 흥행하지 않을까 합니다.

    2009.02.21 00:27
  2. BlogIcon qwer999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고편 근사하게 잘 나왔더라고요.
    기대 한가득!

    2009.02.21 12:46
  3. 날라리아  수정/삭제  댓글쓰기

    침이 꿀꺽 넘어가는군요. 위시리스트 킵!

    2009.02.24 12:03
  4. 여자,신화  수정/삭제  댓글쓰기

    론 하워드의 감각은 탁월합디다. 역쉬~
    입담 하나로 이루어지는 영화의 통일성~캬아~ㅋㅋ

    2009.02.25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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