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우트' 잔인한 심리보고서

영화 이야기 2009. 2. 17. 09:47 Posted by cinemAg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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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로 여겨질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이 영화의 출연배우들이 얼마나 연기를 잘했는지에 대해선, 많은 상찬이 이어진 마당이니 따로 강조하고 싶지는 않다. 배우들의 연기에 감탄하는 일은, 어쩌면 상영관에 불이 켜지고 화장실에 다녀온 뒤에나 한숨 돌리며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소름 끼치는 연기 뿐 아니라 극 자체가 갖는 흡인력도 대단하기 때문이다.

동명 연극의 원작자 존 패트릭 샌리가 직접 연출한 영화 <다우트>는 제목 그대로 의심에 대한 영화다. 의심하고 또 의심한 끝에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건 사유하고 있는 내 자신이었다는, 데카르트의 그 방법적 회의가 가리키고 있는 의심이 아니라, 여기선 나와 다른 것에 대한 불신과 혐오라는 뜻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알로이시스 교장 수녀(메릴 스트립)는 제임스 수녀(에이미 아담스)가 지적했듯, 단지 플린 신부(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긴 손톱이 마음에 안 들었을 뿐이며, 그가 차에 설탕을 세 개나 넣는 게 싫었던 것 뿐이다. 물론 보수와 진보라는 교육관의 보이지 않는 대립이 배경으로 작용했겠지만, 신념의 발현태가 행동이라면 알로이시스는 플린 신부의 행동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 혐오는 제임스 수녀의 사려 깊지 않은 추측에 힘입어 플린 신부가 흑인 학생과 동성애적 행위를 했다는 의심으로 전이된다. 그리고 그 의심은 플린 신부의 저항에 부딪히며 확신으로 증폭된다. 플린 신부의 입장에서 근거 없는 낭설에 불과하지만, 알로이시스 수녀의 입장에서는 근거가 충분하다. 그것은 경험에서 우러나온 직관이다. 그녀는 스스로 사람 보는 눈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알로이시스 수녀를 보며 우리는 쉽게 플린 신부의 입장에서 분통 터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내 그녀의 상황을 연민할 수밖에 없게 된다. 사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근거 없는 직관에 휩싸여 살고 있는가. 혐오가 의심을 부르고, 의심이 확신으로 변하는, 비 논리적 상황을 얼마나 자주 목격하고 있는가.

싫은 건 그냥 싫은 것이다. 이유가 없다. 불과 1년 반 전에는 이게 다 다 무현 때문이었고, 지금 세상에선 이게 다 MB 때문이다. 빈자는 게을러서 가난한 거고, 부자들은 부도덕해서 풍족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쥐뿔도 없이 잘난 척 하고 싶어하고, 대중은 우매하기 이를 데 없어서 쉽게 조작의 대상이 된다. 구체는 휘발되고, 일반화된 적들이 가득하다. 이해보다 혐오가 빠르다. 관용보다 적대시가 편리하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의심이 떠나지 않는다며 제임스 수녀를 붙잡고 통곡하는 알로이시스 수녀에게서, 우리는 의심과 혐오를 지니고 살아가는 자의 불행을 절감한다. 그리고 나 역시 플린 신부보다 알로이시스에게 훨씬 더 가까이 있음을 자인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므로 <다우트>는 그 어떤 심리학 논문보다 더 냉철한, 잔인할 정도로 냉소적인, 우리 자신에 대한 심리 보고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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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화를 보면서 연기 참 잘한다고 생각했다면, 그만큼 극에 대한 몰입도는 낮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증거하는 것인지도 모르니까.
    ->이거 좀 지나친 비약 아닙니까? 이 멘트는 결국 영화를 보면서 연기 참 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몰입도가 낮다라는 의미를 일반화 시켜버리는 듯 한데요.
    광희 기자님 글을 종종 보는데 가끔 이런 식의 일반화를 고민없이 기록하는 것 같아서 아쉬울 때가 있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고, 어떤 사견의 일부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결국 이 기록 자체가 전체를 가늠하는 잣대같아 불편해요. 저처럼 세 배우의 연기에 감탄하며 본 사람 입장에선 당연하지 않을까요?
    남들이 많이 얘기했으니 난 하지 않겠다, 이 정도는 모르겠지만 그 다음 문장들은 불필요하게 자신의 논리를 밀어붙이기 위해 비약적으로 덧붙인 느낌이군요.
    어쨌든 글은 잘 봤습니다. 건필하세요.

    2009.02.17 00:46
    • BlogIcon cinemAgora  수정/삭제

      딴엔 '연기도 좋지만 극 전개 자체가 너무 휼륭했다'는 표현을 약간 뒤틀어서 저 따위로 해본 건데 비약이나 일반화의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의도가 그렇지 않더라도 그렇게 읽힌다면, 제 글투가 가진 표현력의 한계입니다. 고칠 수 있도록 고민 좀 해보겠습니다.

      2009.02.17 09:41 신고
  2. 윤남수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님의 댓글과 아고라님의 답글 시각을 보니 제가 막 읽은 글은 아고라님이 수정한 글이겠군요. 그래서 음..님의 댓글에서 언급되었던 부분은 지금은 없고요. 아고라님의 답글 마지막에 " 고칠 수 있도록 고민 좀 해보겠"다는 말이 반영된 결과물이겠죠. 소통이 이루어지는 어떤 광경을 보는 듯해 좋습니다.

    저는 이것을 2006년 겨울에 연극으로 보았어요.김혜자씨가 원장수녀로 나왔죠.그때 생각할 거리를 주었는데 영화로도 보아야겠어요.

    2009.02.17 14:06
  3. 이 영화에서 의심의 의미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영화에서의 의심의 의미는 '불신과 혐오'라기보다는, 맹목적인 믿음이나 확신의 반대로서의 의심이 아닐까요? 영화의 첫부분에서 플린 신부가 '의심도 신뢰와 마찬가지로 통합하는 힘이 될 수 있다'고 설교한 것에 대해 알로이시스 수녀가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알로이시스 수녀는 의심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인상이었잖아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알로이시스 수녀는 영화가 거의 끝날 때까지 플린 신부가 도날드 밀러를 성적으로 학대했다는 것을 한치도 의심하지 않았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화를 보면서 불편하게 느끼는 이유는 아마도, 알로이시스 수녀가 플린 신부를 의심하기 때문이 아니고, 충분한 근거 없이 플린 신부의 유죄를 확신하기 때문일 것이구요..

    2009.03.06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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