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감히 경찰을 모욕하는가

민섭's 3M+α 2009. 1. 23. 22:05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연예부 기자의 모경찰랑가(慕警察郞歌)  

바로 위에 있는 이번 포스트의 부제목은 득오(得烏)가 화랑 죽지(竹旨)를 사모하여 지은 향가 ‘모죽지랑가’(慕竹旨郞歌)를 패러디한 것이다. 실제로 이 포스트의 내용이 연예부 기자가 취재 과정에서 만난 경찰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경찰에 남자만 있는 게 아니므로 본래는 사내 랑(郞)자를 빼야 하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랑’자가 들어가야 더 그럴싸해 보여 그냥 뒀다.


영화인 집회 현장의 경찰들


사회부 기자가 아닌 연예부 기자가 경찰을 만나는 일은 극히 제한돼 있다. 연예인이 사건사고에 휘말려 경찰서에 오가는 상황이 벌어질 경우에 한해 경찰서로 취재를 나가기 때문이다. 필자의 경우 연예계 사건사고를 전문으로 해 비교적 자주 경찰서를 오고가지만 그 역시 흔한 일은 아니다. 경찰 역시 비슷한 입장일 것이다. 경찰서를 출입하는 사회부 기자가 아닌 연예인이 관련됐다고 개떼처럼 몰려드는 연예부 기자들이 반가운 존재만은 아닐 것이다. 그런 만큼 연예부 기자와 경찰의 만남은 다소 부자연스럽고 비정상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한정된 경험으로 취재 과정에서 겪은 경찰을 이야기하는 것인만큼 이 포스트 역시 제한적인 내용일 수밖에 없음을 먼저 밝힌다. 하지만 10여 년의 기자 생활을 하며 느낀 대한민국 경찰의 모습은 참으로 위대했다. 그러니 제목 역시 ‘모경찰랑가(慕警察郞歌)’다. ‘용산 참사’가 불거진 이 시점에서 이런 내용을 한 번 쯤은 언급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 사실상의 연휴 첫날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았다.


아! 아름다워라! 경찰의 배려


기자 입장에선 경찰서에서 만나는 형사들이 참으로 밉다. 도무지 취재에 협조를 안한다. 물론 거기에는 다 합당한 이유가 있다. 우선 무죄추정의 원칙 때문이다. 경찰에선 수사를 진행하지만 재판부에서 유죄 선고를 할 때까지는 모든 피의자에게 무죄가 추정된다. 아무리 유명 연예인이 특정 사건에 휘말려 기소돼 피의자 신분일 지라도 아직 유죄가 확정된 상황은 아니다. 따라서 경찰은 피의자를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최대한의 배려와 대우를 해주는 것이다. 또한 연예인의 경우 피의 사실과 관련된 내용이 매스컴에 보도되는 것만으로 엄청난 사회적 형벌이 뒤따른다. 당장 방송 등의 연예계 활동이 중단되고 이미지 타격이라는 후유증을 겪어야 한다. 최근 서울중앙지법 형사 13단독(조한창 판사)의 심리로 진행된 결심 공판에 피고인 자격으로 출석한 강병규가 “방송활동을 못 한 것은 이미 사회적 형벌이다. 정상을 참작해 달라”고 얘기한 까닭 역시 여기에 있다. 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이후라면 모를까 그 전까지는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최대한 연예인의 피의 사실을 취재진에게 감춰 그들이 겪을 사회적 형벌을 조금이나마 줄여주려 하는 게 대한민국 경찰의 아름다운 배려라는 얘기.

                      경찰서에서 취재진에게 브리핑하는 변호사. 경찰서 취재 현장 분위기를
                 보여주기 위한 사진일 뿐 특정 사건과 직접 관련된 사안은 아니므로 얼굴
                 을 지웠다.

구체적인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가수 이재원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경찰에서 조사가 이뤄지는 동안 철저하게 보안이 유지된 까닭에 그 사실이 매스컴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는데 이는 매우 특이한 케이스에 속한다. 연예인을 비롯한 유명인을 검거하는 경우 해당 팀의 고과 점수가 더 올라가므로 대부분의 형사는 일부러 친한 기자에게 그 사실을 살짝 흘리곤 한다. 그런데 이재원의 경우 법원에 영장실질검사를 받으러 온 모습이 법원출입기자의 눈에 띄지 않았다면 매스컴이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지나갔을 수도 있었다. 이재원의 검거 사실이 알려진 직후에도 담당 팀에선 일체의 언급을 회피했다. 대개의 경우 관련 내용이 알려져 취재진이 몰려들면 대략의 사건 요지 정도는 언급해주는 게 경찰과 매스컴 사이의 상례다. 경찰이 최소한의 사실 관계는 매스컴에 확인해줘야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재원 사건 담당 부서에선 ‘이재원’이란 이름조차 언급하지 않았다. 이재원이 경찰서 유치장에 있다는 사실조차 알려주긴커녕 부인했다. 그리고 구속영장이 떨어졌지만 합의로 사건이 마무리 된 이후에도 경찰은 취재진이 대부분 돌아갈 때까지 이재원이 유치장에 머물 수 있도록 배려해줬다. 적어도 검찰에 합의서가 도착해 이재원의 석방이 결정된 순간부터 그가 경찰서를 빠져나올 때까지 2~3시간 가량 해당 경찰서 유치장은 범죄자가 마무는 공간이 아닌 연예인 대기실이 된 셈이다.

이번 전지현 휴대폰 복제 사건도 비슷하다. 소속사 정훈탁 대표의 소환 시점을 두고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난무하는 상황에서 먼저 경찰에 소환된 이는 정 대표의 친 형인 정 아무개 고문이다. 그런데 경찰서 앞에 몰려든 취재진들로 인해 정 고문이 난처해하자 담당 형사가 내려와 직접 그를 데리고 들어갔다. 그런데 담당 형사가 너무 자연스럽게 누군가와 들어가자 취재진은 정 고문을 또 다른 형사로 오인해 단 한 장의 사진, 단 하나의 질문도 없이 물을 먹어야 했다.

이처럼 경찰이 007 작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피의자나 참고인 신분으로 경찰서를 찾는 연예인이나 관계자를 보호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과거에는 취재진이 모르는 뒷문을 자주 이용했는데 요즘에는 최근 연예부 기자의 수가 급증해 대부분의 출구를 봉쇄할 수 있게 된 뒤 이 방법도 구식이 되고 말았다. 그렇지만 경찰의 배려심 역시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고 최진실의 25억 사채 루머를 인터넷 퍼뜨린 것으로 알려진 백 아무개 씨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조사를 받은 뒤 경찰서를 빠져나가야 하는 백 씨에겐 엄청난 취재진을 뚫고 나가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에 경찰은 교복을 갈아입고 경찰서를 빠져 나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 얼마나 고마우면 담당 형사에게 ‘무사탈출^^’이라는 문자를 다 보냈을까.


그런데 참으로 이해가 쉽지 않은 대목이 있다. 역시 연예부 기자의 한계 때문일까. 왜 무죄 추정의 원칙으로 배려심으로 똘똘 뭉친 경찰이 이번 용산 철거민 농성장 화재참사에선 돌변했던 것일까. 대개의 경우 농성자들이 준비한 음식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며 회유와 압박을 거듭한다는 데 이번에는 상당히 빨리 작전에 돌입했다. 그것도 경찰특공대까지 투입하는 강수를 둬가면서 말이다. 물론 농성자들은 현행범이라 무죄 추정의 원칙을 적용하는 데 또 다른 기준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더 추악한 연예인의 사건사고 현장에서도 배려심을 잃지 않던 경찰이 용산 철거민 농성자들에게만 그렇게 빠르고 강한 방법을 동원한 이유는 무엇일까. 경찰의 배려심에 늘 놀라움을 금치 못하던 부족한 연예부 기자 입장에선 정말이지 이해가 쉽지 않은 대목이다. 


행여 연예인은 연예인이라서 그런 대접을 받았던 게 아닐까 생각하면 너무 처량해진다. 그렇다면 ‘연예인은 연예인이라 잘못을 해도 그런 좋은 대접과 배려를 받고 철거민은 돈 없고 힘없는 자들인 터라 생명이나 안전 등을 전혀 배려 받지 못한다’는 논리가 가능해지는 것 아닌가. 또 ‘촛불시위 참가자들의 경우 여론의 비호를 받고 있어 불이 아닌 물대포를 사용하는 배려를 했다’는 논리도 가능해진다. 그럴 리 없지 않은가! 그들은 민중의 지팡이, 대한민국의 치안을 책임지는 이들인데, 정녕 그럴 리는 없지 않은가.

                      조서 내용을 검토 중인 경찰의 모습

아! 눈부시다! 경찰의 능력


대한민국 경찰의 수사 능력과 범죄 인지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연예부 기자로 근무하며 얼마나 이런 현상을 자주 목격하고 감탄했는지 모른다. 자! 우선 범죄 인지 능력을 보자. 최근 연예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전지현 휴대폰 복제 사건이 대표적이다. 전지현은 휴대폰이 복제당하고 얼마 되지 않아 이동통신사를 통해 휴대폰이 복제됐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전달받았다고 한다. 대개의 경우 그 사실을 경찰에 신고하겠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전지현은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실은 경찰에 의해 인지돼 수사가 이뤄져 만천하에 알려지게 됐다. 피해자가 복제 사실을 알고도 경찰에 신고하지 못한 채 시름하고 있는 상황에서 경찰이 백기사처럼 나타난 것이다. 물론 항간에선 전지현이 수사를 의뢰했다는 얘기도 있다. 수사 상황을 훨씬 이해하기 쉬운 주장이나 경찰은 이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수사 능력 역시 뛰어나다. 가수 이재원 사건을 보자. 합의가 된 직후 이재원 측이 설명한 사건의 정황은 대략 이렇다. 함께 술을 마신 피해 여성이 만취해 모텔로 데려가 쉴 수 있게 해줬을 뿐이고, 피해 여성의 옷이 더럽혀져 있어 벗겨 세탁을 해준 것일 뿐이라고. 애초 피해 여성이 오해한 피의자는 이재원의 친구인데 이재원만 술자리 끝까지 같이 있었고 모텔에 데려다 주기까지 해 오해를 받았다고 한다. 피해 여성 역시 이재원에게 보낸 문자 등을 통해 이재원의 주장에 힘을 더했다. 그렇다면 이재원과 피해 여성 사이에는 아무 일도 없었고 조그만 오해만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럼에도 경찰은 이재원에게 법원의 구속 영장이 발부되도록 만들었다. 그만큼 경찰이 조서를 잘 만들었다는 얘기가 된다. 법원에서 구속 영장 발부에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경찰의 조서는 구속 영장을 발부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는 얘기가 된다. 피해여성과 이재원 모두 조그만 오해라고 여기는 부분을 가지고 구속 영장까지 받아낼 수 있었다니, 그 경찰의 조서 작성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 지 대략이나마 가늠해볼 수 있다. 물론 경찰이 수사한 내용, 다시 말해 조서에 기재된 내용이 이재원의 주장과 일치하는 지 여부는 확인이 불가능하다. 앞서 밝혔듯이 담당 경찰은 사건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는 물론 이재원의 이름조차 언급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삼순이 아버지'로 알려진 탤런트 맹봉학 씨가 촛불 집회 참석과 관련해 경찰의 출석 요구서를 받은 사건도 있었다. 수많은 촛불 집회 참가자 가운데 연예인인 그를 찾아내 출석 요구서를 보낼 정도로 경찰은 세심한 관찰력을 겸비하고 있기도 하다.


                                용산 화재 참사 현장

그런데 최근 일부 보수단체와 보수 논객들이 이런 경찰의 출중한 능력을 폄하하고 있어 가슴이 아프다. 용산 참사의 책임이 농성자에게 있다는 그들의 주장은 대한민국 경찰의 능력을 강도 높게 의심하는 것이다. 검찰 수사 중간발표 내용을 보면 농성자들이 갖고 있던 화염병이 화재의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검찰은 의도적으로 던진 것인지 실수로 떨어뜨린 것인지 여부는 아직 확실치 않다는 입장이다. 검찰의 수사 내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화염병을 들고 있던 농성자 가운데 한 명이 경찰 특공대와 맞서다 실수로 떨어뜨려 화재가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갑작스런 경찰특공대의 진입에 놀란 농성자 가운데 누군가가 실수로 화염병을 떨어뜨리는 일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경찰이, 그것도 정예의 경찰특공대가 이런 예상이 가능한 상황을 준비하지 않고 망루에 진입했을까. 그렇다고 주장하는 것은 곧 이는 경찰이 무능하다고 얘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대테러 등의 임무를 주로 소화하는 경찰특공대가 이런 최소한의 발생 가능 상황에 대한 준비도 없이 망루에 진입해 화재 참사가 일어났다니 도대체 대한민국 경찰을 얼마나 우습게 보면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럴 리 없겠지만 만에 하나 농성자 가운데 누군가가 일부러 화염병을 던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그런데 화염병 등 발화위험물질이 가득한 망루에 진입하면서 경찰특공대가 이런 만약의 상황을 대비하지 않았다는 얘기 역시 이해가 쉽지 않다.

역시 연예부 기자라 한계가 크다. 경찰 특공대라면 드라마나 영화에서 본 모습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라! 얼마나 완벽한 준비를 하고 하나하나 예상 가능한 상황에 모두 대처하며 작전을 수행하는가. 물론 시한폭탄이 설치돼 있는 등 시간의 한계가 명확한 작전에선 다소 준비가 미흡할 수 있지만 이번 사건이 과연 그렇게 준비 시간이 부족할 만큼 촌각을 다투는 작전이었을까.

물론 일부 보수층이 이런 논리로 화재참사의 원인이 경찰이 아닌 농성자에게 있다고 주장하려는 것일 지도 모른다. 이 논리는 화재참사의 책임을 농성자에게 미뤄놓을 순 있지만 이는 곧 대한민국 경찰의 무능함을 그대로 인정하는 꼴이 될 수도 있다. 경찰이 봉인가! 차라리 경찰의 능력은 우선 인정하고 뭔가 실수가 있었다거나 작전 자체를 무리하게 강행한 책임자들의 잘못을 추궁하는 게 훨씬 현실적이다. 누군가 실수를 범한 이, 내지는 무리하게 작전을 강행한 윗선 몇 명을 지키기 위해 대한민국 경찰의 무능력을 만천하에 알려 경찰 전체의 명예를 깎아내릴 필요가 있을까.

필자는 대한민국 경찰을 사랑한다. 이번 용산참사를 바라보며 일부 경찰 윗선이나 관련 부처 윗선 공무원에겐 상당부분 실망한 게 사실이나, 그로 인해 대한민국 경찰 전체를 욕해선 안 될 것이다. 진정한 경찰의 명예를 드높이고, 경찰의 진정한 능력을 전 국민에게 보이기 위해서라도 이번 용산 참사의 정확한 진실이 명확하게 드러나길 바란다. 가능하다면 그 역할을 경찰이 직접 맡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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