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좋았다. 엄청 노력한 흔적이 엿보이는 김강우의 근육질 몸매로 한껏 시선 가로챈 뒤(첫 장면의 엉성한 영어 대사는 좀 깼지만), <타짜>에 버금갈만한 도박 장면의 긴장감. 주인공 천수의 절박한 상황을 제시하기 위한 도입부로는 꽤 근사하다고 생각했다. 바다 배경의 장면이 많아서인지 몰라도 화면의 때깔도 준수하고, 강사장으로 나온 조재현의 육중한 등장도 매력적이다.
헌데, 이야기가 풀려가면서 슬슬 맥이 빠진다. 도박 빚에 포위된 천수가 해상으로 마약을 몰래 나르는 이른바 ‘마린 보이’로 발탁되기까지의 과정은 괜찮은데, 이후부터 영화는 멜로와 누아르, 액션 활극을 오락가락하며 중심을 못 잡는다. 스크린 위 인물들만 시끌벅적한 데 객석에선 하품이 터져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영화가 그렇게 된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니 몇 가지 꼽을 수 있겠다. 우선, 이건 매우 결정적인 흠인데, 영화는 마린 보이의 해상 마약 운송 과정을 박진감 넘치게 표현할 것이라는 기대를 배신한다. 잔뜩 뭔가 있을 거라고 변죽만 울려 놓고는 막상 그 운송 과정은 극도로 축약돼 있는데다, 긴장감도 없다. 여하튼 육지 위에서 사랑 놀음이나 하고 배신과 협잡의 정신 없는 드라마에 꼬여 든 마린 보이는 보기에 답답하다. 왜 그랬을까? 제작비가 모자라서?
두 번째 이유로 인물들간의 갈등 구조에 잔가지가 너무 많다. 이 놈이 저 놈을 배신했고, 그래서 복수를 하는 건데 저 놈이 상황이 바뀌어서 또 배신을 하고 그 과정에서 오해가 생기고, 그리하여 이렇게 저렇게 그렇게 되는 거란다. 꼬인 실타래를 풀어 줘야 하는 순간까지 마구 엉킨다. ‘이거 뭥미?’ 하는 순간에 인물들은 개연성 없이 틈만 나면 서로에게 권총을 들이댄다. 충분히 예상 가능한 파국과 해소를 향해 지 혼자 좋아서 갈짓자로 달려가는 형국이다. 감독이 만약 <오션스 일레븐>같은 하이스트 장르 영화의 쾌감을 꿈꿨다면 애당초 플롯과 캐릭터를 조감하며 장악하지 못했으니 시늉에 그치고 만 셈이다.
세 번째 이유는 배우들간의 화학 작용이 약하다는 점이다. 조재현은 충분히 카리스마 넘치고, 김강우와 박시연의 젊고 싱싱한 육체로 뿜어내는 에너지도 썩 흐믓하다. 형사 역으로 나온 이원종의 광기 넘치는 연기도 그 자체로는 볼만하다. 여기에 오광록까지 가세했으니 출연진은 그야말로 '빠방'하다. 하지만 이들이 함께 엮일 때의 파장이 이상하게도 약하다. 아귀가 맞지 않고 따로 노는 느낌이다.
이런 흠이 없었다면 충분히 매력적인 이야기에다 한국사회의 알레고리로 새겨볼만한 구석이 적지 않은 영화로 탄생할 '뻔' 했다. 내 보기엔 욕심이 과했던 것 같다. 갈등 구조를 더욱 단순화하고, 해상 액션에 더 초점을 맞췄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랬다면 이렇게 용두사미는 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연초에 시사회를 통해 본 세 편의 한국영화, 유감스럽게도 3전 전패다. 2월 5일 개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