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인질링' 가슴 먹먹해지는 141분

영화 이야기 2009. 1. 19. 21:45 Posted by cinemAg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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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설 연휴 개봉작에 대한 연속 프리뷰, 4번째이자 마지막 작품은 노장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체인질링>이다. 가장 맛난 부분은 아껴두었다가 가장 나중에 먹는 심정으로, 이 작품 <체인질링>에 대한 말을 아껴뒀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올 설 연휴 개봉작 가운데 내가 가장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라는 얘기다.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요즘 부쩍 실화 소재의 영화들이 많이 개봉하고 있다. 앞서 소개한 <작전명 발키리>와 연초 개봉한 <디파이언스> 2차 대전기의 실화가 바탕인데, 이 영화 <체인질링> 역시 1920년대 말 미국 LA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사건을 모티브로 삼고 있다. 지난해 이 즈음에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데어 윌비 블러드><어톤먼트> 등 문학 작품을 토대로 각색된 작품이 유독 많았던 것과 비교하면, 할리우드엔 주기별로 무슨 유행이 있나 싶어 진다. 조만간 국내 개봉을 앞둔 거스 반 산트의 신작 <밀크>나 스티븐 소더버그의 <게릴라> 역시 각각 동성애 인권운동가 하비 밀크와 혁명가 체 게바라의 삶을 영화화한 작품이라니, 확실히 할리우드가 역사에 관심이 많아지긴 했나 보다.

이들 작품을 관통하는 한가지 공통점을 찾는다면, 모두 불합리한 권위와 체제에 용감하게 맞섰던 인물들이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9.11 테러와 이라크 전쟁을 통과한 미국이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를 선택한 것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변혁을 원하는 미국인들의 무의식이, 역사적 인물을 소환하는 영화들을 통해 발현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지는 것이다.

각설하고, <체인질링>은 제목 그대로 뒤바뀐 아이때문에 벌어진 얼토당토 않은 사건의 중심을 파고 든다. 홀로 키우던 어린 아들 월터가 실종되자 싱글맘 크리스틴(안젤리나 졸리)은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다. 몇 개월 뒤 LA 경찰은 엉뚱한 아이를 데리고 와 월터가 맞다고 우긴다. 크리스틴은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실수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경찰은 오히려 크리스틴을 정신 병원에 감금해 버린다. LA 경찰의 부패상을 비판해온 양심적인 목사(존 말코비치)의 도움에 힘입어 간신히 병원을 탈출한 크리스틴은, 이제 무능하고도 썩어 빠진 LA 경찰국과의 전면전을 시작한다.

이게 실화라는 걸 미리 전제하지 않는다면, 줄거리가 너무 극단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늘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버젓이 벌어진다. 그리고 그것이 개인과 공동체의 안전을 지켜야 하는 공권력에 의해 자행된 것이라면, 그 어이 없음이 너무 거대해 당사자는 순식간에 무기력에 휩싸일지도 모를 일이다.

관객을 압도하는 <체인질링>의 진정한 힘은 기교를 부리지 않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우직한 연출 말고도 실화의 충실한 재현에서 나온다. 누구나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모성에 대한 시대의 모욕을 목격하는 심정은 자연스러운 공분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크리스틴의 심정이 된 관객은 먹먹해지는 가슴을 안은 채 말로만 '천사의 도시'였던 80년 전 LA의 폭압적 상황을 견뎌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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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잘 알려진 공화당 지지자이다. 그렇다면 그는 좀더 보수적 가치를 옹호하는 쪽에 가깝다고 봐야 할 것이다. 실제로 <밀리언달러 베이비> <아버지의 깃발> 등의 근작을 보면 가족애 또는 유사 가족애에 대한 그의 관심사가 투영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개인을 할퀴는 시대, 또는 현실의 잔인함 속에서 일견 무기력해 보이지만 우직한 부성(
父性)의 풍경을 포착하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그것이 모성으로 바뀌었을 뿐, <체인질링>에서도 시스템에 의해 고통받는 생활세계의 단위는 결국 가족이다. 그리고 그는 시대의 모순과 불합리함을 조명함으로써 미국 사회를 지탱하는 마지막 보루로서의 가족의 가치를 역설적으로 상기시킨다. 그에겐 바로 그것이 정의인 셈이다.

이건 의미심장하다. 과거(사실은 기득권의 뿌리)를 합리화하거나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화된 과거의 부조리를 들춰냄으로써 진짜 지켜야 할 가치의 현재적 의미까지 두루 포획하는 것. ‘보수가 뭔지 참 헷갈리는 한국 사회에서 이 영화를 보는 것은 어쩌면 보수주의의 진면목을 목격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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