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5월, 유치장에서...

별별 이야기 2007. 5. 20. 00:07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광주 동부 경찰서의 5평 남짓한 유치장엔 30여명쯤 되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내가 들어가자 다들 놀라는 눈치였다. 놀라지 않는 게 이상하지. 얼굴과 상의는 피범벅이요, 바지에는 군화발 자국이 곳곳에 찍혀 있었으니, 영락없는 좀비 몰골. 유치장 담당 형사가 보다못해 화장실로 데려가 씻으라길래 별 생각없이 씻다말고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본 순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유치장에는 학생들만 있는게 아니었다. 잡혀가는 학생들을 구해주려다 괘씸죄로 끌려온 '아저씨들'도 몇 명 있었는데, 이 분들이 걸작이었다. 처음에는 유치장이 떠나가라 수다로 소일하더니, 나중에는 우유팩을 잘라 연필로 뭔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어라? 뭘 저리 열심히 그리나?  잠시후, 그들은 우유팩 화투로 고스톱을 치기 시작했다. 고~ 스톱! 아...c-bar 쌋다...

고스톱 판이 한창 무르익을 무렵, 누군가 나를 부르더니, 동부서 뒷쪽 병원으로 데려갔다. 병주고 약준다더니... 머리통 깨고, 이제는 꿰매준단다.  어쨋든, 3바늘쯤 꿰맨 것 같다. 그리고는 조사실로 이동. 드디어 내 운명이 결정되는 순간이 온 것이다.

사실, 백골단에게 잡혀 '닭장차'를 타고 오는 순간부터, 병원에서 바느질 당하던 순간까지 내 머리속을 짖누르던 게 있었다. 그건 바로 내가 들고 있던 철근.  당시, 시위하다 잡혀오는 학생들이 워낙 많다보니, 시위 방법에 따라 어느 정도 합의된(?) 형량이 있었다.

단순가담은 훈방. 투석은 구류. 철근 또는 화염병 소지와 투척은 구속. 나중에 재판을 받게 되면, 철근소지는 징역6개월에 집행유예 1년, 화염병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기본 형량이었다. 나를 잡은 백골단은 동부서에 증거물로 내가 들고 있던 철근에 내 이름까지 적어서 넘겨 논 상태이니, 꼼짝없이 구속에 징역형이겠지. 아~ ㅈ 됐다.

조사실로 들어가 담당형사의 책상앞으로 다가가니, 역시나, 내가 들고 있던 철근이 책상위에 고이 모셔져 있었다. 책상앞 의자에 앉아 질문을 기다리는 살 떨리는 순간, 뒷머리 상처가 욱신거리기 사작했다. 바로 그때, 전광석화처럼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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