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좀 못 보면 어때

애경's 3M+1W 2008. 11. 13. 00:41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아침 출근길. 언제나 그렇듯 라디오를 켭니다. 아무리 채널을 돌려도  온통 수능 얘기 뿐이더군요.  "꿈은 이루어진다"고 한 DJ가 희망을 팍팍 불어넣는 말을 반복하는데, 수험생들과 가족들에겐 위로가 되겠으나, 딴 세상에 살고 있는 저로서는 뭐 그다지 감흥이 없더란 말이죠.

문득, 그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전 수능 1세대거든요. 여름에 한번, 겨울에 한번 그렇게 두 번 시험을 치뤘고, 두 점수 중 보다 나은 점수로 대학에 응시하는 그런 시스템이었죠.
지금 떠올려도 어이없는 건, 겨울에 본 수능 시험에서 수학 점수 '빵점'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는 사실이죠. 잔대가리 안굴리고 기둥만 세웠어도, 확률상 적어도 3~4개는 맞았을 텐데... 결국 전, 여름에 본 시험 점수로 서너개 대학에 응시하게 됐었죠. 

불행인지 다행인지, 원하던 대학 학과는 모두 미끄러지고, 서울예전 준비나 해볼까 마음 먹던 참에 모 여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실망한 내색 않고 계시던 부모님이 몹시 반기셨고,  분위기에 휩쓸려 4년제라는 이유만으로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 학교 학과에 들어가게 됐죠.
방황은 계속 됐고, 대학 4년 내내 밖으로만 겉도는 생활을 했습니다. 캠퍼스의 추억? 그런 거 별로 없습니다. 대학시절의 추억은 모두 학교 밖에서 만들어진 거였죠. 

사회생활 3년차 쯤이던가, 학벌이 아쉽기도 하고 일상이 심심키도 해서 잠시 모 대학원 언론정보대학원을 다니기도 했었습니다만... 별 성과 없이 중도하차했고.... 인생 참 더럽게 꼬인다, 싶은 순간들도 더러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정작 하고자 하는 말은 이겁니다. 수능 수학성적 빵점 맞았던 인간이지만, 나름 치열하게 살다보니 그래도 어디 나가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커리어는 쌓아가며 살아갈 수 있었다는 거죠. '최연소 라이선스 편집장'이라는 명함을 쥐게 되리라는 건, 십 몇년 전 수능에 참패하고 집에서 뒹굴거리고 있던 그 때의 저는 절대 상상도 못하던 상황이라는 거. 사실 잡지 기자가 될 줄은 꿈에도 한번 그리지 않았다는 거. 사람 인생 정말 어떻게 될 지 모른다는 거.   

실은 간판이 중요하긴 하죠. 두산 매거진 다니던 시절, 나름 대기업이라고, 이런저런 혜택(특히 호의적인 대출!! ^^;;)을 받게 됐을 때, 아 이래서 공부 열심히 해서 대기업 가라고 하는구나 뭐 이런 속물적인 생각도 잠깐 했죠. 그 전 회사에서도, 쇄도하는 이력서를 1차 판별하는 기준이 학벌이었던 것을 기억하면, 네 그래요, 이 사회에서 여전히 학벌은 중요하긴 하죠.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거죠. 틈새는 어디에고 있다는 거죠. 중요한 건, 얼마나 멀리 보느냐인 것 같아요. 

사실 라디오에서 호들갑스럽게 '수능 수능' 떠들어대는 것이 언잖았던 건, 수능에 대한 나름의 아픈 기억이 있었기 때문일거예요. 내일이 수능이거나 말거나 어제와 다름없이 흘러가는 하루, 어제와 다름없는 선곡이 흘러나오는 세상이 됐으면 싶었어요. 수능이 뭐 그리 대수라고. 그렇게 사회 전체가 부추기고 호들갑을 떨고 난리 부르스를 추는 한, 능력보다는 학벌이 우선시되는 풍토가 사라지기 힘든 건 아닐까 생각해봤어요. 

임시 소집일인 수능 하루 전에도 '위아더챔피언' 같은 선곡만 해대고 있으니, 수능 당일은 오죽할까요. 라디오고 뉴스고 하루종일 그 얘기만 해대겠죠.... 내일 출근길엔 CD나 틀어야겠어요. 누군가가 수능을 잘보건 못보건 최선을 다했건 아니건 상관 없어요. 결과가 어떠하건, 죽지 않고 살아가야 하는 게 삶이니까요. 그리고 그 삶은, 몇 년 후, 어떻게 달라질지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요. 접시에 코 박고 죽었어야 마땅할 수능 점수 기록을 보유한 저도, 이렇게 잘난 체하며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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