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결혼했다' 그 다음엔?

영화 이야기 2008. 10. 16. 19:31 Posted by cinemAgora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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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욱의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아내는 결혼했다>가 곧 개봉한다. 오늘 포털을 봤더니 손예진 노출 논란이 인기 검색어로 올라와 있다. 손예진의 노출 연기가 대역이냐 아니냐를 두고 설왕설래가 있었나 본데, 시사회를 통해 미리 영화를 본 나로선 그런 논란이 왜 일어나는지 잘 이해가 안된다. <무방비도시>에서도 그랬지만 우리의 손예진은 늘 감질나게 만드는 데 선수 아니던가.


각설하고, 소재의 파격성만큼은 눈길을 모으기에 충분한 <아내는 결혼했다>는 말하자면 일처다부제를 채택한 한 여자와 두 남자의 이야기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 제도의 견고한 감옥을 뚫고 남녀 관계의 멀티플레이가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한 여성에게 한 남자가 마지 못해 굴복하고, 또 한 남자는 쿨하게 동의하는 얘기다.

욕심도 많은 여자 주인공의 논리는 '두 사람 이상을 동시에 사랑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이미 한 결혼을 파기하고 또 다른 결혼을 하는 것보다 두 종류의 결혼 생활을 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일찍이 <쥘과 짐>이나 <글루미 선데이>에서 제시됐던 삼각 공존의 모델에서 로맨스적 요소를 제거하고 좀더 현실적 요소를 가미한 것이 이 작품을 차별화시키고 있는 핵심 포인트 되겠다.

이를테면 우선 부딪히게 되는 현실적 장애는 이거다. 남편인 덕훈은 과연 아내인 인아에 대한 독점욕을 제어할 수 있을 것인가. 결혼이라는 게 둘 사이에 태어난 2세가 남성의 생물학적 친자임을 보장할 수 있도록 여성이 평생 배우자와 배타적 섹스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터인데 그게 불가능해진 세 사람 사이에서 이 문제는 가장 각별한 문제로 대두될 게 뻔하다. 과연 영화도 그 과정에 집중함으로써 이 극단적인 이야기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두번째 현실적 장애는 가문이다. 더 구체적으로, 세 사람이 일처다부의 혁신적(당신이 엄숙주의자라면 말세적) 시스템에 동의했다 할지라도 주변 인물들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거다. 당신들의 결혼 생활은 징글징글하다고 회고하면서도 일부일처제의 견고한 고정관념만큼은 결코 버릴 수 없는 어르신들을 설복시킨다는 게 애시당초 글러 먹은 일일 건 볼 보듯 뻔하다.

잔뜩 기대를 품은 나로선 매우 아쉽게도, 이 지점에서 영화는 슬쩍 말꼬리를 흐린다. 아니, 오히려 가문을 인아의 선택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활용한다. 그러니까 시댁 식구들 앞에서는 둘도 없는 현모양처임을 가장하는 인아의 고전적 처세술 앞에 덕훈도 말도 안되는 상황을 받아들일만큼 마음이 열리니, 반쯤 혁신적이라고나 할까. 게다가 영화 속에서 인아의 가족들(덕훈의 처가)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드는 의문. 덕훈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되는 스토리텔링 방식이 암시하듯, 어쩌면 인아라는 인물은 적어도 한국사회의 현실에서는 결코 존재할 수 없는 가상의 대상, 그러니까 남성들의 판타지가 일궈낸 롤 플레잉 게임의 한 캐릭터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무슨 얘긴고 하니, 역시 결혼 제도의 틀을 갑갑하게 여기며 성적으로 무한히 열려 있는 가능성의 해방을 꿈꾸는 남성들이 인아라는 도발적 여성 캐릭터를 구축해 놓고 그를 통해 멀티플레이 욕망의 알리바이를 확보하고자 하는 게 아니냔 말이다. 어쩌면 인아는 욕망과 제도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대다수 남자들이 그 스스로 어느 쪽으로 더 열려 있는지를 가늠케 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와도 같은 역할인지도 모른다.

흔히 (선수를 자처하는) 남자들끼리 농담삼아 '여성이 (성적으로) 해방되어야 남성도 해방된다'는 말을 한다. 제법 열려 있는 듯 들리는 그 말 속에는 자본주의 사회 남녀 관계의 권력적 속성은 애써 무시하는 남성적 이기심이 살짝 숨어 있다. 발칙한 영화임에는 분명하지만, <아내가 결혼했다>는 내게 손예진의 노출만큼이나 덜 채운 듯한 뒷맛과 정체 모를 죄책감을 남겼다. 어쩌면 이것도 가부장 사회의 남성이라 가질 수밖에 없는 조잡한 감상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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