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년 연예인들의 '푼수되기' 생존법

TV 이야기 2008. 10. 6. 15:57 Posted by cinemAgora

사용자 삽입 이미지

최근 종영한 인기 TV 드라마 엄뿔의 최대 수혜자는 단연 장미희일 것이다. 비음 강한 어조로 미세스 무운~!하며 유한 마담의 전형성과 독특함을 동시에 드러낸 장미희, 드라마 출연자 가운데 사실상 유일하게 잇따라 CF에 출연하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배우로서의 미희에 대해선, 나는 한번도 그녀가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안성기와 더불어 그냥 한국영화가 어려웠던 시절에 꿋꿋이 현장을 지켰다는 의리만으로 연기자적 퍼포먼스와 상관 없이 한국사회 특유의 아우라를 만들었다고나 할까.

어쨌든 오늘날의 대중 문화가 그녀를 소비하는 방식은 매우 독특하다. 영화상 시상식에서의 그 찬란한 멘트, 아름다운 밤이에요가 상징하듯, 신비의 영역에 사로 잡혀 있는 고전 영화적 배우의 이미지를 체화한 그녀가, 막상 드라마에서 몸빼 입은 채 시장통에 나서 떡도 아닌 을 사라고 외쳤을 때 실소의 대상으로 인구에 회자되던 방식과 지금과는 약간 차이가 있음을 목격한다. 종전의 장미희는 어울리지 않는 요소들이 상호 충돌할 때 유머를 파생시키는 방식으로 소비됐다. 그것은 대중 매체의 온갖 헌사의 대상임과 동시에 오우, 정말 엘레강스하고 유니크해요오우라는 말투로도 자주 놀림의 대상이 되곤 하는 앙드레 김을 소비하는 패턴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나는 봤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헌데 지금의 장미희는 캐릭터와 이미지의 충돌이 아닌 스스로의 이미지를 적극 활용함으로써 코미디를 창출했다. 장미희라는 아이콘을 형성해온 이미지와 그 장미희적 이미지를 시침 뚝 떼고 그대로 활용한 캐릭터가 묘하게 일치한 풍경이 그 자체로 킥킥댈만한 볼거리로 승화된 셈이다. 어쨌든 장미희는 드라마와 CF를 통해 스스로를 희화화의 대상으로 위치짓는 데 동의함으로써 엔터테인먼트계의 입지를 재확보해내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축하할 일인지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장미희를 보면서 중장년 연예인들이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얻게 되는 방법론적 경향성에 살짝 처연함을 느꼈다. 긴 설명 필요 없이 그 방법론은 푼수되기. 요즘 TV에서 스스로 푼수가 되지 못해 안달이 난 중견 연예인들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본업은 제쳐두고 일찍이 그 길을 개척한 조형기김흥국은 그렇다 쳐도 요즘엔 왕년에 한가닥 하던 아나운서들까지 가세해 스스로 원래 푼수였다는 것을 고백하느라 바쁘다. 오죽하면 명문대 출신 미스코리아로 한껏 추앙됐던 한성주 조차 기껏 가슴팍 깊게 파인 옷 입고 나와서 뇌가 있네 없네 하는 모욕을 감수하고 있다. 그게 이 시대 중장년 연예인들이 방송가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방법론으로 고착됐다는 것은 씁쓸함을 넘어 차라리 슬프기까지 한 것이다. 하기야 칠순이 넘은 원로 연기자도 야동 순재가 되어야 각광을 받고, 늬들이 게 맛을 알아?라고 외쳐야 소구되는 세상 아닌가. 나이 먹어서도 살아 남으려면 가벼워져야 하고, 웃겨야 하며, 그래서 온갖 푼수짓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가벼움이 상품성이 된 시대의 희극이자, 잔뜩 어깨에 힘주며 살아온 기성 세대가 맞닥뜨린 비극의 부메랑이기도 하다. 대중 문화 소비층이 망가지는 중장년을 바라보며 가학적 희열과 통쾌감을 느끼는 데는 그들이 체험한 기성세대로부터 껍데기만 남은 위선적 엄숙을 목격한 데 대한 반발심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어쩌면 그래서 70년대적 문화 코드를 끌어들인 일련의 영화들이 대중에게 더욱 친밀하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70년대는 늬가 그 시절을 알아? 류의 고리타분한 공치사로 박제화돼 있고, 때문에 그 시절을 불러낸 영화들조차 별로 달갑지 않게 다가오는 게 아닐까 싶은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얼마전 무릎팍 도사에 허영만 화백이 나왔다. 억지로 푼수가 되지 않았어도, 그는 노년으로 접어드는  장인의 얼굴만으로도 충분히 깊은 공감을 이끌어낼 저력을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었다. 요컨대, 진정한 어른의 모습이었다. 우리의 대중 문화 안에서 그런 얼굴을 자주 만나고 싶다. 젊은이들에게 아부하지 않고도 삶의 깊이를 웅변할 어른의 얼굴 말이다
.

FILM2.0 칼럼

,
BLOG main image
3 M 興 業 (흥 UP)
영화, 음악, 방송 등 대중 문화의 틀로 세상 보기, 무해한 편견과 유익한 욕망의 해방구
by cinemAgora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187)
찌질스(zzizzls) (3)
영화 이야기 (702)
음악 이야기 (34)
TV 이야기 (29)
별별 이야기 (122)
사람 이야기 (13)
3M 푸로덕숀 (156)
애경's 3M+1W (52)
민섭's 3M+α (27)
늙은소's 다락방 (26)
라디오걸's 통신소 (1)
진영's 연예백과사전 (4)
순탁's 뮤직라이프 (10)
수빈's 감성홀 (8)

달력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TNM Media textcube get rss DNS Powered by DNSEver.com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3 M 興 業 (흥 UP)

cinemAgora'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 Supported by TNM Media
Copyright by cinemAgora [ http://www.ringblog.com ]. All rights reserved.

Tattertools 티엔엠미디어 DesignMyself!
cinemAgora's Blog is powered by Textcube. Designed by Qwer999. Supported by TNM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