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피운다고 잡아 가둘 날 오겠네?

별별 이야기 2008. 9. 29. 23:18 Posted by cinemAgora

지난 주 씨네파파라치 녹화 때 만난 김경찬 피디가 손에 이상한 것을 들고 있어 자세히 봤더니 '전자 담배'란다. 몸에 붙이는 니코틴 패치처럼 단계적으로 니코틴 흡입량을 줄여 가며 담배를 끊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종의 금연 보조 장치였다. 흡연자들이 담배가 주는 강한 시각, 후각적 자극 때문에 자주 금연에 실패하는 데 착안한 발명품이었는데, 꽤 효과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이롭게도, 그 전자 담배는 연기가 수증기처럼 뿜어져 나와 금세 사라져 버리는데다 냄새도 전혀 나지 않는다!

애연가인 나로선 전자 담배를 보고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저걸 가지고 있으면 비행기나 KTX를 탔을 때나 장시간 회의 때, 혹은 금연 건물에 있을 때 꽤 쓸만하겠다 싶었던 것이다. 안그래도, 한 달 전 3M흥업 멤버들이 목포에 놀러갔다 오는 길에 신민섭 기자가 KTX 객실에 앉아 버젓이 그 전자 담배를 즐기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속으로 '빙고'하고 외쳤다.

내가 이렇게 엄연한 금연 보조제를 흡연 보조제로 둔갑시키겠다고 잔머리를 굴릴 정도가 된 것은 근래에 흡연자를 둘러싼 사회적 위협이 도를 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왠만한 규모의 건물은 모두 금연 건물이어서 담배 한개비 피려면 엘리베이터 타고 한 참을 내려 가야 한다. 뭐 그 정도야 감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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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머리 위에 하늘이 보이는 곳조차도 담배를 못피우는 장소가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다 흡연자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이상하게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 한창 TV에 나오는 공익 광고 속에선 공원 벤치에서 한가로이 담배 한개비를 즐기고 있는 신사를 향해 꼬맹이들이 'NO NO NO'를 외친다. 흡연자가 무슨 유괴범이나 된 듯한 표정으로 쬐그만 것들이 집단 이지메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정서가 이렇다 보니 분명히 흡연이 허용된 식당이나 술집에 갔을 때도 담배 한개비를 물었다가 매너 없는 놈 취급을 당하기 일쑤다. 옆 자리의 손님이 담배를 물고 있는 내가 암 덩어리라도 되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보며 "담배좀 꺼달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대부분 별 말 없이 끈다. 하지만 속으로 외친다. "담배가 그렇게 싫으시면 금연 식당으로 가시든가, 금연 좌석이 있는 곳으로 가시든가, 왜 나의 담배 피울 권리를 침해하시는겁니까!" 하지만 씨알이 먹힐 얘기도 아닌데다 얼굴 붉히기 싫으니 씁쓸함 삼키며 고분고분할 밖에. 심지어 내가 사는 아파트에선 자기 집 베란다에서 피우는 담배조차, 윗층 베란다로 냄새가 올라간다며 피우지 말란다. 한마디로 어처구니가 없다.

흡연자를 코너로 몰아 붙이는 이런 분위기는 잘못돼도 아주 잘못됐다. 아다시피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선 흡연에 대한 규제가 미국이나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느슨하다. 몇년 전 독일에 갔을 때는 지하철 역 안에서도 담배를 피우는 장소가 있기에 쾌재를 불렀던 기억이 난다. 듣기론 유럽 어디에선 흡연 규제와 관련해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는데, 인간의 건강에 똑같이 안좋은 유해 가스 배출 기업을 국가가 효율적으로 규제할 수 없다면, 개인의 흡연에 대해서도 규제할만한 정당성이 없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제기됐다고 한다.

공익 광고로 겁을 잔뜩 주고 있는 간접 흡연이란 것도 그렇다. 가족 중에 흡연자가 있어서 지속적으로 간접 흡연을 하게 되는 게 아니라, 공익 광고의 설정대로 개방된 장소에서 자리에 얌전히 앉아 피우고 있는 흡연자의 담배 연기가 행인에게 과연 얼마나 해로울까? 자동차의 매연이나 시도 때도 없이 파헤치는 도로 수리나 신축 공사장의 미세먼지보다 더 해로울까?

공익 광고 하단에 흐르는 보건복지부의 주장대로 흡연이 흡연자와 비흡연자 모두의 건강에 그렇게 치명적이라면 그 치명적인 것을 팔아 막대한 이윤을 챙기는 담배 판매 업체는 왜 가만히 놔두는가. 당장 유해 물질 판매죄로 잡아 가둘 일이다.

혐연권만큼이나 흡연자에게도 인권이란 게 있다. 그러니 금연 장소만큼이나 흡연 장소도 보장하는 쪽으로 정책의 가닥을 잡아갈 일이지, 담배를 구매하며 세금까지 내는 흡연자를 죄인 취급하듯 토끼몰이 할 일은 아니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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