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기자는 병상에 누워 뜻밖의 소식을 접하게 됐다. 안재환이 죽었단다. 그것도 자살을 했단다. 그에게 심상치 않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음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가 자살까지 선택할 것이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에 기자는 망연자실하게 허공만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 주 기자는 몸이 좋지 않아 한 주 동안의 병가를 내고 병원에 입원했다. 입원 직후 병상에 누워 아는 방송국 작가로부터 비보를 전달받았다. 곧바로 후배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 사실을 알린 뒤 취재를 지시하고 있는데 벌써부터 여기저기서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고인이 세상을 떠나기 앞서 그의 요즘 근황에 대해 유일하게 기사를 썼던 매체가 바로 <일요신문>이었기 때문이다.

기자가 안재환에게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은 8월 중순 무렵이었다. 그가 두 차례나 진행을 맡고 있던 생방송 프로그램을 펑크냈기 때문인데 연락마저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얘기도 건네 들은 터였다. 해당 프로그램 CP와의 전화 통화도 이뤄지지 않을 정도인데다 매니저와도 연락이 잘 안 되는 것 같다는 얘기도 건네 들었다. 사업에 어려움이 많아 상당한 빚을 지고 힘겨워 하고 있어서라는 데 과연 사실인지 실체 파악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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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황에서 너무 게을렀던 것 같다. 당연히 안재환 본인과의 직접적인 만남, 사업적 어려움에 대한 실질적인 접근, 그리고 소문으로 나돌던 사채업자와의 마찰 등에 대해 밀착 취재에 돌입했어야 했다. 그게 <일요신문> 적인 취재 시스템이다. 그럼에도 게을렀다. 만약에 당시 조금 더 부지런히 취재해 그런 힘겨운 상황을 발빠르게 보도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고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최악의 판단을 내리기 전에 기사화했다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지금 이 순간에도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다. 그런 이유로 늦은 밤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런 글을 써내려가고 있다.

당시 기자는 쉬운 길을 선택했다. 우선 매니저와 통화하려 했는데 쉽지가 않았다. 자주 전화기가 꺼져 있었던 것. 그래서 고인의 가족을 만나 보기로 했다. 그래서 고인이 운영했던 삼성동 소재의 바를 찾았다. 그곳을 고인의 누나가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 손님인양 바를 찾아 술을 시키고 앉아있다 고인의 누나를 만날 수 있었다. 일요신문 기자임을 밝힌 뒤 요즘 그의 근황을 물었고 고인의 누나에게 이런 저런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사업이 힘든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사업 문제로 인해 고인의 건강도 좋지 않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다만 “우리 동생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일을 벌인다. 곧 힘겨운 상황을 정리할 것”이라는 고인 누나의 긍정적인 얘기를 너무 쉽게 믿었다. 어쩌겠는가, 고인의 누나도 그렇게 믿고 있었고 이런 믿음은 부인 정선희를 비롯한 모든 가족이 이런 믿음을 갖고 있었으니.

어렵게 통화가 이뤄진 매니저 역시 사업에 어려움이 있고 건강도 좋지 않아 방송 활동을 중단했지만 늦가을이나 초겨울 쯤 상황을 정리하고 드라마를 통해 연예계에 컴백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순진하게 그 얘기를 믿었다. 이런 믿음은 매니저 역시 마찬가지였으리라. 그래서 고인의 누나와 매니저의 얘기를 바탕으로 기사를 작성했고 그 내용은 <일요신문> 850호(8월 31일자)에 실렸다.

<일요신문>에 이 기사가 실리고 난 뒤 몇몇 매체에서 안재환의 근황을 매니저와 소속사에 문의했던 모양이다. 이에 소속사에선 언론사에 보도 자료를 발송했는데 그 내용은 취재 당시 매니저가 기자에게 얘기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소속사 역시 안재환이 곧 돌아올 것이라 믿고 그런 보도 자료를 발송했으나 어쩌면 이미 고인이 세상을 떠난 위였는지도 모른다.

정확한 고인의 사망 시점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기사가 보도될 즈음 고인은 자살을 결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기자가 고 안재환의 누나를 만나려고 삼성동 소재의 바를 찾은 날이 8월 19일인데 이 날은 고인이 하계동에서 번개탄을 구입한 날짜다. 당시 안재환의 누나는 고인을 3일 전에 집에서 봤다고 얘기했다. 그의 생전 마지막 흔적은 휴대폰 마지막 통화기록이 있었던 8월 21일이다. 여러 정황을 놓고 볼 때 기자가 쓴 기사는 이미 고인이 세상을 떠난 뒤 작성됐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당시 쓴 기사는 해피엔딩이었다. 지금 안재환이 어려움을 겪으며 건강도 안 좋아 잠시 방송 활동을 중단했지만 초겨울 쯤 돌아올 것이라는 내용의 기사, 이제 생각하면 허무맹랑한 기사를 썼던 것이다. 아마도 무사안일한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사채로 힘겨워한다는 정황 등 민감한 내용은 싹 빼버리고 고인의 측근들 입을 빌려 어렵지만 곧 괜찮아 질 것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쓰는 데 급급했던 것이다. 기자의 가장 큰 임무가 팩트와 진실 사이의 공백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기자는 방송 펑크와 측근들의 얘기라는 팩트 하나에 만족하며 진실을 향해 다가가는 노력을 게을리 했다. 아니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고 얘기하는 게 더 정확할 던 것이다.

그렇게 고인은 세상을 떠났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고인의 사채가 발견된 곳, 수사를 담당한 노원경찰서, 시신이 안치됐던 병원 등이 기자의 집과 매우 가까운 곳이다. 비보가 들려온 당일 기자는 정선희가 응급실에 실려 간 상계동 소재의 병원 인근의 다른 병원 병실에 있었던 탓에 취재에 직접 가담하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고인이 무책임한 기자의 취재는 원치 않았던 모양이다.

어찌 이 무거운 마음을 털어내야 할 지 모르겠다. 앞으로는 게으른 기자가 되지 말아야지, 팩트에 기대지 말고 진실을 향해 매진하는 기자가 되어야지 하는 약속을 스스로에게 되새기지만 너무 뒤늦은 일이 되고 말았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이렇게나마 글을 통해 고인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을 전한다.



당시 일요신문에 실린 기사입니다
https://www.ilyo.co.kr/article/sub.asp?ca=5&seq=2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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