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하는 걸까, 선택당하는 것일까

영화 이야기 2008. 9. 8. 00:01 Posted by cinemAgora

극장 매표소 앞에 선 관객들은 보통 이런 고민을 할 게 분명하다. ‘이번 주말에는 어떤 영화를 선택할까?’ 일반 시사회를 통해 미리 영화를 본 관객들이 인터넷 게시판에 올려 놓은 글들과 TV 영화 소개 프로그램, 신문과 TV 광고 등을 통해 입수한 각종 정보와 자료를 종합, 분석해 한 편의 영화가 당신의 간택을 받는다.

영화가 사용해보고 아니면 물릴 수 있는 상품이 아닌 이상 설령 선택한 영화가 ‘영 아니다’ 싶어도 어쩔 도리는 없다. 그냥 이번주에는 운이 나빴던 것이고, 실패했다고 해서 그로 인한 정신적, 물질적 피해가 그다지 크지 않은 만큼 영화사나 극장에 환불을 요구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문화적 행위를 한 당신은 영화가 형편없었다고 할지라도 연인이나 친구와 함께 앉아 있었던 2시간여의 시간이 단순한 시간 낭비였을 뿐이라며 크게 툴툴거리지도 않을 것이다.

영화 관람 행위와 관련해 관객들이 갖고 있는 사고 패턴이 대체로 이렇다는 것은 영화 마케팅에는 더없이 좋은 환경이 아닐 수 없다. 위력을 더해가고 있는 마케팅의 보이지 않는 손은 영화를 제대로 알리는 걸 넘어 아예 잠재 관객을 좌석에 끌어다 앉히는 역할을 한다. 영화의 ‘인상’이 그럴싸하게 포장된다면, 더 많은 관객을 ‘포획’할 수 있다. 관객은 스크린 앞에 앉으며 자신이 영화를 선택하고 있다고 믿겠지만 사실은 그가 입장료를 지불하는 순간, 영화가 관객을 선택한 것이나 다름없다.

개봉 첫 주말 엄청난 흥행세를 보였다가 곧바로 급락하는 영화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이런 사정의 반증으로 보인다. 운이 나빠 입 소문이 무르익지 않은 개봉 초반에 선택된 관객이라면 다른 관객들까지 마케팅에 선택되지 않도록 열심히 입 소문을 퍼뜨리는 일만 남았다. 그렇다고 핏대를 올리거나 사활을 걸 일은 아니다. 당신이 주체적으로 문화적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 대로 다른 관객들 또한 그럴 테니 말이다.

5년 전에 FILM2.0에 썼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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