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문제는 부가판권이다!

영화 이야기 2008. 9. 6. 19:40 Posted by cinemAgora

얼마 전, 오는 10월 서울 상암동 DMC 안에 마련될 Directors Zone의 입주자 선정 심사에 참여했다. 18명의 감독에게 전용 창작 공간을 마련해 주는 이 프로젝트는, 난국에 봉착해 있는 한국영화계에 돌파구 마련의 단초와 의미 있는 인프라를 지원하겠다는 서울영상위원회와 서울시의 결단에 따른 것이다. 안 그래도 태반의 제작사들이 휘청대고 있는 마당이니 신작 프로젝트를 진행할 마땅한 공간을 찾기 어려워진 감독들로선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태용, 장윤현, 정윤철 감독을 비롯해 47명이나 되는 기성과 신인 감독들이 방을 달라고 지원했고, 이들 가운데 선별된 18명의 감독들에게 사실상 거의 무료로 6개월 간의 공간 임대가 이루어지게 됐다.

그런데 우리는 심사 과정에서 얼마나 훌륭하고 의미 있는 영화가 나올 것이냐 보다는 영화화될 가능성이 얼마나 될 것인가라는 부분을 비중 있게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프로젝트의 상업적 가능성에 우선적 초점을 맞춰야 했던 이유는 뻔하다. 기획 단계에서 투자를 받지 못해 엎어지는 프로젝트가 수두룩한 지금의 절박한 상황에서는 일단 영화가 만들어지는 게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선 우선 대중적 흡인력을 갖춘 상업영화가 얼음을 깨고 물길을 헤쳐나갈 쇄빙선의 역할을 해주는 게 절실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기준을 들이대며 선별 작업을 하면서도 심사위원들은 반신반의를 완전히 떨쳐내기 어려웠다는 것을 고백해야겠다. 어렵사리 창작 공간을 얻은 18명의 감독들, 과연 그들 가운데 몇 퍼센트가 실제로 영화 제작의 기회를 얻을 것이며, 개봉의 기회까지 얻을 것인가를 장담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만큼, 한국영화 시장의 투자 분위기가 지금 꽁꽁 얼어 붙어 있다는 걸 모르지 않기에 꽤 뿌듯한 일을 해놓고도 심사위원들은 마냥 흐뭇해할 수만은 없었다. 


심사 뒤풀이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이런 영화계 사정과 관련해 자조 섞인 대화를 주고 받았는데, 내게는 특히 서울 영상위원회 황기성 운영위원장의 이 말이 뼈있게 들렸다. 김대중 정부 이후 IT 벤처 육성 정책과 대규모 발전기금 지원을 토대로 영화 진흥 정책이 동시에 진행됐는데, 어찌 보면 한국영화계가 IT 산업의 함정에 빠져 버린 것 같다. 거대한 괴물의 입처럼 부가 판권 시장을 야금야금 침식해 들어와 이제는 궤멸 직전의 상태로까지 몰고 간 인터넷 다운로드를 지적하는 것이다. 그는 이런 상황이 올 것이라고 미리 예상하고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한 영화계의 일차적 책임이 크다고 꼬집었다. 그 자리의 누군가는 한국영화 시장이 돌파구를 마련하느냐의 열쇠는 결국 경찰의 단속 의지에 달린 것 같다는 우스개 소리를 했을 정도로, 이미 눈 뜨고 코를 배인 영화계의 정서는 무기력과 참담함 그 자체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부가 판권 시장 궤멸에 대처하는 영화계의 태도는 이런 참담함과 상응하지 않는 것 같아 딱할 때가 많다. 일각에서는 이미 한국의 홈비디오 시장은 물 건너간 지 오래라는 진단을 내놓고 자포자기한 채 IPTV 등 방송통신 융합의 흐름에 섣부른 기대를 품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잔뜩 기대를 부풀렸던 DMB가 약발이 크지 않았듯 IPTV가 영화 시장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플랫폼 사업자들의 또 다른 영화계 착취 구조가 완성될 우려도 커지고 있다.


어쩌면 매우 고리타분하게 들릴지도 모를 얘기를 또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도대체 한국영화의 위기를 부른 이유가 무엇인지 아무리 고민을 거듭하고 열띤 토론을 해봐도, 부가 판권 시장의 궤멸 말고 딱히 다른 요인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시장을 정상으로 돌려 놓지 않으면 스크린 독과점을 통해 700만을 동원해도 돈을 벌지 못하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같은 사례가 끝끝내 되풀이 될 터이다. 그러니 투자 활성화? 언감생심이다.


따라서 해법도 거기에서 도출돼야 한다. 부가 판권 시장의 정상화. 이 절실한 화두에 영화계는 거머리처럼 매달려도 모자랄 판이다. 정책의 집중적 지원이 뒤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영화발전기금의 절반 이상을 쏟아 붓는 한이 있더라도 이 문제 해결 없이 한국영화를 위기에서 구해낸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지금은 원론적 문제 의식을 재확인하고 앉았기에 늦어도 너무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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