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고 싶은가? 반칙하라!

별별 이야기 2008. 8. 30. 14:59 Posted by cinemAgora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상세보기
목수정 지음 | 레디앙 펴냄
스무 살이 넘게 나이 차이가 나는 프랑스 남자와 한국에서 비혼인 채 아이 낳고 사는 만만치 않은 미션을 살고 있는 저자가 자신의 삶을 감성적 필치와 좌파적 시각으로 그려낸 책. 파리의 빈민가에서...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2년 전 여름이었다. 당시 <괴물>이 촉발시킨 거센 스크린 독과점 논란의 한 가운데서, 그와 나는 같은 입장을 피력했다. 그러나 거칠고 감정적이었던 내 견해는 그의 정연하고도 정교한 논리 앞에 금세 초라해졌다. 당시 그는 민주노동당 문화정책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이후 몇 번의 만남을 통해 그가 프랑스 파리 8대학에서 문화 정책을 연구했음을 알았다. 그를 통해 나는 영화를 단순한 상품이 아닌 시민에 대한 공공 서비스의 개념으로 대하는 프랑스 문화 정책의 미덕을 더욱 구체적으로 알게 됐다. 게다가  문화 예술인들이 일년에 2개월만 일해도 나머지 기간에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도.

올초 뜻을 같이 하는 일군의 영화인들을 함께 만났을 때, 그는 '칼리'라는 이름의, 세살 난 어여쁜 딸을 데려왔다. 칼리의 아빠는 프랑스인 사진 작가이자 미술가. 두 사람은 결혼하지 않고 함께 살고 있다. 내가 알기로, 칼리의 엄마와 아빠는 결혼이라는 제도로 편입될 생각이 아예 없다. (그들은 프랑스에서 비혼 커플을 합법적으로 인정하고 각종 복지 혜택을 주는 사회연대계약을 맺었다.) 그럼에도 한국적 기준으로는 '미혼모의 딸'인 칼리만큼은 누구보다 착하고 바른 아이로 정성껏 키우고 있다.

어떤 경험적 성찰을 통해 이토록 혁신적인 삶의 방식을 선택했는지 궁금해하던 차에, 그가 책을 냈다는 소식을 듣고 출판 기념회에 나갔다. 그리고 한달음에 읽었다. 책을 통해 나는 지금의 그를 만들어온 원동력이 고정 관념에 대한 끊임 없는 반기 들기와 저항적 일탈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됐다. 진정 자유롭기 위해선 자신의 욕망에 온전히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단호하게 실천에 옮겨야 한다는 것, 정치적 자유가 각성한 시민들의 반칙을 통해 쟁취돼 왔듯, 개인의 삶에서도 그 원칙은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불만은 터뜨리고 욕망은 충족시키면서 사는 것이 건강한 삶이다. 그러나 내가 충족시키고자 하는 욕망이 진정한 나의 욕망인지 아니면 모두가 욕망해야 하는 것이라고 정해진 일반적 욕망의 리스트일 뿐인지를 가늠해 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 본문 중

한 우물을 파서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그리하여 인류의 발전을 도모하는 동시에 밥벌이를 해야 한다는 전 인류가 주입시켜온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살아 있는 동안 나의 욕구와 관심은 나와 함께 진화할 것이며, 열심히 그 새로운 호기심과 열정에 화답하며 살고 싶다. 그것이 나의 진실이다. -본문 중
 
그가 끔찍히 증오하는 가부장제적 질서로부터 엄청난 혜택을 받으며 살고 있는 나는, 다른 관성적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그가 선택한 삶의 방식을 선뜻 이해하기란 쉽지 않았다. 이 말은, 그의 선택이 그 자신에게 험난한 가시밭길이 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매우 자유롭게 살고 있는 그도 한국 사회의 높디 높은 고정관념의 벽에 가로 막혀 간혹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런 고통은 반칙하는 삶의 숙명일지도 모르겠으나 세상에 대한 넓은 시야를 지닌 그는 그 숙명조차 달갑게 받아 안는다.

난 오늘을 희생하며 내일을 기약하자는 그 어떤 설교도 믿지 않는다.(중략) 오늘이 행복하면, 내일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오늘 나의 삶의 태도가 진실하다면, 내일의 나에 대해서도 신뢰할 수 있다. -본문 중

어쨌든 그는 다시 자유인이 됐다. 아니, 원래 자유인이었지만 안주하거나 타협하지 않는 그의 스타일대로, 얼마전 짐을 싸 다시 프랑스로 훌쩍 떠났다. 목수정. 그는 내가 만난 가장 자유롭고 용감한 여성이다. 부디 칼리와 함께 행복하시길.

이 사방으로 열려 있는 부정형의 미래야말로 내가 강렬히 열망하는 것이기에, 나는 완벽히 내가 원하는 지점에 와 있다. - 본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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