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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가장 기대를 많이 모았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흥행 성적이 궁금하네요? 일단 600만 명은 넘었죠?

지난달 17일 개봉한 이 영화는 지난 주말로 개봉한 지 꼭 한 달이 됐습니다. 그 때까지 모두 65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죠. 이 정도라면 지난해 여름 동반 흥행에 성공했던 <화려한 휴가>나 <디워> 등의 성적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미녀는 괴로워>나 <타짜> 정도의 흥행 성적을 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한 영화에 650만 명이 들었다는 것 자체는 높이 평가할만 합니다. <실미도>나 <왕의 남자> <괴물> 같은 영화들처럼 사회적인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키지 않은 상태에서 순수한 영화의 힘으로 이 정도 관객을 모으기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큰 돈을 벌었다는 말을 할 수 없다는 데 흥행 시장의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650만 명이나 들었는데 돈을 번 건 아니라는 게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데요, 왜 그런거죠?


투자된 돈을 다 뽑고, 흑자로 돌아서게 되는 손익분기점이 높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의 경우엔 워낙 많은 제작비가 투여됐고, 그 때문에 해외 수출액을 감안하고도 국내 극장 개봉에서 700만 명 정도의 관객이 들어야 이윤이 남기 시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걸 감안하면 이제까지는 그냥 투자액을 환수하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마디로 수익률이 플러스가 되지 못했다는 얘깁니다.


지난 번에 이 영화의 스크린 독과점 상황을 지적하셨는데, 그렇게 하고도 손익분기점을 못 넘었다면 뭐가 문제일까요?


누차 말씀드리는 얘기지만, 한국영화의 수익 구조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홈 비디오 시장이 사실상 궤멸된 상황에서 부가 판권을 통한 수익에 기대할 게 없으니까 극장 개봉에서 제작비를 전액 회수하려는 시도를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스크린 독과점 같은 무리수를 두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거죠. 극장 개봉에서만 전체 흥행 수입의  80% 이상을 의존하고 있는 지금의 유통 환경이 개선되지 않는 이상, 이렇게 600만 명을 넘기고도 돈을 벌지 못하는 상황은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건강한 한국영화 수익구조를 만들어내기 위해선 부가 판권 시장의 정상화가 절실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놈놈놈>은 바로 그런 심각성을 일깨우는 또 하나의 사례라 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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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놈놈>은 그렇다 쳐도, 다른 영화들은 어떤지 궁금하네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도 있었고, <님은 먼곳에>도 기대를 모으지 않았습니까?

한마디로 다른 영화들도 <놈놈놈>과 대동소이한 상황이다, 라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경우에 개봉 3주차를 맞은 지난 주말까지 190만 명 정도의 관객을 동원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이 영화는 250만 명이 손익분기점으로 알려져 있는데, 여전히 거기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금보다 관객이 더 든다고 해도 손익분기점 언저리에서 간판을 내리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영화의 만듦새나 한석규 차승원의 연기 변신 등으로 적지 않은 관심을 모은 작품이지만, 기대만큼의 폭발적인 흥행세를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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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 감독의 <님은 먼곳에> 역시 사정은 마찬가집니다. 지난 주말 개봉 4주차를 맞았는데 170만 명 정도의 관객을 모았습니다. 현재 전국 50개 스크린 미만에서 상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조만간 간판을 내리지 않을까 예상이 됩니다. 이 영화 역시 전쟁 장면 촬영을 위해 태국 등 해외 로케이션을 감행했기 때문에 70억 원 정도의 적지 않은 제작비가 투입됐습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250만 명 이상은 들어야 제작비를 회수할 수 있을텐데, 거기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흥행 성적에 그치고 말았죠. 1970년대 베트남 전쟁을 무대로 한 여인의 역정을 담아내고 있는 이 영화는, 김추자와 베트남 전으로 대표되는 70년대적 코드가 지금의 젊은 관객들과 폭 넓은 접점을 만들어내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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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개봉한 류승완 감독의 신작 <다찌마와리>의 경우엔 가볍고 경쾌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30만 명을 조금 웃도는, 비교적 저조한 오프닝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 영화도 170만 명 정도를 손익분기점으로 잡고 있는데, 첫 주말 성적으로 봐선 손익분기점 달성이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예상됩니다. 1960년대 액션 영화를 코믹한 감각으로 패러디하고 있는데, 이 영화가 패러디하고 있는 60년대 문화를 경험해 보지 못한 10대와 20대 젊은 관객들이 영화가 담고 있는 웃음의 코드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한국은 유난히 앞선 시대의 문화적 전통과 유산이 잘 축적되거나 재활용되지 못하는 경향이 강한데, 바로 그런 문화적 환경이 <다찌마와리>의 흥행적 한계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한마디로 올 여름 개봉한 한국영화 가운데 된 게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소문만 무성한 잔치였단 말씀입니다.

어느 영화가 100만 돌파했다, 200만 돌파했다 하는 언론 보도만 보면 마치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 같은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네요.


지난해 한국영화의 수익률이 마이너스 40%에 이르면서 투자 분위기가 많이 위축이 돼 있는데, 일단 분위기를 좀 살려보자 하는 영화계 안팎의 공감대가 현실과 괴리된 축제 분위기를 조장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상황을 좀더 냉철하게 살펴보고 개선해야 할 구조적 문제점들을 직시해 공론화하는 게 중장기적 관점에서 한국영화를 제대로 살리는 지름길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샴페인을 터뜨리기엔 지난해와 비교해 상황이 하나도 나아진 게 없습니다. 사실 영화인들은 여전히 우울한데 샴페인은 뭘 모르는 언론들만 열심히 터뜨리고 있죠. 영화 한 두 편의 대박 흥행이 한국영화를 일거에 침체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는 순진한 믿음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당장 강남에 있는 그 많던 영화사들 가운데 문 닫은 곳이 부지기수입니다. 일이 없어 놀고 있는 스탭들이 한 두 명이 아닙니다.

그거야 영화계 사정이고 관객 입장에선 볼 영화 보고 안 볼 영화 안보면 그만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맞는 말씀입니다. 관객 입장에서야 650만 든 <놈놈놈>이 대박 낸 걸로 봐도 무방합니다. 볼만한 영화 나오면 보고 형편 없는 영화면 안보면 그만입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문화적 토양의 척박함을 부른다는 점입니다. 영화는 돈이 돌아야 만들어지는 대단히 자본 친화적 예술입니다. 돈이 안벌리면 그 다음 영화가 만들어지기 어렵습니다. 볼만한 영화가 적어진다는 얘깁니다. 그건 영화를 향유하는 관객들의 입장에서도 문화적 비극일 것입니다. 영화 창작자들이 투여한 노력만큼이라도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느냐는 대단히 복잡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가장 시급한 것은 역시 유통 시장의 모순을 하루 빨리 개선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2~3백만 명 동원으로도 수익을 내는 중저예산 상업영화를 더욱 적극적으로 개척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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