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다. 이 긴장 넘치는 시합을 바라보며 나는 계속 웃음이 나온다. 누군가는 장미란이 아름답다고 했다. 과연, 그가 내 몸무게의 세 배도 넘는 바벨을 "끄~응"하고 들어올릴 때 경이로운 미적 경지를 목격하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자꾸 웃음이 터지는 걸 어쩔 도리가 없었다. 다름 아닌, 그가 바벨을 땅에 둔중하게 내려 놓은 뒤 대기실로 향해 들어갈 때 짓는 표정 때문이었다.

장미란은 다른 선수들을 압도한 인상에서부터 금메달을 사실상 예약해 놓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일말의 불안감이 스칠 수밖에 없을 터,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긴장 끝에 파열되는 환희의 울부짖음을 나는 은근히 기대했다. 하지만 장미란은 보란듯이 배반했다.

환호하지 않고, 마치 해야 할 일을 당연히 했다는 듯, 눈을 지긋이 내리 깔며 대기실로 저벅저벅 향한다. 김도희 코치도 말이 없다. 장미란은 의자에 앉아 명상하듯 눈을 감고 있고, 코치는 그의 곁을 심각한 표정으로 오락가락한다. 또한 아무말 없이 장미란의 다리를 마사지한다. 두 사람은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아, 그건...고수들만이 나누는 이심전심의 무언의 대화? 상황에 어울릴만한 표정이 대입되지 않는, 인지상정을 거스르는 이 부조화의 결기, 그 낯선 풍경이 나를 자꾸 웃게 만드는 것이었으나 그 웃음에는 위대한 이를 바라보는 엄숙한 긴장감이 포개져 있었다.

금메달이 확정된 순간, 흥분한 건 중계 캐스터와 국민들 뿐이었다. 장미란은 의연했다. 코치의 얼굴에는 미동도 없었다. 순간, 나는 그들이 이 시합에 나오기 전 암묵의 합의를 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들에게 메달은 목표가 아니었다. 기록, 그러니까 세계 신기록. 장미란의 욕심은 거기에 닿아 있었다.

4년전 오심 논란을 부르며 아쉽게 금메달을 놓쳤던 그가, 이번 시합에서 메달에 연연하지 않고, 오로지 기록을 향해 내쳐 달려가는 모습은 눈부셨다. 고진감래를 꿈꾸며 와신상담해온 장미란은 이미 더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진정한 강자의 모습이었다. 그러니 그 모습이 찬란하지 않으면 이상한 노릇이다.

그는 단번에 세번째 신기록 달성을 완수하고 더 이상 들 바벨이 없게 된 뒤에야 환성을 내질렀다. 장미란은 그제서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코치에게 안겼다.

나는 그 감동의 순간에 또 웃었다. 뒤늦게 결기를 내려 놓은 그의 표정에서 뜬금 없이 쿵푸 팬더가 연상됐기 때문이었다. 아, 귀엽고 아름다운 그녀 때문에 모처럼 달도 밝은 오늘밤의 올림픽은 내게 더 없이 즐거운 엔터테인먼트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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