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배우 인생? 게으르진 않았어, 흡족하진 않지만"
최광희 (이하 '최') <방울토마토>는 작년 초에 이미 촬영이 끝났는데 개봉이 많이 늦어졌네요.
신구(이하 '신') 잘은 모르겠는데 극장을 잡기 힘들었나봐. 블록버스터가 있을 때는 피해 가고 그런 것 같아. 그러다 보니 좀 늦은 거지.
최 영화 보고 울었습니다. 굉장히 슬프더군요.
신 아이고.(웃음) 내용은 그렇지. 객관적으로 어둡고 마음이 무거워지는 작품이지만 일부러 그렇게 표현하려고 하지는 않았어.
최 너무 신파적이지 않게 보이려는 노력이 엿보이긴 했습니다.
신 그렇지. 적어도 걔(김향기가 연기한 다성이)가 불쌍한 애라는 걸 부각시키려 하지는 않았어.
최 선생님이 할아버지 역할을 했으니 신파가 될래야 될 수가 없는 작품일지도 모르죠.(웃음) 이 영화가 최초의 주연이라고들 하는데, 사실은 앞서 주연작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신 돌아가신 신상옥 감독과 <겨울 이야기>라는 영화를 작업했었지. 내가 시아버지이고 김지숙이 며느리 역할이었어. 이 시아버지가 치매에 걸린 내용이었는데 그 작품이 완성은 됐지만 끝내 개봉은 못 했어. 그 작품 때 치매노인을 표현했지.
최 그 때 직접 치매 노인과 함께 생활했다고 들었습니다.
신 치매노인을 위한 요양소가 있던데 거긴 완전 중증 환자들이 있는 데고, 구청마다 치매 환자를 돌보는 곳이 있더라고. 그런 데 가서 일주일 정도 연구도 하고 촬영도 했어. 행동 같은 거 관찰하면서 그렇게 접근을 해봤지. 도움이 됐어. 신상옥 감독도 잘은 몰랐을 거야, 치매 걸린 노인에 대해서는. 같이 어울리면서 연구했었어.
최 선생님 정도의 경력과 연세라면 직관으로도 충분할 것 같은데, 그 정도로 배역 연구를 하실지는 몰랐습니다.
신 당연하지. 나이가 얼마가 됐든, 세상에는 수백 가지 여러 직종이 있고 거기서 이루어지는 상대적인 일들을 다 알 수는 없는 거니까. 경험하면서, 살면서 보고 듣고 얻는 지식은 있지만 외형만 가지고는 안 되는 거니까 연구를 하게 되지.
"<방울 토마토>, 소외된 이들의 마지막 희망을 담은 영화"
최 <방울토마토>에서 맡으신 할아버지는 굉장히 극빈자입니다. 이 경우엔 어떤 연구가 선행됐나요?
신 그렇게까지 가난하게 살지는 않았지만 젊었을 때는 나도 어려웠고 주위에서 그런 분들 많이 봤어. 요즘에도 철거촌에 사는 사람들 있고, 드라마에서도 봤고. 익숙한 편이지.
최 촬영지는 실제 철거촌이었나요?
신 그럼. 실제 현장을 담아야지. 완전히는 아니고 철거되기 바로 직전에 있는 곳이었어.
최 영화 속의 할아버지는 굉장히 자존심이 강하고 괴팍한 편입니다.
신 괴팍하다기보다는 자기 신념대로 사는 거야. 비록 폐품 주워서 살지만 남에게 손 안 벌리려고 하고. 의지가 있는 사람이지.
최 기존 선생님이 가지고 계신 약간 무뚝뚝하고 투박한 이미지의 연장선에 있는 듯한 인물이더군요.
신 그렇지.
최 처음부터 시나리오를 신구 선생님을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이 아닐까 싶던데요?
신 그건 모르겠어.(웃음)
최 이 영화가 갖고 있는 미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니까?
신 사람들이, 이렇게 그냥 보면 다 잘 사는 것 같아도 조금만 눈을 돌리면 서울 주변에도, 뒤쪽에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 그런 사람들은 자기 앞에 불빛이나 희망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게 없으면 삶을 유지할 수가 없어. 그걸 바라보면 어렵더라도 걸어가면서 절망을 넘을 수 있지 않나, 그거지. '방울토마토'는 그렇게 맺어질 수 있는 열매인 거고. 그걸 얘기하고 싶은 작품이야.
최 감독은 배역과 관련해 선생님께 어떤 요구를 하던가요?
신 대본에 다 있으니까 정영배 감독이 따로 뭔가를 구체적으로 얘기하진 않았어. 시나리오 작가와 감독이 상의해서 감독 의견이 많이 반영됐고. 나를 떠올리면서 구상도 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촬영할 때 부딪히거나 할 일도 없었지.
최 첫 장면부터 젊은 지게꾼한테 '야 이 새끼야' 하면서 서슴없이 욕을 하시던데요. 손녀한테도 '야 이년아' 하고. 어렵게 살아온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일종의 독기의 표현이겠죠?
신 욕하면서도 거기에 가시가 들어있는 게 아니고 단순히 습관이니까. 어쩌면 친절한 표현일지도 모르고. 유명한 식당의 욕쟁이 할머니들처럼. 그 양반들이 하루 종일 입에 담는 게 진짜 욕이라면 누가 그들을 찾겠어. 거기에 진심이 있고 진정이 들어있는 일종의 자기표현일 수 있지.
최 영화 내내 노인은 자기 감정을 거의 표현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손녀에 대한 애정조차도 말이죠.
신 가슴에 묻고 사는 거지. 내가 그랬어. 다성이를 '이 불쌍한 년', 이러면 보는 사람들이 식상할 것 같다고. 당연히 불쌍한 애를 불쌍하다고 그러니까. 그게 아니라 나는 걔를 나와 똑같은 인격체로 놓고 보려고 했어.
"감동이 극장안에만 머물면 감동이 아니야"
최 다성 역의 김향기는 어떻게 보셨는지요. 연기를 참 잘하던데.
신 요즘 향기가 학교에 가나 봐. 촬영할 때는 안 다녔는데. 그런데 그 때도 글은 알더라고. 잘 해낼까 걱정스럽기도 했었어. 향기가 <마음이>라는 영화에 출연했었는데 그거 보고 믿음이 좀 덜 갔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촬영 시작하고 보니까 잘 해내. 제법이다, 생각했어. 그걸 끝까지 해내는 거 아냐. 재능이 있는 아이라고 봐.
최 그러고 보면 연기도 천부적인 자질인가 봐요.
신 우리는 나이 들어서 힘들게 끙끙대는데, 그런 애들은 확실히 재능이 있는거지.
최 개봉이 많이 미뤄진데다 만만치 않은 시즌에 개봉하게 됐습니다.
신 그게 걱정스러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 요즘은 큰 작품들이 많지 않나. 외부에서 들어온 작품들도 많고. 그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 게다가 배경이 추운 한겨울이잖아. 지금 개봉하면 어떤 상관관계가 있나, 이런 것들도 걱정스럽고.
최 확실히 계절은 안 맞네요.
신 그렇지. 지금은 더운데 겨울 풍경을 보고 관객들이 시원해 할까?(웃음)
최 많은 관객들은 현실의 답답함을 잊으려고 영화를 봅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 가슴이 더 답답해집니다.
신 그 답답한 가슴에 불편함을 하나 올려놓는 게 그들에게 카타르시스가 되어줄지 모르겠네. 나도 답답해.(웃음)
최 솔직히 관객들이 이런 영화를 통해 동정심을 소비해 버리고 말면 어떡하나 걱정이 있습니다. 불쌍하네, 하고 눈물 한 방울 뚝 흘리고 끝나는.
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그렇다고 하하 웃게만 하는, 물론 주제는 있겠지만, 그런 작품만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지. 요는, 어둡고 밝은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하는 점이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면 장르에 상관없잖나.
최 제가 특히 우려하는 건 극장 안에서의 감동이 일회용으로 그쳐버리고, 사회적으로 그 의미가 확장되지는 않는 상황입니다.
신 극장 안에서만 그러는 건 진정한 감동이 아니지. 극장을 나가고 집에 가서도 계속 마음에 남아있는, 소통은 물론 전파력까지 있어야 감동이라고 할 수 있는 거지. 문밖에 나와서 잊어버리는 것은 감동이라고 할 수 없는 거니까.
최 최근 시트콤 <김치 치즈 스마일>에 출연하셨죠. <거침없이 하이킥>만큼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신 그렇지. <거침없이 하이킥>이 워낙 큰 반향을 일으켜서 거기에 좀 가려졌어.
최 야동순재에 이어 선생님까지, 지금까지 전형적인 아버지 상을 연기했던 분들이 요즘에는 다소 코믹한 터치로 희화화돼서 나오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신 예를 들면 내가 그런 정형화된 인물로 각인돼 있었는데, 그런 사람을 조금 틀어놓고 찌그리고 해서 나오는 웃음을 즐기는 것 같은 느낌이야.
최 그런 흐름이 언짢거나 하진 않으신지요.
신 그렇진 않아. 극에서 상황이 만들어져서 그렇게 가는 거니까.
최 거기엔 가부장의 권위주의에 대한 일종의 반발심도 들어가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신 저마다의 생각이 다 다르겠지. 하지만 작품 상황 속에서 그렇게 설정이 돼 있는 거니까. 그것을 따라가지 않으려면 출연을 안해야 하는 거지.(웃음)
최 아버지 역할을 많이 맡으셨는데 그 중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영화가 <8월의 크리스마스>와 <반칙왕> 두 작품입니다. 똑같은 아버지 역할인데도 두 캐릭터가 색깔이 완전히 다르고 굉장히 대조적입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도 두 역할 모두 '신구스럽다'는 표현이 어울립니다. (웃음)
신 <반칙왕>에서 송강호를 보면 아버지가 그럴 수밖에 없잖아.(웃음)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한석규를 보면 또 그렇고. 굉장히 꼼꼼하잖아. 그 아들 성격이 어디서 나왔겠어. 지 애비한테서 나왔겠지.(웃음)
최 어느쪽이 실제와 더 가까운가요?
신 송강호 아버지가 나랑 더 가까워.(웃음)
최 주어진 캐릭터에 몰입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시나요?
신 배우들 각자 나름대로 방법이 있어. 내 경우에는 그 캐릭터의 출신이 뭔지, 국적이 뭔지, 어떤 환경에서 공부를 하고 성장했는지, 이런 걸 설정하면 그 속에서 뽑아지는 게 있을 게 아냐. 그게 상대와 마주칠 때 생겨나는 부딪힘을 이해하고, 그러면서 구축해나가는 거지.
최 물론 일상의 경험들 역시 캐릭터를 이해하는 중요한 재료가 되겠죠.
신 물론. 모두 도움이 돼. 만약 이조 때의 왕을 연기한다, 그러면 내가 직접 그 때를 살아본 것도 아니고. 간접 경험이라고 하잖아. 매체를 통해서 그런 경험들을 하고 잘 섞이면서 만들어지는 거야.
"나는 내 성격이 싫어..."
최 1962년에 연극 <소>로 연기 생활을 시작하셨습니다. 연극은 여전히 선생님께 연기자적 고향인가요?
신 연극하는 사람들 마음속에는 다 그 생각이 내재돼 있을걸. 어제 대학로에 가서 연극을 보고 왔어. 매번 연극을 해야지, 하는 강박관념이 있는데 선뜻 지금 하고 있는 작품을 정리를 못해. 매일 조금씩 한두 달 연습을 해서는 안 되지. 풀로 해야 돼. 그게 참 어려워. 강풀이라는 만화작가가 있더라고. 그 친구가 예전에 만화 <사랑합니다> 그걸 나보고 하자고 제안했었는데 시간을 맞춰보다가 결국 못했지. 아쉬워, 했으면 좋았을 텐데.
최 연극에 투여되는 에너지량도 상당할 텐데 감당하기가 만만치 않으시겠죠.
신 그러니까. 더 나이 먹기 전에 해야 되는데. 정말 참여를 하고 싶은데 요즘에는 저 많은 대사를 지금 내가 소화해 낼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해. 예전에는 그런 생각 안했거든. 전에는 대사가 많을수록 즐거웠지. 그런데 지금은 물리적으로나 체력적으로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생기는 거야. 물론, 맘먹고 하면 사람 일인데 못하겠어, 싶으면서도.
최 선생님 말씀대로 더 늦기 전에 연극 무대에서 뵙고 싶네요. 연극이든, 영화든 많은 작품을 해오셨는데 '이게 나의 대표작이다'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계시는 건 뭔가요.
신 대표작? 아휴. 이제 기억력도 떨어지고 그래서 잘 모르겠어.(웃음)
최 영화 초창기에는 악역을 많이 하셨죠.
신 나, 영화 많이 안했다니까.(웃음) 많이 안했을 뿐더러 선한 역과 악역을 나눌 수 있을 정도도 아니고, 실은.
최 한없이 선한 역을 하시지도 않은 것 같아요. 약간 성질머리가 있다거나 하는 그런 인물들.(웃음)
신 그렇지.
최 그러다 보니 일정한 패턴에 갇혀 있다는 느낌을 가지신 적은 없는지요.
신 스스로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어. 정형화된 역이 온 것은 아니고. 악역이나 선한 역이더라도 조금씩 틀어져서, 넓은 범주 안에서는 저마다 조금씩 다른 역을 했지. 그런 면에서는 좀 자유로웠어. 착한 아버지인데, 반은 이런 쪽이다 하면서 넘나들었으니까.
최 경기 고등학교를 나오시고 성균관대 국문과를 2차로 들어가셨죠.
신 지금은 1, 2차가 없잖아. 서울대 떨어지고 거기 갔는데. 내가 국어학자가 될 의향이 있어서 국문과에 들어간 건 아니고. 재수하려고 했는데 2학기 때 여러 가지 갈등이 생겨서 군대에 가버렸어. 그럴 땐 정말 군대가 도피처야.(웃음)
최 그런데 왜 대학을 중퇴해 버리셨어요.
신 내가 학자가 된다거나 이런 뜻이 있었던 건 아니었기 때문에 제대하고 이것저것 찾다보니 그랬어.
최 말하자면 방황을 하신 거로군요.(웃음)
신 요즘은 직업이 얼마나 다양해. 그러고 각자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어느 정도만 하면 생활하는 데는 지장 없을 정도 아냐. 그런데 그때는 판검사나 의사, 은행원 이게 최고였어. 그 축에는 못 끼었고.
최 이순재 선생은 서울대 나오시고 여운계 선생은 고려대 출신이고, 비슷한 연령대의 배우들이 학벌이 좋은 편입니다. 그때는 연기자를 딴따라라고 해서 폄하하는 분위기였을텐데 말이죠.
신 팔잔 걸 어떡해. 지가 좋다는데.(웃음) 내재된 욕망이나 바람은 학력과 상관없어. 공대나 의대 다니는 사람들 중에 음악을 하는 사람도 얼마나 많은데. 단지 직업으로 택하지 않았을 뿐이지.
최 대학 중퇴하시고 연극으로 갔을 때 주변이나 부모님께서 반대하진 않으셨는지요.
신 부모님 입장에서는 내가 뭐하려고 그러는지도 잘 모르셨을 거야. 밥은 먹고 사나 한심했겠지만.(웃음) 내가 외아들인데 뭘 한다고 하면 부모님 입장에서는 불만스럽지만 도시락 싸들고 말릴 정도는 아니었어.(웃음) 그래서 내가 연기로 나갈 수 있었지. 장사라도 해서 돈 벌어 와라 이랬으면 못하지.
최 성장과정에서 억압이나 큰 걸림돌은 없었던 셈이군요.
신 그렇지. 한데 집에 돈도 많지 않고 동생도 시집 보내고 혼자 지내다가 그 사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랑 둘이 지내다가 결혼도 늦게 했어. 39살에 했으니까.
최 결국 결혼하신 뒤 TV와 영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신 만약 그 때 연극만 갖고도 살 수 있었으면 연극만 했을 거야. 지금도 영화배우들 중 연극에서 충원된 사람들이 많잖아. 예나 지금이나 연극만 해서는 도저히 살 수가 없었어. 그때 돈을 만질 수 있는 데라야 TV, 영화 정도잖아. 그래서 그쪽 일을 했는데 이제 그쪽이 너무 바빠지니까 시간을 빼지 못하고 있지.
최 연기자 가운데 막역하다 싶을 정도의 동료 의식을 가진 분은 누가 계신가요?
신 막역하진 않아. 따로 가깝게 지내는 친구들이나 즐기는 모임은 좀 있지만.
최 실제 성격은 어떠세요?
신 내 성격이라……나는 내 성격이 참 싫어. 우유부단하고 굉장히 내성적이야. 내가 생각했을 때, 어떻게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연기를 할까 싶어. 아마 대본이 있으니까 할 수 있는 거겠지. 내성적이고 소극적이고 남 앞에 서서 말을 잘 못해. 어눌하고. 자기표현이 불분명하고 끊고 맺는 결단력이 없어요, 내가. 다른 사람들 보면 쾌도난마라고 하나, 결단력 이런 거 보이면 부럽고. 나는 그런 걸 잘 못 해.
최 그런 성격 때문에 손해를 보고 계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고쳤으면 이런 점에서 더 잘 됐을 텐데, 라거나.
신 그건 모르는 거잖아, 더 좋아지거나 아니면 더 나빠졌을 수도 있고. 뭘 결정하려고 하면 아래, 위로 좌우로 다 생각하는데. 그런 게 결론을 도출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나는 싫단 말이지. 신중하다고 할까 그런 면에서는 도움이 됐겠지만 내가 보기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만약 내일 누가 만나자는데 지금 할 일이 이것저것 있다 쳐. 만나긴 해야 하고. 이런 일도 빨리 결정을 못 해. 그런 게 싫지. 어차피 선택은 하나인데.
"다시 태어나면 미술가가 되고 싶어"
최 젊은 배우들과도 활동을 많이 하시는데 젊은 배우들 중에 짜증 나는 경우는 없으세요?
신 잘하는 애들이 너무 많아. 각자 공부하고 왔겠지만 그 나이에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건 대단한 거야. 자라 온 시간이나 세대 자체가 우리랑 완전히 달라. 주로 80년대 이후에 출생한 세대들. 걔네는 눈뜨면서 인터넷이나 비디오, 그림 이런 것들에 둘러싸여 자랐잖아. 우리는 세상에 전차 다니고 볼 것도 없었는데. 감성이랄까, 이런 게 굉장히 발달돼 있는 거라고.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연기도 그렇고. 사회 영향이 큰 것 같아.
최 그런 엔터테이너로서의 재능과는 별개로 연기의 깊이라든가 하는 점에서 아쉬움은 없으세요?
신 뮤지컬을 놓고 보자고. 춤도 춰야 되고 노래도 부르고 연기에도 빠져야 되고. 연기 하나만 갖고 되는 게 아니잖아. 심오한 연극을 할 때도 그렇고.
최 그렇다면 촬영현장에서 후배들의 연기에 대해 별 말씀 안하시는 편이겠네요.
신 그 친구들이 상의해오면 그 때 내 의견을 말할 뿐이지, 내가 감독하고 얘기해서 연기가 마음에 안 든다고 지시하거나 그렇지 않아. 그런 태도가 애들한테 관심이 없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그건 이미 감독하고 상의가 됐고 자기들도 충분히 공부해서 체득하고 왔는데 내가 취향에 안 맞는다고 그러면 안 되지. 선배들은 주로 타당한 얘기를 하는 거겠지만, 나는 이 친구, 저 친구에게 지시하거나 하지 않아.
최 선생님 연세 정도 되면 젊은 애들이 답답해 보이고, 그러진 않으신지요.
신 젊은 애들이 문제다, 이런 말은 공자 시대에도 있었어.(웃음), 젊으니까 시행착오도 있고 그게 미덕일 수도 있고. 고쳐가면서 받아들이는 감수성이나 발전 가능성이 좋다는 거야, 요즘 애들은. 뭐, 나라고 젊었을 때 잘했나.(웃음)
최 혹시라도 정치 분야 쪽에 대한 생각을 가진 적이 없으신지요.
신 없어. 원했다면 할 기회는 많았지.
최 그런데 왜, 개인적인 신념 때문에?
신 정치란 일반적인 의미로 '사람을 편히 살게 하자'는 거잖아. 그런데 만날 신문이나 TV에는 정치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로 넘치잖아. 그 사람들에게 가는 내 시선이 곱지가 않아.
최 선생님까지 그 대열에 끼고 싶지는 않다는 말씀?
신 물론이지. 내가 끼지 않는다고 세상이 깨끗해지고 편해지는 건 아니겠지만.
최 그렇다면 연기 외에 영역을 확장하고 싶다거나 하는 분야는 없으세요?
신 없어. 그런 게 있었으면 하다 못해 가게나 음식점이라도 내서 돈 벌고 싶은 생각도 있었을 텐데 이것도 제대로 못하면서 무슨 가게를 내. 그게 쉬운 일이야? 그 많은 사람들 입맛 생각해서 맞춘 다음에 내 주머니 불리게 하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열심히 해야 되는데 내 능력이 안 돼.
최 그렇다면 스스로의 연기에 대해서도 잘 만족 못하시는 편인가요?
신 그건 나뿐만이 아니지. 이 직종만의 얘기도 아니고. 예술이라는 분야에 있는 사람들은 다 그럴 거야. 조각가가 자기 조각품 보면서 거기에만 빠져 있다고 생각해 봐, 다음 작품을 왜 하겠어?
최 그래도 예술인들은 일종의 자아도취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신 물론 그런 게 있기는 해야 하지만 거기에 빠져버리면 안되지. 나름의 성취감은 있어야겠지만 거기에 안주해 버리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어.
최 선생님의 연기를 스스로 평가할 때 가장 답답하거나 아쉬운 부분은 무엇입니까?
신 연애감정 같은 거. 나는 못해봤으니까. 사랑하고 속삭이고 이런 거.(웃음) 다른 배우들은 어쩌면 저렇게 잘할까, 싶어. 멜로드라마 주인공들 있잖아. 그게 밋밋한 것 같아도 어려운 건데. 색깔 있는 역할은 바로 눈에 띄지만 그 뜨뜻미지근한 걸 처음부터 끝까지 앞에서 리드해나가야 하는 거니까.
최 40년 이상 연기자로 사셨습니다. 중간 결산을 해 보신다면 선생님의 연기 인생을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신 게으르진 않았다는 거. 작품 맡으면 성과 열을 다해서 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흡족할 순 없지만. 사람들한테 나, 이런 작품을 했다고 각인시킬 수 있는 작품이 선뜻 떠오르지 않는 게 좀 아쉽고.
최 앞으로 만드셔야겠네요.(웃음)
신 내가 만약 미술가나 조각가라면 되든, 안 되든 노력해보겠는데 연기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니까. 여럿이 하는 거라서 열심히 한다고 해도 반드시 성공하란 법도 없고. 나는 다시 태어난다면 미술가가 되고 싶어. 자기 작업에 혼자 책임질 수 있는.
최 합동 작업의 한계 때문에 본인의 재능이 제대로 발현이 안됐다는 말씀?
신 그런 뜻일 수도 있고.(웃음) 반대로 내가 참여한 탓에 작품이 잘 안됐을 수도 있고.
최 건강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는 계속 연기를 하실 생각이시죠?
신 그렇지. 그렇다고 나 건강하니까 나를 써라 할 수는 없는 거잖아.(웃음)
최 앞으로 10년 정도는 더?
신 그건 장담할 수 없어.
최 워낙 건강하시잖아요.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세요?
신 기회 되면 필드 나가고. 걷는 거 좋아해. 일주일에 40킬로미터씩 걸어.
최 40킬로미터나?
신 우리 동네에 8킬로미터짜리 코스가 있어. 매일이라고는 할 수 없는데 아침마다 걸으려고 해. 우리 일은 새벽에 나가야 할 때도 있잖나. 그럴 때는 오후에라도. 조깅을 했었는데 주위에서 늙은이가 왜 뛰냐고 해. 걷는 게 좋더라고. 배가 좀 나왔었는데 걷기 시작한 이후로 체지방이 줄어든 것 같아. 요새는 조깅화도 좋고. 그거 신고 하니까 확실히 걷는 데 쓰이는 근육부위가 다르더라고.
최 술, 담배는 안하세요?
신 담배는 안 해. 마흔 살에 완전히 끊었어. 끊은 지 30년 정도 됐나. 드라마 상에서 담배를 무는 게 좋겠다, 하면 물고는 있지만. 예전처럼 피려고 해도 깊이 흡입이 안 돼. 담배 냄새가 역해서. 술은 좋아.
최 자주 드세요?
신 매일.(웃음) 요즘 나이 들어서 밖에 나오면 할 일이 없어. 주위에도 술 끊은 사람들이 많아서 나와서 먹자고 하지도 않고. 집에다가 갖다놓고 매일 마셔.
최 주로 뭘 드십니까?
신 소주.(웃음) 소주만큼 좋은 게 없어. 매일 한 병씩.
최 건강에 안 좋지 않을까요.
신 요새는 소주 알코올 도수가 너무 약해졌어. 그래서 한 병 정도는 괜찮아. 한 병이 미진하다, 싶으면 조금 더 먹어.(웃음) 두 병 먹으면 다음날 부담스럽지만.
최 댁에서 선생님 혼자?
신 요즘은 저녁 식사할 때 술이 곁들여져야 음식 맛이 나는 것 같아.(웃음) 거기서 못 벗어나서 집사람이 창피해 죽겠다고 그래. 박스로 술 가져오고 빈 병 가져가고 또 새 박스 오고.
최 와인이나 위스키 같은 건 안드세요?
신 와인은 감흥이 안 와. 이게 또 무슨 맛인가 싶어. 마니아들은 많이 찾는다지만. 양주는 좀 독한 것 같아. 물 타서 마시면 별로고. 고급술은 좀 괜찮은 게 있더라만 소주가 제일 좋아. 국민주 아냐, 소주가.(웃음) 별 탈도 없어, 나는. 집사람한테 나는 열과 성을 다해서 걷는데, 술을 마시려고 걷는다고 말해.(웃음) 술이 내 체내를 순환시켜주는 것 같아.(웃음)
사진 김주영(LIFE LIFE 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