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시장 유연성에 뒷통수 맞다

별별 이야기 2007. 6. 15. 15:06 Posted by cinemAgora

살다 살다 이런 경운 처음이다. 신입 사원으로 뽑은 친구가 출근 첫날 2시간만에 종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무 말 없이. 전화도 안받는다. 안다니겠다는 의사를 참 쿨하게도 표현하시네, 황당함을 넘어, 인간에 대한 예의가 짓밟힌 기분이 들어 무참하다.

보름 전에도 다섯 명의 젊고 패기 있는 젊은이들이 입사 면접을 보러 왔다. 모두들 호기롭게 답했다. "뽑아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며칠 뒤 그 가운데 한 분에게 전화로 합격 통보를 했더니 망설이는 분위기다. 그리곤 덧붙이는 한마디, "저...생각할 시간을 좀 주시겠어요?" "그러세요, 하고는 기다렸다. 2시간만에 문자가 왔다. "죄송하지만 저와 안맞는 거 같습니다."

두번째 사람도 똑같은 대답이었다. "다른 데 오라는 데가 있어서요." 오기가 발동해 세번째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역시 똑같은 대답. 그들 모두에겐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다. 하지만, 괜히 화가 돋는다. 애꿎은 세번째 합격자에게 쏘아붙였다. "그럼 왜 면접을 보신거죠? 입사 의사가 있으니 보신 거 아니었나요?" "....저...그게요....모두들 여러 군데 알아 보고 그중에 처우가 가장 좋은데로 결정하거든요..."
 
아뿔싸, 내가 잊었다. IMF 극복을 명분으로 강력하게 밀어 붙인 노동 시장의 유연성 정책으로 말미암아 평생 직장 개념이 사라져 버린 지 오래이지 않은가. 이른바 프리터들이 양산되고, 젊은이들은 더 이상 나를 혹사할 것 같은 직장에 젊음을 바치지 않는다. 하기 싫은 일 억지로 하느니, 적게 벌고 적게 쓰겠다는 인식이 팽배해 졌다.

여기저기 인재가 없다고 아우성이다. 어렵게 뽑은 친구들은, 쓸만해지면 다른 길을 택한다.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기업에 해고의 편의를 보장해주기 위해 마련된 노동시장의 유연성 정책이 부메랑이 돼 고용주들의 뒷통수를 후려 갈기고 있는 것이다.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노동자들을 뜨내기 만든 대가다.

기업이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에서, 사람들은 직장을 더 이상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자연의 이치다. 열 받는 건 그 이치에 침 마르고 피 마르는 게 나같은 중간 관리자들이라는 것이다. 별 수 없다. 이젠 나도 쿨하게 받아들이련다. 자본의 의지대로 유연하게, 유연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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