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 쇠고기 사태가 일파만파다. 모처럼 국민들의 응어리진 분노가 청계천 광장을 밝히는 촛불이 돼, 탄핵 서명운동의 함성이 돼 터져 나오고 있다. 어린 학생들조차 국민의 밥상을 볼모로 한 정부의 종속 외교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는 지경이다. 실용주의의 한길로 매진하는 이명박 정부가 집권 초기부터 먹거리라는 덫에 단단히 걸려 놓고도 시침 뚝 떼고 있는 꼴이 가관이다.
그런데 이번 사태가 단지 어쩌다 보니 국민 건강권을 홀대하고 만 MB 정부의 오버에 불과한 것일까. 한미 동맹이라는 거시적 국익을 위해 한발 양보한 것에 그친 것이라면, 이것을 계기로 두발 전진하겠다는 사탕발림이 효력을 발휘할 수도 있을텐데, 많은 국민들이 거기에 흔쾌히 신뢰를 보내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금 더 나아가, 쇠고기 수입이라는 각론은 수용 불가이겠지만 한미 FTA라는 총론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여러 가지 논의들이 교차한다.
사실 광우병 쇠고기를 국민의 밥상에 올려 놓게 될 지경까지 이르게 된 기저에는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말로 포장된 ‘신자유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숨어 있다.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한국 경제를 송두리째 뒤바꿔 놓은 금융 주주 자본주의의 창궐과 그것을 이념적으로 정당화하는 신자유주의적 질서에 의해 우리의 삶이 하나 하나 바뀌어 나가고 있다. 나는 그 연장선에 광우병 쇠고기 파문이 자리 잡고 있다고 본다. 바야흐로 미국인이 아무렇지도 않게 먹으니 우리도 그래야 하는 시대다. 신자유주의 하에서는 그게 글로벌 스탠더드니까.
그 뿐이랴? 폭등하는 대학 등록금과 청년 실업에도 신자유주의의 그늘이 어른거린다. 중소기업의 만성 체불 임금에도, 전체 임금 노동자의 절반을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에도, 주당 60시간 이상의 살인적인 노동 강도를 감내해야 하는 IT 업계 종사자들에게도, 사교육비 부담으로 허리가 휘는 학부모들의 시름 가득한 얼굴에도, 하물며 한 두 편의 영화가 스크린을 싹쓸이하는 극장가에도 신자유주의는 마수를 뻗친다. '세계 표준에 맞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전국민 일로 매진'이라는 구호가 이상하게도 그리 이상하지 않게 들리는 시대다!
답답증이 몰려오는 와중에 최근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이 펴낸 책 <새로운 사회를 여는 희망의 조건>을 읽었다. 책은 우리의 일상을 관통하는 신자유주의의 실체를 분석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안갯속에 갇힌 듯 답답했던 시야를 뻥 뚫어주는 혜안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증폭되는 불합리함을 한꺼풀씩 차근차근 벗겨내 그 알몸을 드러내 보인다. 그러면서도 이 처참한 양극화 사회를 극복해 나갈 대안 제시에도 소홀하지 않다.
혹시라도 기회가 되시는 방문객들의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상위 10%만을 위한 시장구조에서 하위 90%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긴 부제를 달고 있으나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해답은 종국엔 각자의 몫일 것이다. 적어도 우리가 어떤 세상을 살고 있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모색을 원하는 분들에겐 꽤 큰 도움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