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다시 한국영화의 위기론이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위기냐 아니냐를 놓고 영화계안팎에서 분주한 설왕설래가 오간다. 한쪽에선 이번에야말로 진짜 위기라고 경고한다. 또 한쪽에선 한국영화가 언제 위기 아닌 적이 있느냐며 위기론 자체의 파급을 냉소한다. 1999년 <쉬리>의 기록적인 흥행 이후 지난 8~9년간 한국영화의 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와 전성기를 자축하는 흥분이 주기적으로 되풀이돼 왔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요즘 위기의 실체를 들여다보려는 방송이나 지면으로부터 발언을 요청 받는 경우가 부쩍 많아진 걸로 봐선 위기의 체감지수가 이전보다 훨씬 높아진 것만큼은 분명한 것 같다.

실제로 여러 가지 지표가 그 심각성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한국영화의 투자 수익률은 마이너스 44%에 달했다. 이 정도면 산업으로서의 재생산구조가 사실상 붕괴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올 1/4분기만 해도 400만 이상의 관객을 달성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나 <추격자> 등을 빼면 대다수 개봉 영화가 손익분기점을 맞추지 못했다. 게다가 제작 편수도 급감해, 3,4월 극장가에 내걸린 한국영화 편수가 눈에 띄게 줄었으며 메이저 배급사들조차 하반기 개봉 라인업을 확정 발표하지 못할 정도가 됐다. 확실히 심각한 위기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것은 이 위기 국면이 한 두 편의 대박 흥행으로 가려질 수 없다는 데 있다. <우생순>과 <추격자>의 흥행으로 또다시 ‘한국영화의 부활’운운하는 일부 언론의 성급한 자축이 답답해 보이는 것은 그래서다.

실체는 무엇일까. 지난 10년 동안의 한국 영화산업은 양날의 칼이었다. 한 편으로 자국영화 점유율이 급상승하고 규모도 커졌지만, 한 편으로는 고질적인 병폐가 방치된 채 곪을 대로 곪았다. 한 영화가 전국 스크린의 절반 가까이에서 상영될 수 있는 나라는, 내가 아는 한 세계에서 한국이 사실상 유일하다(지난해 개봉한 <캐리비안의 해적: 세상의 끝)에서는 2개 중 1개 꼴인 900개 스크린에서 상영됐다). DVD나 비디오를 통한 수입이 전체 흥행 수입의 2%에도 미치지 못하는 나라도 거의 한국이 유일하다. 한국영화의 전성기는 다리 끊긴 벼랑 끝으로 가속도를 높이며 달려온 폭주 기관차의 질주나 다름 없었다는 얘기다.

이 같은 구조적인 모순을 위기의 원인으로 지적하면, 어김 없이 한국영화의 창의력 부재를 성토하는 목소리들이 터져 나온다. 이것은 한국영화의 구조적 불합리성을 타개하기 위해선 불가피하게 어느 정도 관객들의 관용과 협조를 요구할 수밖에 없는 사정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궤멸한 부가 판권 시장을 회복하기 위해선 영상물의 불법 다운로드를 자제해야 한다. 지나치게 낮게 책정돼 있는 영화 관람료를 정상화하기 위해선 여러 할인 혜택이 줄어드는 상황을 관객들 스스로 감수해야 한다. 위기의 책임을 관객들에게 돌리려 한다는 반감이 터져 나오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영화인들부터 똑똑히 하라”라는 성토가 이어지고, “뻔한 영화 말고 독창성 있는 영화를 만들라”는 성난 목소리가 인터넷을 달군다.

그러나 독창성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은 위기의 원인이 아니다. 그것은 위기의 증상이다. 쏟아 부은 열정만큼의 정당한 대가를 보장 받지 못하는 환경에선 대충 만들어 대충 벌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최근 일본 원작을 리메이크한 영화가 양산된 것도 그 같은 사정에 기인한다. 위험 부담이 많은 만큼 안전하게 가려는 심리의 결과물이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국영화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나는 그 해법을 영화라는 매체를 바라보는 패러다임의 전환에서 찾아야 한다고 믿는다. 문화 강대국인 프랑스에서 영화는 국가와 관객의 보호 하에 육성되는 예술이다. 그것은 영화를 단순히 사고 파는 상품이 아닌 시민의 의식과 무의식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공공재로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다.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한 두 편의 영화가 스크린을 싹쓸이하는데, 보고 싶은 영화가 극장에 걸리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나마 일주일도 안돼 간판을 내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데도 한 영화의 과도한 스크린 독과점을 견제해야 한다고 말하면, 자유 시장 경제 논리에 위배된다는 반발이 앞선다. 규모는 작지만 가치 있는 영화가 망해가는 것은 관객이 찾지 않기 때문이며, 수요 공급의 원칙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이니 문제될 게 없다고 주장한다. 정부 관료나 대다수 정치인들에게 영화는 자동차 몇 만대와 맞먹는 수출 상품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국민의 자긍심을 드높여주는 애국 문화 상품에 불과하다. 그래서 이 나라 영화진흥위원회의 모토도 ‘시민의 영혼을 풍요롭게’나 ‘영화 다양성 증진을 통한 문화적 참여의 제고 ’ 따위가 아닌, 그 위세도 무시무시한 ‘세계 5대 영상 강국 실현 ’이다.

관객들도 영화를 화장품이나 몸에 걸치는 소비재 상품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점점 커지는 것 같다. 대규모 마케팅에 낚여 당초 가졌던 기대와 어긋난 영화를 만났을 때, 영화 그 자체의 가치와 상관 없이 품질에 대한 저주를 퍼붓는 네티즌 리뷰가 쏟아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부가 판권 시장을 살리기 위해 불법 다운로드를 자제해야 한다고 말하면, 돈 내고 볼만한 영화가 없으니 다운받는 게 뭐 어떠냐고 말한다. 영화는 이제 공짜 화장품 샘플과 같은 대우를 받고 있다.

영화를 이렇게 홀대한다면, 낮은 질의 영화가 양산된다고 해도 성토할 근거는 사라진다. 점점 더 얄팍한 영화로 관객들의 호주머니를 털려는 시도가 이어질 것이며, 관객들은 그런 영화에 냉소하는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다. 그리하여 머지 않아 한국영화 전성기를 추억처럼 곱씹을 날이 올지도 모른다. 우리가 우리의 영화를 화제에 올려 대화할 수 없다면, 우리의 문화적 일상이 참으로 메마르고 재미없지 않겠는가. 창의적인 자기 문화를 갖지 못한 시민의 영혼은 궁핍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정책 담담자들과 산업 종사자들, 관객들 모두 영화를 예술이자 시민의 공공재로 대하려는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영화를 상품이기 전에 예술로 대우하자.


*전북일보 전주국제영화제 특별판에 기고한 글입니다.


,
BLOG main image
3 M 興 業 (흥 UP)
영화, 음악, 방송 등 대중 문화의 틀로 세상 보기, 무해한 편견과 유익한 욕망의 해방구
by cinemAgora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187)
찌질스(zzizzls) (3)
영화 이야기 (702)
음악 이야기 (34)
TV 이야기 (29)
별별 이야기 (122)
사람 이야기 (13)
3M 푸로덕숀 (156)
애경's 3M+1W (52)
민섭's 3M+α (27)
늙은소's 다락방 (26)
라디오걸's 통신소 (1)
진영's 연예백과사전 (4)
순탁's 뮤직라이프 (10)
수빈's 감성홀 (8)

달력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TNM Media textcube get rss DNS Powered by DNSEver.com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3 M 興 業 (흥 UP)

cinemAgora'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 Supported by TNM Media
Copyright by cinemAgora [ http://www.ringblog.com ]. All rights reserved.

Tattertools 티엔엠미디어 DesignMyself!
cinemAgora's Blog is powered by Textcube. Designed by Qwer999. Supported by TNM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