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가 뭐 어쨌다고?

영화 이야기 2008. 4. 29. 00:47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사용자 삽입 이미지

외설과 철학의 만남?! 실비아 크리스텔의 <엠마뉴엘>


* 이 글은 2008년 4월 19일자 <무비위크>에 실렸던 김태훈의 Insert cut 칼럼입니다.


몇몇 지면을 통해서 몇 번이나 밝힌바 있지만, 팝 칼럼니스트는 대단한(!) 에로 영화 마니아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세운상가 근처를 도서관 다니듯 들락거렸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한 동안 비디오 숍의 에로 섹션에서 팍팍한 학교생활의 위안을 얻곤 했다. <애마부인> 시리즈 같은 고전부터 <야시장>과 <빨간 앵두>로 이어지는 비디오용 에로 영화, 그리고 예술과 외설의 경계선 위에 있던 <엠마뉴엘>에서 <타부>로 대표되는 노골적인 포르노그래피까지 그 스펙트럼은 실로 방대하다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런 사적인 취미생활이 사회적 편견 때문에 간혹 곤혹스러운 대우를 받을 때가 있었다는 것이다. “네가 지금 몇 살인데 아직도 그런 영화를 보냐?” 식의 비아냥에 홀로 상처받곤 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어찌 트렌치 코트를 휘날리며 파리 시내를 고독하게 걷던 유혜리 주연 <파리애마>의 영상미를 알려줄 수 있을 것이며 <애란>에서 도기(dggy) 스타일로 욕망에 울부짖던 김구미자의 처연함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

뭐, 어찌되었건 지금까지도 일관성 있게 가꾸고 있는 이 에로한 취향이 최근에는 그럴듯한 대상을 만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성애 영화는 극장에서 사라진 지 오래고, DVD 렌탈 숍에 나와 있는 국내 영화들도 <곧 세우마 금순아> 류의 패러디 제목만이 난무할 뿐, 개성과 완성도가 느껴지는 작품들이 극히 희박해 졌기 때문이다. 아마도 야동의 범람이 가져온 현상들이겠지만, 성(性)이란 인류의 영원한 화두가 너무 싸구려 취급 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다.


며칠 전 시내의 한 극장을 찾았다. 일본 성애 영화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극장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혼자 티켓을 구입하고 상영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tv를 통해 얼굴을 알아본 관객들이 하나 둘 주변에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이런 식이었다. “킥킥, 혼자 영화 보러 왔나봐.” “이런 영화 좋아 하나봐?” 글로 뉘앙스를 옮기기 힘들긴 하지만 짐작하는 데로 일종의 비웃음이었다고 해야 할까? 한 편으론 억울한 생각도 들었다. ‘당신들이나 나나 같은 영화를 보러 온 사람들이 아닌가? 그저 다른 게 있다면 당신들은 커플로 나는 혼자 왔다는 차이가 있을 뿐...’


볼테르의 말이었던가? ‘우린 모두 욕망에서 잉태된 자식들이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어디 볼테르의 명언뿐일까. 세익스피어는 ‘사랑에는 가식이란 것이 없다. 욕정은 먹보라서 가식으로 죽어버린다.’라고 했고, 프레보는 ‘사랑의 힘은 육체로서 그것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고 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사랑에는 엄지손가락을 곧추 세우면서 섹스와 에로에 대해선 짜증 섞인 표정을 짓곤 한다. 이쯤해서 궁금해졌다. 팝 칼럼니스트만 유독 독특한 취향을 가지고 있어 에로 영화에 열광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나이를 어느 정도 먹고 나면 섹스에 대한 호기심이 사라져 버리는 걸까?


존경하는 한 대학 교수는 이런 말을 했었다. “호기심이 사라진 순간 인간은 끝난 것이다. 세상에 새로운 것이 없다고 느껴지면 다방에 앉아 창문으로 길가에 지나다니는 여성들의 다리라도 훔쳐보라.”


마흔이 다되어서도 아직 장가라는 것을 가보지 못한 팝 칼럼니스트의 이성과 에로에 대한 호기심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비슷한 취향과 열정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아 졌다. 어쩌면 그들은 모두 동네 다방에 앉아 창문만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아내와 남편의 품속에서 행복한 단잠을 취하고 있을라나? 싱글이라서 이래저래 심난한 봄날이다. 

 


* 이야기만 풀다보니 역시 2% 부족한 면이 있음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영상을 올리기엔 왠지 너무 노골적인 느낌이 들어 본 칼럼에 어울릴만한 음악 한 곡 선곡한다. 구성상으론 <엠마뉴엘>의 주제곡이 제일 훌륭한 선곡이겠으나 아쉽게도 데이터 베이스에 존재하지 않는 이유로 개인적인 취향의 곡 하나 올린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샹송가수 제인 버킨의 곡 <Je t'aime moi non plus>. 한 때 부부였던 프랑스의 기인 싱어송아티스트 세르즈 갱스부르의 작곡이다. 노래의 후반부 흐느끼는 듯한 제인 버킨의 묘한(!) 창법에 주목하시길...




,
BLOG main image
3 M 興 業 (흥 UP)
영화, 음악, 방송 등 대중 문화의 틀로 세상 보기, 무해한 편견과 유익한 욕망의 해방구
by cinemAgora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187)
찌질스(zzizzls) (3)
영화 이야기 (702)
음악 이야기 (34)
TV 이야기 (29)
별별 이야기 (122)
사람 이야기 (13)
3M 푸로덕숀 (156)
애경's 3M+1W (52)
민섭's 3M+α (27)
늙은소's 다락방 (26)
라디오걸's 통신소 (1)
진영's 연예백과사전 (4)
순탁's 뮤직라이프 (10)
수빈's 감성홀 (8)

달력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NM Media textcube get rss DNS Powered by DNSEver.com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3 M 興 業 (흥 UP)

cinemAgora'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 Supported by TNM Media
Copyright by cinemAgora [ http://www.ringblog.com ]. All rights reserved.

Tattertools 티엔엠미디어 DesignMyself!
cinemAgora's Blog is powered by Textcube. Designed by Qwer999. Supported by TNM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