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드 레이서'는 애들 영화다

영화 이야기 2008. 4. 28. 21:07 Posted by cinemAg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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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게 말해, 난 <스피드 레이서>가 애들 영화라고 생각한다. 모형 자동차를 손에 쥐고 상상의 트랙 위를 윙윙 대며 질주하던 소싯적 로망을 극단으로 밀어 붙이는 일종의 가상 체험 영화다. 그것도 처음부터 끝까지 총천연색 컴퓨터그래픽으로 도배를 해놓았다. 사실상 (나중에 CG가 입혀질) 블루 스크린 앞에서만 연기를 펼친 듯한 배우들은 '모험을 통한 성장'이라는 아동영화적 플롯에 충실하게 봉사한다.

그러나 분명히 이 영화에는 여러 복잡한 의미 부여와 상찬을 내포한 분석들이 뒤따를 게 뻔하다. 두 가지 키워드 때문인데, 하나는 이 작품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매트릭스>의 워쇼스키 남매가 연출한 영화라는 점이고, 또 하나는 <300>과 <트랜스포머> <클로버필드> 등에서 잇따라 확인된 바와 같이 영화적 표현 영역을 확장하기 위한 할리우드의 기술적 실험의 연장선 위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오락영화 <매트릭스>에서 심오한 철학적 의제를 확인했거나 찾아내려 애썼던 관객이라면 컴퓨터가 창조해 낸 이 머리 어지러운 자동차 난투극을 보면서도 고민에 휩싸일지 모른다. 워쇼스키는, <스피드 레이서>를 통해 영화를 보여주려 한 걸까, 아니면 만화를 보여주려 한걸까, 영화를 만화처럼 보이게 하려는걸까, 만화를 영화처럼 보이게 하려는걸까, 이도 저도 아니라면, 제 3의 표현 방식을 실험해보려는 것일까.

기술적 진보에 대한 분석이야 IT 전문가들에게 맡기면 될 터이고, 철학이야 책을 읽으면 더 효과적일 터이니, 머리 아픈 게 싫은 나는, 정신 없이 쿵쾅대는 비주얼 안에 '뭔가 심오한 걸 담은 척 하는', 그래서 꿈보다 해몽인 상찬을 은근히 기대하는 이 영화가 더 유치하게만 보인다. 아이들의 언어로 놀면서 짐짓 부조리가 판치는 어른의 세상을 목도하는, 혹은 어른인 척 하는 아이가 손가락을 빠는 것조차 '폼'이라고 우기는, 요즘 유행하는 분열증적 키덜트 증후군이라고나 할까.

레이싱에 목숨 거는 주인공 목숨이 위협당하고, 꺾이지 않는 의지의 힘으로 끝내 승리한다는, 그냥 그런 스토리가 펼쳐지는 가운데 안압이 잔뜩 높아진 듯한 눈은 '킹왕짱'을 외쳐대는 초딩 조카 손 잡고 억지로 컴퓨터 그래픽 체험실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멍할 뿐이다. 일찌기 클라크 박사가 설파한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라는 메시지 외에 딱 하나 더 얻고 나온다. 컴퓨터로 영화 한 편 뚝딱 뽑아 내는 시대가 왔군!

그런데 난, 왜 이런 CG 떡칠 영화에 왠지 모를 거부감이 드는걸까. 영화라는 예술 장르 자체가 기술적 진보의 산물이거늘, 요즘 쏟아져 나오는 CG 과잉의 영화들을 보면 영화적 고전미를 훼손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영화 매체에 관한 한 디지털 보다는 아날로그적 표현 방식을 선호하는 보수주의자에 속하기 때문일까.

물론 워쇼스키 남매와 그 추종자들은 나같은 관객을 비웃겠지? 트렌드도 못쫓아오는 당신은 바~보! 하고. 알았어, 알았어. 3D 게임 화면에 익숙해져 있는 내 초딩 조카들한테는 이 영화를 권하도록 하지! 걔들도 <스파이 키드>는 재밌게 보더군. 그런데 대관절 12세 이상 관람가가 나오도록 만든 이유는 뭐지? 권하고 싶어도 애들이 못보잖아!

일본 애니메이션 <마하 고고고!>를 수입해 틀었던 <달려라 번개호>를, 나 역시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난다. 근데 그걸 재미있게 봤던 때는 내가 아이였다. 단지 추억 때문에 <스피드 레이서>를 재미있게 보기엔 너무 때가 묻어 버린 탓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내가 워쇼스키처럼 추억을 불러내 환호할만큼의 여유가 없어졌거나.

'태조'로 분한 정지훈이 낯익은 한국 사람이라 그런가 하며 보는 게지, 딱히 그 자리에 정지훈을 캐스팅한 이유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에서 주목을 끌어 보겠다는 계산 이상으로 보이진 않는다. '무샤' 역으로 나와 괜히 폼만 잡고 있는 일본 배우 사나다 히로유키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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