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커트 코베인...

음악 이야기 2008. 4. 21. 00:20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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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08년 4월 12일자 <무비위크>에 실렸던 김태훈의 Insert cut 칼럼입니다

4월에는 항상 우울하다. 만우절에 가버린 장국영에 대한 감상이 잊혀 질 때쯤이면 1994년 4월 8일 자신의 머리에 총탄을 박아 넣은 그런지의 왕 커트 코베인의 기일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미 14년이나 흘러버렸지만, 그의 음악이 심장을 뚫고 지나갔던 왕년의 청춘들에겐 여전히 어제 일처럼 느껴지는 사건이다. 비록 스스로는 닐 영의 곡 <My my hey hey>의 가사 ‘It's better to burn out than to fade away'를 마지막 인사말로 남기고 팝 역사에서 영원한 신화가 되어버렸지만, 시간과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우리들에겐 고통스런 기억이다. 슬픈 청춘의 날들을 같이해준 친구를 잃은 날이기 때문이다.


구스 반 산트의 <Last days>가 상영되었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잡지와 신문의 이 곳 저 곳에서 커트 코베인의 흔적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것은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일종의 다짐처럼 느껴지기도 했었다. 그러나 2008년 오늘엔 그런 모습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팍팍한 일상을 살아가는 왕년의 청춘들이 이제 그를 잊어가는 것은 아닐까? 마치 어릴적 친구들과 몇 년 씩 전화 한 통, 술 한 잔 기울일 시간 갖지 못한 채, 그렇게 나이 들어가는 것처럼. 그러다 아주 오랜만에 우연히 만난 어느 날, 서로의 볼에 깊게 패인 주름자국을 쳐다보며 삶의 덧없음을 경험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형식적인 조문 하나 없이 조용히 너무도 조용히 흘러가는 4월의 초입에 너바나의 [Nevermind] 앨범을 찾아 자동차의 CD 플래이어에 걸어놓았다. 팝 칼럼니스트만의 분양소를 마련한 셈이다. 원시적 에너지를 느끼게 하는 기타 인트로와 함께 절망에 찬 커트 코베인의 음성이 쏟아져 나온다. <Smells like teen spirit>을 지나 <Come as you are>를 거쳐 <Polly>에 이르자 ‘91년 군에서 첫 휴가를 나왔던 그 때로 되돌아갔다. 떠난 여자 친구가 선물했던 커플링을 소주잔에 던져 놓은 채 거리로 나섰던 기억. 부산의 광안리까지 한 번도 쉬지 않은 채 차를 달리던 기억. 싸늘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해돋이를 배경 삼아 김민기의 <친구>를 흥얼거리던 기억. 커트 코베인의 목소리는 알라딘의 램프처럼 잃어버렸다고 여겼던 기억들을 자유자재로 불러내고 있었다.


카뮈는 이렇게 말했었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는 것은 쉽게 지지 않겠다는 의지다.’ 그의 말대로라면 사라진 커트 코베인은 아직도 모순으로 가득찬 삶과 투쟁중인 것이며 남겨진 우린 비굴한 투항을 한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죽음이 없었다면 인간은 누구도 철학을 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쇼펜하우어의 일갈을 빌리면 우린 커트 코베인의 죽음을 통해 14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개똥철학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일관성 없는 상념들이 한동안 머릿속을 돌아다녔다.


생각해보면, 사라진 것은 커트 코베인만이 아닌 것 같다. 그 때, 그의 음악을 같이 듣고 헤드뱅잉을 감행하던 그 많은 청춘들은 다 어디로 가버린 걸까? 모처럼 맘먹고 홍대의 클럽에 들어가도 동년배의 누군가를 만나기 불가능해진 지금 <Smells like teen spirit>에 아드레날린 쏟구치던 그 인간들은 다 어디에 숨어버린 걸까?


맥주 몇 캔에 취기가 돌기 시작하던 4월 8일의 저녁,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던, 그러나 꽤 오래 전화 한 번 하지 않았던 옛 지우들에게 단체 문자를 보냈다. ‘4월 8일 커트 코베인의 열 네 번 째 기일...’ 술기운에 타협하고 잠에 빠져들 때까지 몇 시간이 흘러갔다. 그러나 아무런 답 문자도 받을 수 없었다. 안녕 커트... 안녕 청춘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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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똘끼충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부산의 광한리까지 한 번도 쉬지 않은 채 차를 달리던 기억. >

    음...제가 이 근처에서 살았었는데,,,전 사춘기때 광안리해수욕장을 한번도 쉬지않고 자전거로 질주했던 기억이 있죠ㅋㅋ 근데 광'한'리 가 아니라 광'안'리 에요!!!
    에잇 태훈오빠 실망..ㅋㅋㅋ

    2008.04.21 00:26
  2. hr  수정/삭제  댓글쓰기

    RIP Kurt...감사합니다. 그를 기억해 주셔서..

    2008.04.21 07:04
  3.  수정/삭제  댓글쓰기

    4월이 와서 그런거죠.봄 만큼 청춘에 가가운게 어디 있을까.봄만큼... 아쉬운게 어디잇을까.아예, 봄에는 나 미칠거야. 모두에게 선언하고 푹빠져들지요. ㄸ닥 두달만
    장국영도 커트 코베인도. 음 누군가와 함께한 단 몇분도 온전히 내것이였어. 그의 평생을 갖기를원한게 아니라 단 그의 몇시간을 온전히 갖기를 원했고 .. 가졌으니.청춘에 미련이 없다고

    2008.04.21 10:06
  4. 커트...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도 커트의 음악은 남아 있어서 다행이에요.^^
    정말 온전한 펑크인간이었는데..

    2008.04.21 10:09
  5. Irony  수정/삭제  댓글쓰기

    간만에 음악 글을 봐서 좋습니다. 허당 태훈님 음악 글도 자주 써주세요. 요즘 영화 글이 너무 많아요 ;;

    2008.04.21 12:34
    • BlogIcon cinemAgora  수정/삭제

      영화 글이 많은 것은 cinemAgora가 부지런하기 때문.^^음악 담당 김공에게 부지런 좀 떨라고 촉구 바랍니다!!!ㅎ

      2008.04.21 13:35 신고
    • jacosmile  수정/삭제

      윽... --;; 넵

      2008.04.21 15:15
  6. Irony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분간 내공 연마를 위해 휴지기를 가지신다니 기대해볼게요. 흐흐

    2008.04.21 21:53
  7. 스곤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제껏 여기와서 봤던 글중 전 이게 제일 좋습니다 여러모로

    2008.04.23 11:22
  8. sweetcat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바나의 음악이 흘러나오길래 나의 특별한 사랑이야기에 대한 글이 있나보다~ 했는데
    음악 관련 글이군요

    이 블로그 발견하고 처음 보는 김태훈님의 글인듯? ㅋ

    2008.04.23 22:48
  9. BlogIcon 훵큐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다시한번 십대정신을
    맡아보고싶은 심정입니다.^^

    2008.04.24 12:17
  10. Adrianico  수정/삭제  댓글쓰기

    커트 코베인에 열광한 것은 아니지만, 한 뮤지션을 기억하는 방법을 너무 잘 보여주신 것 같네요. 음악은 시간을 점유하는 예술이라고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글을 읽고 보니까 그 말에 더 공감이 가네요.

    2008.05.18 01:38
  11. 알 수 없는 사용자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아직 개인적으로 너바나 음악을 제대로 들어보지도 못했고, 얼터너티브라 하더라도
    스매싱 펌킨스에 너무 빠져있던지라, 너바나는 그냥 스킵해버린 지 오래 되었습니다.
    이제 저도 슬슬 너바나 음악을 들어야겠네요. 그러면서 커트 코베인의 기일도 챙기구요.
    글 잘 읽었습니다!

    2009.02.16 13:16
  12. BlogIcon John Lee  수정/삭제  댓글쓰기

    코베인횽 기일이 4월8일이었군요..
    그날 너바나노래를 듣게된다면 무언가
    다른날과는 사뭇 다른 기분이 들 것같아요...

    2009.11.28 19:51
  13. BlogIcon ink cartridges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날 너바나노래를 듣게된다면 무언가
    다른날과는 사뭇 다른 기분이 들 것같아요...

    2012.02.28 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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