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격자' 얼얼한 리얼리즘 스릴러

영화 이야기 2008. 1. 29. 00:34 Posted by cinemAg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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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만든 영화를 보고 나면 가슴이 벅차 오르기 마련이다. 내 경우, 만약 '죽이는' 영화를 불행히도 혼자 봤다면 억울함이 몰려 온다. 극장문을 나서자마자 누군가와 영화에 대해 주저리 주저리 수다를 떨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기 때문이다.

28일 언론 시사회를 통해 본 <추격자>도 내겐 일종의 '가슴 벅찬' 영화였다. 지난해 말 호평 속에 흥행에도 어느 정도 성공한 원신연 감독의 <세븐 데이즈>에 필적할만한, 아니 능가한다고 말해도 과찬이 아닐, 또 다른 차원의 '잘 만든 스릴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수다를 나눌 상대를 찾으려는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뭐랄까, 말문이 막혔다고나 할까. 그것은 이른바 웰메이드 장르 영화를 보고 난 뒤의 벅찬 쾌감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영화가 각성시킨 현실의 생생한 잔인함 때문에 영화 속 피해 여성들처럼 나도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 맞은 듯한 얼얼함. 급히 담배 몇 개비로 이 후유증을 추스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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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예 나홍진 감독이 직접 각본을 쓴 그의 장편 데뷔작 <추격자>는 '리얼리즘 스릴러'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게 마땅할 정도로 현실감이 넘친다. 극장 안에 머문 가공의 공포가 아닌, 극장 바깥의 공포를 상기시킨다. 활개치고 다니는 연쇄살인범의 잔혹함이 공포가 아니라, 그의 숙주라 할 수 있는 세상의 끔찍한 무기력, 그리고 그들이 빚어낸 미필적 공모가 실체적 공포다. 그래서 더 공포스러운 것이다.

잊을만 하면 부녀자 연쇄 살인사건이 터지는 나라에서, 놀러 나간 두 아이가 실종된 지 수십일이 지나도 행적조차 찾지 못하는 나라에서, 예의 영화 속의 공권력도 무기력하기 이를 데 없다. 시민에게 똥물을 뒤집어 쓴 서울시장 때문에 경찰 위신이 땅에 떨어진 사이, 사회적 약자 중의 약자인 매춘부들은 너무나 쉽게 도륙의 대상이 된다. 다 잡아 놓은 범인을 두고 증거와 절차를 따지고 있는 사이, 매춘부 포주인 엄중호(김윤석)가 사적 응징에 나선다. 피해 여성들을 위험 속으로 내몬 장본인이기도 한 그는, 이제 공권력을 대신해 연쇄살인마 지영민(하정우)이 시체를 숨겨 놓은 곳을 알아내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이 영화가 남다른 지점은, 더 이상 개인을 보호하지 못하는 '국가 권력=가부장=수컷'들의 '처연한 삽질'을 등호로 묶어 놓고 냉소적으로 꿰뚫고 있는 감독의 예민한 통찰력이다. 십 수명의 부녀자들이 납치 살해되는 상황에서도 중요한 것은 똥물을 뒤집어 쓴 국가 권력의 허울만 남은 위신일 뿐이다. 용의자를 심문하면서, "너 여자랑 섹스 못하지?"라며 성불구로 몰아가는 공권력의 모습은, 스스로도 불구가 된 남성적 질서에 대한 적반하장적 옹호로 보일 지경이다.

게다가 여성의 성을 착취해 돈을 벌던 엄중호가, 뼈만 앙상하게 남은 가련한 가부장(공권력)의 가공할 무능력에 혀를 차며 돌연 '진짜 가부장'으로 환골탈태, 정의 회복의 길에 나선다!(영화는 피해 여성 한 명의 어린 딸을 엄중호에게 떠맡김으로써 '유사 부성애'를 그의 행동의 동기로 부여하는 '시늉'을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걸 정당화하진 않는다. 하지만 여성주의적 관점에선 논란의 여지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이 모순의 뫼비우스 띠에서 안전을 보장 받지 못하고 너무 쉽게 파멸되고 마는 것은, 결국 폭력적 시선에 무방비로 노출된 여성과 아이들, 그리고 우리 사회의 인간성일 뿐이다.

어쨌든, 한국영화의 흐름 가운데 최근 두드러져 보이는 장르영화의 진보는 확실히 환영할 만하다. 더더욱 감독들이 장르 관습에 매몰된 나머지 사회적 맥락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는 것은 감격스러울 정도다. 이제 우리는, 나홍진이라는 걸출한 신예의 탄생을 통해 한국 장르영화의 진일보를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2월 14일 개봉.

<추격자>를 논하면서 김윤석과 하정우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영화의 완성도를 떠받친 많은 부분은 두 배우의 연기 내공에서 비롯됐다고 믿기 때문이다. <타짜>의 아귀로 확실히 존재감을 드러낸 바 있는 김윤석은 이 영화를 통해 명실상부한 주연급 배우로서의 존재 증명을 수행하는 데 성공했다. 줄곧 저예산 영화만 출연하다 고른 대중영화에서 하필 악역을 고른 하정우는 또 어떤가. 필모그래피 관리에 철두철미한 이 젊은 피는, 자신의 연기 영역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방법을 영악하리만큼 잘 알고 있는 배우다. '선'과 '악'으로만 양립시킬 수 없는 두 배우의 아우라를 절묘하게 배합한 캐스팅이 영화를 더욱 빛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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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애드맨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감사합니다. 빨리 목격하고 싶네요 ^^

    2008.01.28 22:52 신고
  2. BlogIcon catchy cat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윤석님 연기 완전 기대되네요. 하정우도 늘 작품선택이 좋고! ......

    2008.01.28 23:58 신고
  3. BlogIcon w0rm9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영화 기대하고 있었는데 잘 나왔나보네요.
    김윤석님은 예전부터 좋아했고, 하정우은 '용서받지 못한자'랑 '시간'을 통해서 인상깊게 봐뒀던 배우거든요. 기대되네요^^

    2008.01.29 07:27
  4. 개지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이글보니까 완전 기대됩니다. ㅎㅎ 김윤석씨 하정우씨 연기도 기대 되고요~

    2008.01.29 14:29
  5. BlogIcon 여자,신화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군 정말 기대된다. 캬아~~눈빛으로 여심 녹여주는 하군...ㅋㅋㅋ
    기대와방되는 군요!

    2008.01.29 17:49
  6. 기대중^^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정우와 김윤석, 둘 다 엄청 호감 가는 배우라서
    이 영화 정말 기대하고 있습니다!
    빨리 보고 싶네요~~
    아우~~ㅋ

    2008.01.29 17:54
  7. hawke386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정말 너무 못쓰십니다. '전문'기자라고 소개돼있는데도.. 참.

    수컷 어쩌고 하는 대목은 거의 이제 막 인문학 수업 받은 대학생들이 소꿉장난하면서 쓴 것 같습니다.

    정진하세요. 다른 일 찾으시든지요. 그냥 <추격자> 재밌다는 팩트만 가져가겠습니다.

    2008.01.29 18:18
    • BlogIcon cinemAgora  수정/삭제

      재밌다는 팩트라도 가져가실 수 있다니 오히려 다행입니다. 제 글재주에 대해선 저도 참 한심할 때가 많은데 확인사살을 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다만, 다른 먹거리를 찾기엔 너무 늦은 나이니 제가 가진 한계 안에서 최선을 다해 정진하겠습니다. 그리고 전 한번도 감히 제 직함 앞에 '전문'이라는 말을 붙인 적이 없는데 누가 절 그렇게 소개했는지 궁금하네요.^^

      2008.01.30 10:42 신고
  8. 날라리아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그래도 몹시나 보고 싶은 영화!!!!!!!!!!!!

    2008.01.29 19:15
  9. 은빛소망  수정/삭제  댓글쓰기

    꼭 볼 거라서 지금은 대충 읽었어용 ^^ 영화보구나서 다시 정독할게요~ 김윤석님의 연기는 언제나 기대됩니다

    2008.01.29 19:43
    • BlogIcon cinemAgora  수정/삭제

      보고 싶은 분들이 미리 읽어도 무방한 선에서 쓴다는 게 영화에 필이 꽂혀 버리면 나도 모르게 잡설이 길어집니다. 죄송합니다. 앞으론 절제의 미덕을 발휘해 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008.01.30 10:43 신고
  10. 진아사랑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고라님, 글 반가와요. 우생순 정말 300만 넘을것 같죠? 다행히 아고라님의
    영화평을 계속 볼수 있겠네요. 이제 저는 아고라님의 영화평으로 영화를 보는 기준을 삼았거든요. 개봉하면 남편 손 잡고 꼭 보러 가겠읍니다. 남편이 타짜의 아귀를
    굉장히 인상깊게 봤거든요. ^^

    2008.01.30 11:06
    • BlogIcon cinemAgora  수정/삭제

      우생순이 300만 안되면 그 핑계로 영 소질 없는 영화 리뷰는 좀 쉴까 했는데.^^암튼 제 글을 좋게 봐주셔서 영광입니다. 감사드립니다.

      2008.01.30 12:37 신고
  11. 킴킴킴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대되는 영화중 하나예요~ 근데 이거 보고나면 정말 몇일밤은 잠을 못잘것 같기도.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범죄.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영화이니만큼
    정말 섬뜩할거 같아요ㅠㅠ
    이거 19세이던데.. 너무 잔인해서 그런가요?;;
    흠흠, 암튼 20살이 넘어 처음으로.. 아무런 재한없이 극장에서 보게 될
    19세 첫영화. 기대하고 있겠습니다~ㅎㅎ

    2008.02.18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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